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교양
비단의 고장, 마르질롱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5.04.27  22:28:49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오쉬를 출발하여 우즈베키스탄과의 국경 도시인 도시툭(Dostyk)으로 이동했다. 택시에서 내리자 바로 앞에 국경초소가 있다. 자유로운 키르기스와 달리 경찰국가라 모든 출입국 절차가 까다롭다. 지금도 이렇게 까다로운데, 그 옛날 실크로드 시대에는 여행자들이 다른 나라를 통과하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배낭에서 노트북까지 꺼내서 파일을 다 뒤지고 중국에서 산 불교관련 서적까지 페이지를 넘기며 모두 확인한다. 아마 포르노 비디오나 잡지를 찾는 것 같았다.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국경에서 그런 걸 단속하나. 인터넷 클릭 한번만 하면 포르노 천지인데. 한심한 사람들~~~~!

국경초소를 나오자 택시들이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안디잔까지 택시로 이동했다. 안디잔 시내를 보고 깜짝 놀랐다. 정말 서구식으로 깨끗하고 깔끔하게 정리가 잘 된 도시다. 지금까지 중국에서 여기까지 50일 동안 방문한 도시 중에서 가장 깨끗하다. 2005년에 키르기스인과 우즈베크인 사이에 일어난 안디잔 인종폭동의 상처를 달래려고 그랬는지, 도시 계획이 참 잘되어 있었다. 호텔 투숙 비용도 아침식사를 주고 35달러인데, 지금까지 투숙한 호텔 중에서 가장 깨끗했다. 물론 냄새도 안 난다. 선진국 호텔처럼 깨끗하고 하얀 뽀송뽀송한 침대보가 있고, 샤워박스가 있는 곳이다. 중국 신장에서는 200위안(40달러)짜리도 이렇게 깨끗하지 않다. 와이파이는 된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터지지 않았다.        

다음 날 페르가나를 거쳐 마르질롱으로 이동했다. 마르질롱에서는 어린이들이 북한 아이들처럼 머리에 하얀 조화를 달고 다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사회주의 국가의 잔재가 아직도 남아있는 것이다. 마르질롱은 페르가나 북쪽에 있는 도시로 비단을 생산하는 공장이 있는 곳이다. 내가 실크로드를 따라 여행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마르질롱처럼 전통적인 방법으로 비단을 생산하는 도시가 아직도 남아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중국의 비단 제조기술은 이미 기원전 1세기경에 중앙아시아에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앙아시아의 곡식창고로 불리는 기름진 페르가나 초원지대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마르질롱은  비단 거래의 중심지로 1,500년 넘게 명성을 날린 곳이다. 우즈벡이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비단 생산국인데, 이 도시가 그 비단 산업의 중심지인 것이다.

지금은 질 좋은 옷감이 많이 나와서 비단의 수요가 그리 크지 않지만, 당시 최고의 명품 옷감이었던 비단은 실크로드를 따라 동서로 전파되었다. 로마제국에서는 그 수요가 얼마나 많았으면 비단 금지령까지 내렸을까. 쇠락해가는 로마에서 사치풍조가 한창일 때 비단은 상류사회의 필수품으로 급속히 보급되었다. 당시에는 금만큼 귀중해서 향료와 더불어 실크로드를 대표하던 교역 물자였던 것이다.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BC4?~AD65)는 귀부인들이 해외 수입 명품 비단을 좋아하는 현실을 개탄하면서 <행복론>에서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비단옷은 신체를 보호할 수도 없으며 부끄러움마저 가릴 수 없는 옷이다. 그 옷을 한번이라도 입어본 여성이라면 마치 자신이 벌거벗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는다. 바로 이 천이 침실에서조차 남편에게 자신의 몸을 보여주기를 꺼려하는 부인네들이 공공연하게 자신의 몸매를 드러내기 위해 막대한 돈을 들여가며 상인을 부추겨 먼 나라에서 수입해온 것이다.”

비단은 중세 유럽의 화가들에게도 인기가 있었다. 피렌체 우피치미술관에 전시된 산드로 보티첼리(1445-1510)의 그림 <봄>에도 비단을 입은 여인들이 등장한다. <비너스의 탄생>과 쌍벽을 이루는 이 그림에는 비너스와 세 명의 여신 그리고 제피루스(서풍의 신)의 연인인 클로리스가 등장하는데, 모두 몸매가 살짝 드러나는 반투명 비단 드레스를 걸치고 있다. 노골적으로 여인의 몸매를 그리지 못하는 현실 때문에 비단옷을 입혀 종교와 세속의 비난을 비켜간 것이다.  

론니 플래닛 <중앙아시아>편에 소개된 요드골릭(Yodgorlik)이라는 비단 생산 공장에서 전통 방식으로 비단을 생산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전통 방식 그대로 손으로 얼레를 돌리면서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고, 염색을 하고, 수를 놓는 모습이 신기하기만 했다. 매니저인 모이둔과 직원인 유소프가 유창한 영어로 설명을 해주어서 비단 생산 공정을 자세히 알 수 있었다. 내가 삶은 번데기를 몇 개 집어 먹었더니, 가마솥에서 실을 뽑던 할머니가 선물이라고 하면서 작은 깡통 캔에 가득 담아준다. 삶은 번데기를 먹는 내가 신기했던 모양이다. 한국에서는 추운 겨울에 간식용으로 삶은 번데기를 거리에서 판매한다고 하자, 우즈백에서는 사람은 먹지 않고 가축 사료로 사용한단다.    

가마솥에 삶고 있는 하얀 누에고치를 보자 어릴 때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어릴 때 내 친구 아버지가 운영하던 농협공판장에서는 매년 추석이 지나면 누에고치를 수매했다. 우리는 누에고치를 몇 개씩 몰래 훔쳐서 책상 서랍에 넣어두곤 했다. 며칠이 지나면 그 고치에서 나방이 나오고, 그 나방은 종이 위에 조 같은 노란 알을 수없이 낳아 놓는다. 우리는 손톱으로 눌러서 그 알을 깨뜨리는 놀이를 즐기곤 했다. 알이 깨지면서 내는 소리가 재미있었던 것이다. 우리 큰집에서도 누에를 쳤다. 추석 때 큰집에 가면 큰아버지 방에서도 누에 애벌레를 볼 수 있었다. 그 방에 들어가면 이상야릇한 누에 애벌레 냄새가 났고, ‘사각 사각’ 소리를 내면서 뽕나무 잎을 갉아먹는 누에 모습이 어린 나에게는 신기하기만 했다. 이리저리 기어 다니는 애벌레가 징그러워서 나는 만지지도 못했던 기억이 난다. 

공장 안에는 국내외 바이어들을 위한 상품전시실도 있다. 이 공장에서는 기계 작업과 수작업을 병행하고 있는데, 수제품은 가격이 상당히 비싸다. 나는 25달러를 주고 아내와 엘뤼아르 어머니께 드릴 선물로 기계로 짠 실크 스카프 두 개를 샀다. 엘뤼아르는 사마르칸트에서 우리 대학으로 유학 온 우즈벡 학생이다. 나는 사마르칸트에 가서 이 친구네 집을 방문할 예정이다. 실크로드에는 지금도 이렇게 비단을 생산하는 도시들이 살아있고, 비단이 거래되고 있다.    
 

한림학보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인기기사
1
[보도] 학우들 마음속 ‘그림’으로 남은 대동제
2
[보도] 대동제, 이색 프로그램ㆍ부스로 열기 후끈!
3
[보도] 모두가 즐긴 축제, 쓰레기 처리 등 빈틈도
4
[보도] 개교 40주년, “이젠 자신감으로 100년의 도약을”
5
[보도] 함께 뛰며 하나되는 ‘한림 어울림 한마당’
6
[보도] 군 공백기 최소화, 이러닝 학점 취득
7
[보도] 학생·교직원·주민 한마음 산행 “개교 40주년 축하해요”
8
[보도] 다채로운 체험이 있는 박물관으로 오세요~
9
[보도] 빅데이터 시대, 데이터 분석 무상교육부터 자격취득까지
10
[시사] 곳곳에서 ‘히잡시위’, 이란 이슬람 정권 변화 생기나
신문사소개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24252 강원도 춘천시 한림대학길 1 캠퍼스라이프센터 9-308호 한림학보사
제보 및 문의 : news@hallym.ac.kr / 033-248-287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지혜수(간사)
Copyright © 2005 한림학보. All rights reserved. news@hallym.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