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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래 녹음과 언론윤리몰래 녹음 취재는 하지 않는 것이 원칙… 외국에서는 몰래 녹음하면 퇴사 조치까지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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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3.31  14: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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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한 두 달 전 이야기다. 이완구 당시 총리후보가 국회 청문회를 통과하느냐 마느냐로 목이 탈 때다. 기자들과의 점심 자리에서 자신이 언론사를 쥐락펴락 한다는 식으로 세게 오버했다. 기자들이 이를 몰래 녹음했고 이것이 야당의원을 거쳐 제삼의 언론(KBS)에 의해 보도되어버렸다. 세상이 발칵 뒤집어졌다. 이는 취재윤리 문제로 언론계 내부로도 비화되었다.

야당의원에 녹음을 갖다 준 『한국일보』는 취재윤리 위반을 시인, 사과문을 실었다. 그러나 상당수의 언론인들은 몰래 녹음을 두둔하고 나섰다. 그들의 논리는 몰래 녹음은 거의 관행이며 법적으로도 합법이라는 이유를 댔다. 통신비밀보호법 상, 대화 당사자 간의 녹음은 적법이라는 거다. 그러나 이는 비록 적법이라지만 비윤리적임을 간과한 얘기다.   

이와 달리 세계 유수한 언론들은 거의 예외 없이 윤리강령에 몰래 녹음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우리 언론사들도 몇몇 유사한 규정을 두고 있다. 다만 ①공공성이 높은 정보로서 ②그 방법 아니고는 도저히 그런 정보를 얻을 길이 없을 때에 한해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앞의 ‘예외 조건’에 이번 사례를 대입해보자. 그의 발언이 총리의 자질을 판단하는 데 유용한 정보라는 점에서 ①의 요건은 충족된다. 그러나 몰래 녹음을 하지 않아도 이미 본인이 술술 이야기를 했으니 ②의 조건은 갖다 댈 여지가 없다. 기자 4명이 동시에 들었으니 ‘나중에 부인하는데 대한 대비’ 같은 변명도 성립이 안 된다. 

또한 몰래 녹음이 합법이라는 이유로 정당하다는 생각도 반드시 옳지는 않다. 몰래 녹음이 통신비밀보호법 상으로는 몰라도 말하는 사람의 프라이버시권을 침범했다는 점에서는 합법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몰래 녹음은 목소리 주인에게 상당한 불쾌감을 안기고 심하면 정신적 고통까지 주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는 일찍이(1995. 12. 28) 모든 사람은 “자기 말을 누가 녹음할 것인지, 누가 재생할 것인지에 관해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는 판례를 남긴 바 있다. 바로 이 권리가 인격권의 하나인 프라이버시권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몰래 녹음을 ‘침입적 취재’(intrusive news gathering)로 보고 위법성을 인정한 판례가 여럿 있다. 

『뉴욕 타임스』는 윤리강령(Ethical Journalism, 제27조)에서 설사 법이 허용하는 녹음이라도 몰래 한다면 취재원을 속이는 행위라고 못 박고 있다. 법이 허용하더라도 윤리적이지 않은 행동은 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합법이라고 해서 다 윤리적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속여 몰래하는 녹음을 윤리적이라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선진 언론들은 그 어떤 직종보다 최고의 윤리수준을 유지하겠다고 윤리강령에 다짐하고 있다(BBC, AP통신, 영국의 IPSO, 일본의 신문노련).

선진 언론들이 이처럼 최고의 윤리수준을 다짐하고 몰래 녹음을 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왜일까? 말할 것도 없이 그렇게 하는 것이 정보를 획득하기(취재) 쉽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에서도 비신사적인 사람과는 대화가 꺼려진다. 그게 인지상정이다. 기자가 몰래 녹음할지도 모르는 의심스런 상황에서 취재원은 입 조심할 수밖에 없다. 그만치 취재가 어려워진다. 언론이 앞세우는 ‘알 권리에 대한 봉사’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일본 『아사히신문』이 1981년과 2004년, 『마이니치신문』이 2007년에 몰래 녹음 기자에 대해 퇴사라는 극형 조치를 취하고 부랴부랴 몰래 녹음을 막는 방향으로 취재지침을 고쳤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잠재적인 많은 정보 제공자들이 몰래 녹음을 밥 먹듯 하는 기자들에게는 정보를 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한국에서는 몰래 녹음이 관행이라니 기가 찬다.

언론은 장래에도 수많은 잠재적 정보제공자의 도움 없이는 한시도 존립할 수 없다. 정보제공자는 언론이 신뢰할 수 있을 때 줄을 선다. 이번 사건으로 잠재적인 정보제공자가 한명이라도 그 줄을 떠난다면 언론의 불행이고 시민들의 손실이다. 그래서 언론윤리가 중요한 것이다.
/김옥조(언론정보ㆍ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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