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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라스 전투와 고선지 장군고태규 교수의 실크로드 문명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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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4.10  23:2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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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쉬케크

이번 여정은 키르기스스탄을 한 바퀴 돌고 우즈백으로 넘어가기 위해 다시 오쉬로 돌아가는 길이다. 이지쿨 호수 동쪽에 있는 도시 카라콜(Karakol)에서 수도인 비쉬케크(Bishkek)로 이동하는 여정은 만만치 않다. 버스비가 우리 돈 300원 정도로 의외로 싸다. 비쉬케크는 ‘정원 도시’라는 별명답게 공원과 나무가 많았다. 도시 자체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사람 냄새가 나는 그런 곳이었다. 이 도시는 1825년에 코칸드(현재도 코칸드)에 있던 우즈백 왕이 중국으로 넘어가는 천산산맥으로 통하는 여러 카라반 루트 중 하나로 만든 작은 실크로드 마을이었다. 그런데 1826년에 제정 러시아가 여기를 점령하고 기름진 땅을 자국민에게 분배하면서 이주민을 끌어들여 1926년에 키르기스자치공화국의 수도로 만들었다. 소그디언 이름으로는 페샤가크(Peshagakh)라고 하는데, ‘산 아래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남쪽으로 멀리 도시를 호위하고 있는 해발 4,800미터급의 알라토 산맥을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비쉬케크에서 오쉬까지 달리는 길은 소문대로 천하의 절경이었다. 눈 덮인 고산과 평화로운 호수 그리고 드넓은 초원을 지나는 그런 멋진 길이었다. 도로 사정은 엉망이었다. 과거에 동서양의 어떤 군주라도 탐냈을 그런 지역이었다. 이 길은 해발 3000미터가 넘는 알라토 산맥을 통과한다. 이 길에는 3천 미터가 넘는 고개가 3개나 있다. 토르아슈 고개(해발 3,586미터), 오트맥 고개(해발 3,330미터), 알라벨 고개(해발 3,484미터). 수 백 킬로 떨어진 잘랄라바드와 오쉬 등 남서쪽으로 가려면 토르아슈 고개와 알라벨 고개를 넘어야 하고, 오트맥 고개를 넘으면 바로 서쪽에 탈라스가 있다.

탈라스 전투와 고선지 장군

탈라스는 바로 고구려 유민 장수의 아들인 당나라 장수 고선지(高仙芝, 722?~755)가 서기 751년에 동진 중이던 아랍군과 세계사적인 전투를 벌인 바로 그 장소이다. 630년 초에 인도로 가던 길에 이곳을 지난 현장 스님도 <대당서역기>에서 “달라사(呾邏私 탈라스)는 성 둘레가 8~9리에 달하며, 성내에는 여러 나라의 상인들이 함께 거주하고 있다”고 기술했다. 당시에도 이미 탈라스는 오아시스 상업도시로서 번영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증언이다. 나는 이 토르아슈 고개와 알라벨 고개를 넘으면서 왜 당나라군이 아랍군에게 어이없이 패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고개가 너무 높고 험해서 주로 보병인 당나라군은 장거리 이동으로 전투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심신이 지쳐있었을 것이다. 전투 결과는 이미 결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위키백과에는 당시의 역사적 배경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탈라스 전투는 751년 7월~8월 사이에 고선지 장군이 지휘하는 당나라군과 투루크인 동맹군 카를룩족이 아랍의 압바스 왕조(750~1251)를 상대로 지금의 키르기스스탄 서북쪽에 있는 탈라스 강 유역에서 중앙아시아의 패권을 두고 싸운 전투였다. 당 태종 때(628~649년), 당나라는 당과 중동, 지중해 연안을 연결하는 실크로드를 지배하기 위해 서쪽으로 중앙아시아까지 세력을 확장했다. 남쪽으로는 747년에 고선지 장군을 파견하여 토번(티벳)군을 격파하고 지금의 파키스탄 길기트(소발률국小勃律國) 지역까지 정복했다. 그러나 새로이 이슬람화된 아랍군도 동진을 거듭하여 710년에는 세계 최대의 캐러밴 도시였던 부하라와 사마르칸트까지 진출했다. 이제 동진하는 아랍군과 서진하는 당나라군의 충돌은 시간 문제였다. 

750년, 고선지가 이끄는 당나라군이 타슈켄트(당시 석국-石國. 타슈는 돌이라는 뜻이고, 켄트는 도시라는 뜻이다)를 점령하고 투르크인 군주를 포로로 잡아 당나라 수도 장안에 압송했다. 양귀비에 빠져 분별력이 없어진 당 현종(685~762)은 투르크 군주를 처형하고 말았다. 이에 분노한 석국 왕의 아들은 당나라군을 몰아내기 위해 동진 중인 압바스 왕조에게 도움을 청했다. 압바스 왕조의 호라산 총독 아브 무슬림은 부하인 지야드 이븐 살리흐를 파견했다. 751년 여름, 지야드가 이끄는 압바스군과 고선지가 이끄는 당나라군은 오트맥 고개 너머 탈라스 강가에서 격돌했다. 주로 보병이었던 당나라군은 약 4만 명의 아랍-투르크 기병에 허를 찔렸다. 당나라군을 지원하기로 했던 카를룩족이 도중에 아랍군 편으로 돌아서는 바람에 당나라군은 괴멸되고 말았다. 4만 5천의 군사 중 고선지를 비롯한 지휘관 일부와 수천의 병사만이 탈출했다고 전한다.

압바스 왕조는 이 전투의 승리로 중앙아시아에서 이슬람 세력의 기반을 굳히게 되었고, 중국 신장 지역까지 이슬람교가 전파되었다. 그때 붙잡힌 상당수의 당나라 포로 중에 종이 제조 기술자가 포함되어 있어, 제지술이 이슬람 세계를 거쳐 기독교 사회까지 널리 퍼지게 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당나라는 이후 안록산의 난(755-763)이 일어나면서 국력이 쇠퇴해 더 이상의 서역경영은 어렵게 되었다. 고선지 장군은 바로 이 난 때 진압군의 부사령관으로 출정했는데, 명령을 어기고 후퇴했다는 죄목으로 어이없이 처형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선지 장군은 중앙아시아 실크로드 역사에서 큰 족적을 남겼다. 지금 내가 그 길을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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