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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의 수도, 당나라 장안(시안)」“화사한 꽃과 같이 아름다운 호족 아가씨, 봄바람에 비단옷 휘날리며 미소를 파네”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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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1.27  20: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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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루 바로 뒤편으로 이슬람 식당이 몰려있는 회족거리에 들어서자 양고기 굽는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여기가 바로 당나라 때부터 서역 사람들이 많이 몰려 살던 장안의 서쪽 지역이다. 회교 사원인 대청진사가 바로 옆에 있다.

  당나라 수도 장안(현재의 시안-서안)은 실크로드의 수도답게 당시에 이미 동로마제국 사람부터 일본 사람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인이 모여 사는 국제도시였다.

  시안은 3천여 년의 도시 역사 중 절반 이상이 중국 여러 왕조의 수도였다. 또한, 실크로드의 중심 도시로 세계의 모든 문명과 문물이 여기서 오가고 다시 각지로 흩어졌다. 지도를 펴놓고 보면 시안은 중국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과거에는 자연스럽게 정치, 경제, 문화, 종교 교역의 중심 역할을 했을 것이다.   

  세계의 중심 도시로 동아시아와 서아시아, 유목민족과 농경민족을 연결하는 장안은 당나라 전성기에는 인구가 1백만 명을 헤아렸다고 한다. 당시에 장안은 인구 20명당 한 사람이 페르시아인이나 터키인, 소그드인(중앙아시아인) 등 외래인이었고, 신라나 일본 등 동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온 유학생이나 유학승도 1만 명 이상이 넘었다고 한다. 이런 이민족을 통해 각국의 산물이나 음악, 미술, 종교, 풍속 등이 전해져 거리에는 유목민 풍의 의상과 페르시아풍의 장신구, 음악, 춤 등 ‘호풍(胡風)문화’가 유행했다고 한다. 시선(詩仙) 이백의 시에 이런 호풍을 묘사한 시가 한 수 전해진다.

호족 아가씨, 그 모습은
화사한 꽃과 같이 아름다운데/
술을 팔면서
봄바람같이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다./
봄바람에 비단옷 휘날리니./
그대, 술에 취해 어디로 돌아가려는고
                                (중략)


  장안에는 많은 외국인이 모여들었기 때문에 당연히 이들의 객고를 풀어주는 유흥가 여성들도 많았을 것이다. 이들 중에는 중앙아시아에서 건너온 소그드 여성들이 많았고, 특히 구자국(龜玆國-현재 신장 쿠처 지역) 출신 여성들이 노래와 악기 연주 그리고 춤에 뛰어났다고 한다. 현장법사가 지은 <대당서역기>에도 이런 사실이 기술되어 있다. 요즘으로 치면 중동지역에서 유행하는 아주 리드미컬하고 선정적인 배꼽춤의 한 부류가 아니었을까?      

  시안에 가면 많은 유적과 유물에서도 실크로드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우선 대청진사(大淸眞寺)에 가면 서쪽에서 불교보다 나중에 들어온 이슬람교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중국에서는 이슬람 사원을 청진사라고 부른다. 이 사원에 있는 목패방(木牌坊)과 월비(月碑)는 이슬람과 중국 문화가 처음으로 만나던 시기의 중요한 유산이다. 이 사원의 특징은 회교 사원이 불교 사찰과 외양이 거의 비슷하다는 점이다. 회교가 중국에 들어오면서 중국화한 하나의 사례이다. 이 사원에서는 지금도 회교도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다.   

  자은사에 있는 대안탑(大雁塔)은 <대당서역기>의 주인공인 현장법사가 인도에서 가져온 불교 경전을 보관하고 번역하기 위해 652년에 세운 전탑이다. 소안탑(小雁塔)은 707년 당나라 승려 의정이 인도에서 가져온 불교 경전을 보관하기 위해 세운 탑이다. 대흥선사(大興善寺)는 중국 밀교의 총본산으로 인도 힌두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불교 종파이다. 8세기에 대흥선사에서 밀교를 전파했던 금강지와 불공화상이 바로 인도 승려다. 이 절은 또한 <왕오천축국전>을 지은 신라의 혜초 스님이 727년 인도에서 돌아와 오랜 기간 머물며 불교 경전 번역에 힘썼던 곳이기도 하다.

  비림(碑林)박물관에 가면 대진경교중국유행비(大秦景敎流行中國碑)를 볼 수 있다. 약 2천개가 넘는 비석 중에서 이 비석이 흥미로운 것은 여기에 실크로드 문화의 흔적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 비석은 기독교의 일파인 네스토리우스파의 전도사들이 당나라에서 약 150년간 선교활동을 전개한 내용을 기록한 비석이다. 이 교파는 당나라에서 철저하게 현지화해서 경교(景敎)라고 불렸으며 신라와 일본에까지 전파되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

  중국 한자와 함께 이란 문자인 페르세폴리스(Perseplois-그리스어로 페르시아인의 요새라는 뜻)어가 병기돼 있다는 소양처마씨묘지(召凉妻馬氏墓志)는 직원과 함께 아무리 찾아도 없어서 그냥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장안에는 불교와 기독교 외에도 조로아스터교와 마니교 같은 종교도 서방에서 들어왔다. 조로아스터교는 기원전 6세기경에 조로아스터(고대 페르시아어로 짜라투스트라)가 중앙아시아에서 창시한 종교다. 독일 철학자 니체가 조로아스터교에 심취하여 저술한 책이 바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이다. 불을 예배의 대상으로 삼는다해 중국에서는 배화교(拜火敎)라고 불렸으며, 서기 3세기경에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종교가 되었다.

  마니교(摩尼敎)는 이란인 마니(216?~276?)가 창시한 종교로 조로아스터교를 모태로 기독교, 불교, 여러 토착 종교가 융합하여 태어나 서쪽으로는 아프리카 북부, 프랑스 남부, 동쪽으로는 중국까지 전파되었다. 이런 종교들은 물론 실크로드가 있었기에 동서양으로 전파가 가능했던 것이다.

  장안을 말하면서 화청지(華淸池)가 빠질 수 없다. 화청지는 양귀비와 당 현종의 로맨스로 유명한 곳이다. 현종이 이 온천궁에서 양옥환을 보고 첫눈에 반해 두 번째 부인인 귀비(貴妃)의 지위를 하사하자, 양귀비의 사촌오빠 양국충은 재상이 돼 나라를 마음대로 주물렀다. 이때 양귀비에게 접근한 사람이 10개의 절도사 가운데 3개를 겸직하고 있었던 안록산이다. 안록산은 양귀비에게 접근하여 그녀의 양자가 되어 군사력을 장악한 실세로 부상했다.

  안록산의 세력을 경계하여 그를 제거하려는 양국충의 음모에 반발하여 일으킨 것이 바로 안록산의 난(755-763)이다. 안록산은 소그드인을 아버지로 돌궐인을 어머니로 둔 서역 출신 무인이었다. 안(安)씨였으니까 지금의 우즈베키스탄 부하라 사람이었을 것이다. 당시 장안은 외국인들도 능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고위직에 오를 수 있는 국제도시였던 것이다.

  8세기 전반에 실크로드에서 그 이름을 날리다가 751년 세계사에서 아주 중요한 전쟁의 하나인 탈라스 전투에서 패하고, 안록산의 난 때 토벌군 부원수로 참가하여 반란군과 싸우다 후퇴했다는 이유로 755년에 참형당한 고구려 유민 고선지 장군도 바로 시안에서 2년 동안 근무한 적이 있다. 이처럼 시안은 우리하고도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많은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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