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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재소설 - 발바닥을 긁는 아내 마지막회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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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2.10.2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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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연거푸 말을 뱉어낸 후 고개를 숙였다. 나는 잠시 서서 빛에 노출된 내 몸을 생각했다. 아내가 시키는 대로 가만히 서 있는 것이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움직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무심코 방안에 들어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다.

- 외로워.

아내는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은 채 웅얼거리는 톤으로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 외로워, 외로워.

이게 뭐야, 외로운 건? 나는 거실 바닥에 주저앉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외로워. 단지 속말이었다. 입술을 다시며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 나, …… 가.

나는 천천히 고개를 아내 쪽을 향해 돌렸다. 무표정한 아내가 나를 쳐다보더니 베란다에 허리를 쑥 뺐다. 그리고 다시 한번 ‘나, 가.’라고 했다. 나는 망설였다. 아내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잘 몰랐다. 난감한 표정으로 아내를 쳐다보았다.

- 미안해, 외롭게 해서.

아내가 슬픈 표정을 지었다. 나는 다리를 모았다. 아내가 정면으로 내 남성을 쳐다보는 것이 싫었다. 그리고 궁리했다. 또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나는 상황 따라 아내가 바라는 말을 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 저기, 나, …… 여름 감기 ……, 그거 걸렸어. 개도 안 걸린다는 …… 그거 …….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전혀 위트 있거나 아내를 위로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아내가 무슨 답을 원하는지 정말 모르는 것이다. 여전히 슬픈 표정을 짓고 있던 아내는 하늘을 한번 쳐다보았다. 나는 몸을 둥글게 구부린 채 아내에게서 시선을 떼어버렸다. 나는 나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저기, 부디 잘 가.

베란다 창 밖에서 커다란 물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설핏 큰 화분이라도 떨어진 듯한 소리. 그보다는 조금 둔탁했고 무거웠을 법한 소리. 아내가 베란다에서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알았다. 아내가 나를 떠나 버렸다. 비는 그치지 않았다. 베란다 아래쪽에 길을 다니는 사람이 없는 걸까? 아무런 반응도 오지 않았다. 나는 삼베요에 드러누웠다. 샌들 끈이 끊어졌을 때 아내는 나와 각방을 썼고 샌들 굽이 부러졌을 때 아내는 나를 떠났다는 문제에 대해서 골똘히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나는 너무 피곤했다. 몸을 비틀어 아내의 화장대를 쳐다보았다. 아내가 발바닥을 긁을 때 사용하는 발주걱이 보였다. 아내는 석 달 전부터 가끔 발바닥을 긁었다. 그리고 아내는 석 달 전부터 지루한 일상에 대해서 불평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아내는 나를 멀리 했고 한 달 전부터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졸음에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이제는 조금 편하게 자야 할 것 같았다. 나는 너무 일을 많이 했고 너무 많은 것을 몰라야 했는데 이제 나는 너무 일을 많이 하지 않아도 되고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어도 말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아내가 대신 뛰어내리는 일을 선택했으므로 나는 또 내 몫으로 남겨진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라는 진절머리 나는 생각을 했다. 나의 길고 긴 생명선이 생각났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길바닥에 드러누웠을 아내의 몸에 빗물이 고이고 있을 것이다. 우묵한 곳에는 물이 고이고 불룩한 곳에서는 물이 퉁겨져 나올 것이다. 시계 소리가 들려왔다. 빗물 소리가 들려왔다. 바람에 펄럭이는 커튼의 천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커튼의 펄럭임이 희미하게 시선에 잡혔다. 피곤하다. 잠을 자야 하는데 소리가 너무 많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 한가지 그리고 전부.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던 아내를 위해 잠시 모른 척 해준 것. 아내가 발바닥을 집요하게 긁어댄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는 것. 그것은 가볍지만 가끔은 무게감으로 기우뚱거리는 누구나 알면서도 이해하기 힘든 문제라는 것. 음식쓰레기 봉지를 들고 나가는 그 어떤 여자의 낯선 엉덩이 같은 문제. 내가 곽의 엉덩이를 만지고 싶었듯 아내도 남자의 엉덩이를 만지고 싶었던 것이다. 이유 없이, 간혹 말로 설명하기 힘들도록 이상하게 외로우면 누군가의 엉덩이를 만지고 싶다. 아무런 문제가 없어도 그 엉덩이를 만지는 손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 곽의 결론이었다. 환멸을 느꼈다니까. 그러나 가끔은 어려운 환멸도 외로움보다는 즐거운 일인 것 같다.

이것은 아내의 결론이었다.

<끝> / 이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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