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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을 디자인하라무형 디자인 능력이 관건 디자인은 행동과 사고의 프로그래밍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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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5.04  21: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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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다. 강의실이나 도서관에 앉아 있기 힘들어지는 계절이다. 수업하면서 이런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다. 왜 학생은 앉아 있고 교수는 서서 강의를 하는 것일까? 서서 떠들자니 에너지가 두 배로 들어가는 것 같다. 앉아 있는 학생들은 졸음을 참느라 안간힘을 쓴다. 학생들이 서서 듣고 교수는 앉아서 하는 편이 오히려 더 낫다.

우리가 흔히 아는 교실의 모습은 앞에 칠판이 있고 교단과 교탁을 지나 책걸상이 나란히 배치된 방식이다. 교수와 학생이 서로 마주 보게 되어 있고, 학생들끼리는 보거나 말하는 것이 불편하게 되어 있다. 책걸상이 그나마 좀 좋은 강의실도 있는데, 우리 대학의 많은 강의실에는 일체형 책걸상들이 떡 버티고 앉아 ‘나에게 몸을 맞춰라.’ 호령하는 듯하다. 
 
이런 것들은 모두 디자인의 문제이다. 교실 디자인, 책걸상 디자인, 파워포인트 디자인 등등. 디자인하면 흔히 시각적, 미술적, 조형적 방식으로 물질의 모양을 만드는 것으로 한정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너무 좁게 디자인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더 중요한 디자인은 사실상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디자인들이다. 예컨대 서서 말하는 교수와 앉아서 듣는 학생과 같은 하나의 양식도 디자인의 결과이다. 교수와 학생이 마주 보는 설계와 겹치면서 말하는 교수와 듣는 학생이 수업의 기본 패턴을 이루게 디자인된 셈이다. 
 
교수만 말하지 말고 학생도 좀 말하게 유도하고 싶으면 먼저 이 디자인을 깨버리는 것이 좋다. 교수가 가운데 서고 빙 둘러 학생들을 앉게 할 수도 있다. 교수가 앉고 학생이 서서 오락가락하며 수업을 들을 수도 있다. 최소한 조는 학생은 없어질 것이다. 
 
사회 제도가 사실상 모두 디자인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의도하며 잘 만든 디자인도 있고, 의도하지 않았으나 그냥 그렇게 형성된 것들도 있다. 수업 시간을 몇 시간으로 할까, 일주일에 몇 번으로 나눌까, 어떤 교과목을 먼저 듣게 할까 등등이 모두 디자인이다. 학생들 또한 자신의 일상과 선택을 디자인한다. 몇 과목을 들을 것인가, 뭐부터 들을 것인가 등등. 
 
디자인 능력은 그 사회가 지닌 문화적 능력의 결정체다. 학교제도, 경찰제도, 조세제도, 의료서비스 제도 등등이 모두 무형의 디자인이고 그 틀 내에서 사회 과정이 이루어진다. 최적의 디자인을 실행하고 싶지만, 능력의 문제인지라 욕심대로만 되지는 않는다. 세월호 참사와 같은 사고도 결국은 디자인의 실패로 규정할 수 있다. 제대로 항해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운영과정과 절차가 고안됐어야 한다. 또 운영이 제대로 되는지 관리 감독하는 방식이 잘 디자인 돼야 했다. 혹자는 방식은 모두 잘 디자인됐는데 운영자들이 지키지 않아서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아니다. 디자인은 운영자가 지키지 않으면 안 되도록 하는 것도 포함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더욱 철저하고 정밀한 디자인을 한국 사회는 아직 고안하고 실행할 능력이 부족한 것이다. 이러한 능력 부재와 그로 인한 실패 현상은 사회 전 부문에 두루 산재해 있다. 
 
엉성한 디자인은 엉터리 운영과 부정부패 같은 대가를 요구한다. 지키지 않아도 빠져나갈 수 있는 빈틈이 많기 때문이다. 디자인이 엉성할수록 대충대충 해도 되고, 또 아예 디자인이 잘 못 된 경우에는 필연적으로 망하는 결과만 있을 뿐이다. 무슨 프로그램을 할지가 디자인되지 않은 엠티는 결국 술잔치로 끝나게 되고, 잘못 디자인된 생활시간표는 대학 4년을 허송세월로 만들 수도 있다.
 
무형의 디자인이 지니는 파워는 엄청나다. 기업에서는 무형의 디자인이라는 말보다는 이노베이션, 즉 혁신이라는 용어를 오랫동안 선호해 왔다. 혁신은 사실상 새로운 디자인을 말한다. 기존의 방식이 아닌, 기존의 방식을 넘어선, 그리고 성과를 높이는 방법. 이 혁신이 결국 디자인 사고에서 비롯되고 디자인 능력에 의존한다고 판단하여 탄생한 학교가 스탠포드대학에 있는 디 스쿨 (d.school) 이다. 예술대학의 디자인스쿨이 아닌, 혁신적 사고를 요구하는 의미에서의 디자인스쿨이다. 우리 대학과 우리 사회가 나갈 길도 여기에 있다. 디자인 능력을 키우거나, 아니면 죽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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