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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장벽이 우리에게 전하는 통일 메시지Student Research ⑬ 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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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2.03  22: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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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장벽 붕괴 25주년
독일 국민, 통일의 기쁨 만끽

전문가 “통일의 큰 걸림돌,
경제적 차이 아니라
문화적 차이 줄이는 것”


지난 9일, 독일에서는 베를린 장벽 붕괴 25주년을 맞이했다. 최근 독일 곳곳에서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다양한 퍼포먼스가 펼쳐지고 있는데, 그 중 풍선으로 베를린 장벽을 재연하는 행사가 많은 이들의 주목을 이끌었다. 흰색 풍선들이 빵빵하게 부풀어진 채로 베를린 도심 한복판에 자리 잡더니 이어 25년 전 베를린 장벽이 세워져 있는 곳을 따라 15km에 걸쳐 배치됐다. 작업에 참여한 예술가들은 젊은 층에게 베를린 장벽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알려주기 위해서 행사를 기획했다고 밝혔는데 과거 분단의 상처를 국민들이 금방 치유하자는 의미에서 멀리 날아가는 풍선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대한민국과 독일이 함께 준비한 퍼포먼스도 눈에 띄었다. 전남 여수 소호초등학교와 프라이에 유겐트 오케스트라는 지난 10월 8일(현지시간) 베를린 장벽붕괴 25주년 기념행사로 합동공연을 실시했다. 공연은 베를린 장벽 붕괴의 의미 있는 장소인 베를린 포츠담광장 지하역사에서 펼쳐졌다. 포츠담광장은 통일을 통해 독일이 이룬 경제 성장의 성과를 보여주는 장소다. 이전에 포츠담광장은 동독이 장벽 근처를 비무장지대처럼 비워둬 잡초만 무성했지만 통일 뒤 유럽 최대 첨단 시설 집합소이자 베를린 최고의 번화가가 됐다. 현재 고층 빌딩, 고급 아파트와 식당가, 공연장이 다투어 자리 잡고 있다. 다시 돌아와서 오케스트라의 합동 공연은 700여 명의 교민과 독일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많은 성원과 갈채를 보내며 성대하게 열렸다. 그들은 악기를 연주하는 내내 관중들로부터 환희와 응원을 받았는데 특히 대한민국의 대표 민요인 아리랑을 공연 할 때는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와 환호성을 들었다.  

잠깐 문득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을 꺼내어보자. 베를린 장벽은 오래 전 이야기다. 강산이 두 번 바뀌고도 5년이 더 지났으니 말이다. 하지만 왜 아직 많은 사람들이 25년이 지난 후에도 베를린 장벽을 기억하며 이야기하고 있을까. 사실 베를린 장벽은 세계 역사의 흐름 속에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심지어 베를린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도시가 분단된 채 외세의 통치 속에서 살아야 했고 이어 냉전 시대를 맞이했다. 사회주의진영과 자본주의진영 간의 양극체제하에서 정치, 외교, 이념 등의 갈등이나 군사적 위협의 잠재적인 권력투쟁의 최전선이 되어야 했으니 현대사에서 독일은 특별한 장소일 수밖에 없다.

당시 유럽의 뜨거운 감자였던 독일의 상황을 보자면, 1949년 5월 23일에 독일 영토 가운데 프랑스, 영국, 미국이 통제하는 서방측 지구가 통합하여 독일 연방 공화국이 들어섰으며, 같은 해 10월 7일에 소련 측 지구는 독일 민주 공화국이 되었다. 즉 한 나라 안에 두 정부가 들어선 것이다. 세계는 이 둘을 서독과 동독이라 불렀다. 서독은 ‘사회 시장 경제’ 체제와 더불어 연방제 의회 공화국 체제를 수립하였으며, 미국, 영국, 프랑스와 동맹을 맺었다. 또한 1950년대 초부터 서독은 ‘라인강의 기적’을 등에 업고 장기 경제 발전을 이루며 승승장구 했다. 반면 동독은 동구권에 속한 나라로 바르샤바 조약과 붉은 군대 점령군을 통하여 소련의 정치 및 군사적 통제를 받았다. 동독은 인민민주주의 체제를 표방하긴 하였으나 모든 권력은 공산주의 세력이 독점하였다.

베를린에 장벽이 세워진 것은 1961년이었다. 당시 동독의 경제 상황은 매우 열악했다. 동독의 산업은 매우 낙후되었고 주택과 도로, 철로, 통신 등 대부분의 편의 시설들은 전면 보수와 신축이 필요했다. 또한 물, 토지 오염 등 환경문제는 대단히 심각한 상태였다. 무엇보다도, 높은 인플레이션이 동독 경제의 목을 죄고 있었다. 이에 동독 국민들의 불만이 폭발했다. 서독과 비교하여 떨어지는 자신들의 생활수준을 높여달라는 요구와 무능한 동독 정부를 질책하는 시위를 펼쳤다. 또한 일부 국민들은 서독으로 도주하는 사건들까지 발생했다. 이에 동독 정부는 베를린 장벽을 세우기로 결정했다. 동독이 쌓기 시작한 장벽은 콘크리트로 축조된 장벽을 따라 곳곳에 감시탑이 설치되었다. 동독 정부는 이 장벽을 공식적으로 ‘반파시즘 방어벽’이라고 여겼다. 이에 반해 서독 정부는 ‘수치의 벽’이라고 일컬었고 세계인들은 철의 장막으로 불렀다. 동독 정부는 군과 경찰에게 지시해 전격적으로 국경을 폐쇄하고 철조망 설치 작업을 시작했다. 베를린을 동서로 나누는 장벽의 길이는 43킬로미터였고, 서베를린 외곽 장벽은 156킬로미터에 달했다. 갑작스러운 조치와 더불어 동독 주민 대부분의 서독 방문이 힘들어졌고 이산가족까지 생기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시간이 흘러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이날을 기점으로 많은 독일 국민들이 망치와 곡괭이를 가지고 벽을 부수기 시작했고 다음 해 1일 동독이 서독 통화를 수용하면서 국경에 대한 통제도 공식 종료되었다. 

날씨가 차다. 우리는 과거 독일의 통일 과정을 살펴봐야 한다. 독일의 사례들은 우리가 보고 느끼고 고쳐야 할 부분을 알려주는 좋은 모델이다. 우리가 모두 이상론자는 아닐지라도 모두 한민족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우리가 모두 통일 찬성론자는 아닐지라도 이산가족들 가슴에 내려앉은 이별의 아픔을 외면하지는 못한다. 한민족이란 대체 무엇인가. 과거 함께 웃으며 용기를 북돋아 주었던 가족이 아닌가. 때로는 시간이 걸리고 길이 험할지라도 우리는 만나야 한다. 우리는 한민족이 아닌가.

/ 이원희 (언론ㆍ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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