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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의 반대말은 무엇인가요?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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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5.26  12:2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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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있었던 ‘저자와의 대화’ 행사에서 초청 작가 정 유정은 소설『28』의 제목에 담긴 의미를 세 가지 정도로 설명했다. 첫째, 주인공이 사건에 휘말리면서 죽기까지 28일이 걸리고 둘째, 어떤 큰 재난이 닥쳤을 때 그 사회가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고 대처하기까지 허둥대는 기간이 평균 4주 정도이며 마지막으로는 사태에 대해 사람들이 내지를 분노의 욕설이 될 수 있다고. 

세월호 참사 한 달을 넘기는 동안 많은 이들이 슬퍼하고 아파하고 분노했다. 그 바탕에는 우리 삶의 바탕이 이렇게나 얄팍하고 허술했던가 하는 자괴감이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것 같다. 선장을 믿고 안내 방송을 믿고 구조대를 믿다가 수장 당한 300여명의 희생자 앞에, 우리의 참담한 민낯에 할 말을 잃는다. 각자는 우리 사회가 서로가 서로를 믿을 수 있는 곳인가 하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게 된다.

타이타닉호가 침몰할 때 선장은 선원들을 모아 놓고 “영국인답게 행동하라(Be British!)”고 말했다고 한다. 나는 세월호 사고에서 선장이 선원들에게 “한국인답게 행동하라(Be Korean!)”고 말했다면 선원들이 그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싶다. 아마 적지 않은 이들이 한국인답게 행동하는 게 어떤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아 더욱 더 허둥댔을 것만 같다. 영화『타이타닉』의 한 장면도 떠오른다. 사랑에 빠진 주인공 남녀가 뱃전에 서서 여자는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앞의 광활한 바다를 바라보고 남자가 뒤에서 여자를 붙잡아주는 장면이다. 사랑은 자신의 생명까지 누군가에게 맡긴다는 걸 보여주는 것일 테다. 반대로, 뒤에서 붙잡아줄 줄 알았는데 바다로 추락하고 말 때의 그 아찔한 허망함 또는 허망한 아찔함은 생각만 해도 아찔하고 허망하다.

사회란, 또는 공동체란 서로의 서로에 대한 믿음을 축으로 해서 움직인다. 승객이 선장을, 즉, 배의 안전을 믿지 못한다면, 학생들이 선생을 믿지 못한다면, 대한민국 국민이 대통령을 믿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런 가정을 감히 해볼 수 없었다. 그 결과가 너무나 끔찍하고 참담하기 때문에. 

우리 대학은 서로가 서로를 믿을 수 있는 곳인가를 생각해본다. 교육은 그냥 가르치고 배우는 것만이 아닐 것이다. 그 바탕에 상호간의 신뢰와 사랑이 자리하고 있지 않으면 말짱 헛것이라는 걸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사연을 접하면서 새삼스럽게 확인한다. 나는 일신의 탈출을 미루고 학생들을 지키고 구하는 데 나설 것인가? 그럴 것이라고 말하기가 두렵다. 무엇보다 그럴 일이 없어야 하고 없기를 바랄 뿐이다. 

교수와 학생은 학교를 믿는가, 학교는 그들을 믿는가? 나는 그렇다고 말할 건덕지를 보지 못한다. 대학이 ‘사람보다 돈’이라는 천박한 세태에 물들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우리 사회와 대학은 언필칭 경쟁력을 들먹인다.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교수는 더 많은 논문을 써야 하고 일방적인 구조조정도 경쟁의 이름으로 정당화한다. 경쟁은 이 시대 우리 사회의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이다. 

하지만 경쟁을 외곬로 강조하면서 어떻게 우리는 서로를 믿을 수 있는가? 경쟁을 무조건 거부하자는 게 아니라 경쟁이 우리를 어디로 끌고 가는지 곰곰 생각해야 하지 않는가? 극단적인 경우 침몰하는 배에서 자신의 책무나 다른 사람들의 안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먼저 탈출하려고 서로서로를 밟고 넘어가는 모습을 초래하지 않을까? 혹 ‘골로 가는’ 경쟁일 수도 있지 않을까?

희생자 구조와 인양 작업이 한창일 때 이 나라 교육의 수장이란 사람은 실종자 가족들 옆에서 버젓이 라면을 먹었다. 그런 사람이 대학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우리는 교육의 본분을 새롭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사회의 바탕을 이루는 데 교육은 종요로운 부분을 담당하고 있지 않은가?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데 교육은 막중한 책임을 떠맡고 있지 않은가? 그런 교육이 경쟁력이란 거센 풍랑에 맥없이 떼밀려 실종되는 건 아닌지 참으로 안타깝다.       

경쟁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무사안일, 나태 등의 말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믿음, 사랑, 친절, 배려, 아껴줌, 껴안음, 보살핌 등등이 떠오른다. 자, 종이의 한 쪽 칸에 경쟁이란 말을 써놓고 맞은편에 당신이 생각하는 반대말들을 써보지 않겠습니까? 참고로 영어 사전에서 ‘contest’의 반의어를 찾으니 ‘agreement’, ‘accord’, ‘peace’, ‘surrender’, ‘give up’, ‘approve’, ‘support’ 등이 줄을 이었다.
/김번(영어영문ㆍ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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