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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 엄마가 함께 쓴 한국 근대사와 분단 이야기 박완서의 『엄마의 말뚝』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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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5.21  14: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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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말뚝」 연작은 한국의 근대성과 분단 현실이라는 예민한 문제를 여성의 시각에서 포착하였다는 점에서 박완서 작품 세계의 특징을 응축해서 보여주고 있다."

‘천의무봉의 문장’, ‘우리 시대의 뛰어난 이야기꾼’. 불혹의 나이 사십 세에 등단해 100여 편이 넘는 중ㆍ단편과 장편, 산문집을 펴냈던 작가 박완서(1931~2011)를 일컫는 명칭은 많다. 박완서의 작품 세계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전쟁과 분단의 상처, 한국 사회의 물신주의와 중산층의 속물성 비판,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결합으로 파생된 여성문제에 대한 분석과 비판이 그것이다.

특히 「엄마의 말뚝」 연작은 한국의 근대성과 분단 현실이라는 예민한 문제를 여성의 시각에서 포착하였다는 점에서 박완서 작품 세계의 특징을 응축해서 보여주고 있다. 「엄마의 말뚝」은 1980년부터 발표되기 시작한 연작소설로서 총 세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식민지 시기를 배경으로 한 「엄마의 말뚝」1,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엄마의 말뚝」2, 현재 시점에서 투병 중이던 엄마가 돌아가시기까지의 경위를 그린 「엄마의 말뚝」3으로 되어있다. 연작소설은 작가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일인칭 서술자 형식을 취한다. 이 중 「엄마의 말뚝」1과 2는 성인이 된 딸이 과거 유년기와 성장기를 회상하면서 가족 이야기 속에 한국 근ㆍ현대사를 녹여낸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엄마의 말뚝」1은 식민지 시기를 배경으로 엄마가 어린 ‘나’와 오빠를 이끌고 고향인 개성 박적골을 떠나 서울 변두리인 서대문구 현저동에 삶의 터전을 마련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낙원과도 같은 박적골에서 행복한 유년기를 보내던 나는 엄마의 손에 이끌려 도착한 대처 서울에서 살 곳이 문밖, 그것도 우리 집이 아닌 세 들어 사는 곳이라는 데 실망한다. 게다가 엄마는 셋방살이에서 해서는 안 될 여러 가지 금기를 나에게 강요하고, 나는 소소한 군것질과 이웃 아이들과의 일탈로 결핍감을 해소하려고 한다. 그 와중에 오빠가 주인으로부터 후레자식이라는 모멸감 어린 소리를 듣게 된다. 엄마는 신앙과도 같은 오빠가 이런 욕을 먹자 원래 문안에 집을 마련하려고 했던 계획을 단념하고 문밖 현저동 꼭대기에 집을 마련한다. ‘괴불마당’으로 불린 이 집으로 이사 온 첫날 엄마는 “기어코 서울에 말뚝을 박았구나.”라고 감개무량해 한다. 엄마가 기생 옷 삯바느질로 생계를 꾸리면서도 ‘대처로의 출분’을 꿈꾸고 기어코 서울에 터를 잡고자 한 이유는 남편의 죽음이 시골의 전근대적인 미신과 미개한 풍습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자식들에게는 그런 삶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이후 일제 말기와 해방을 거치면서 우리 가족은 문안에다 집을 마련했지만 때때로 현저동 시절을 그리워한다. 소설 마지막은 성인이 된 내가 끊임없이 문안을 동경하면서 문밖에 뿌리를 박은 데서 비롯된 엄마의 문밖의식, 고향인 박적골을 미개한 곳으로 여기면서도 서울에서 만난 막돼먹은 이웃들을 경멸할 때는 양반 가문 출신이라는 자부심을 근거로 삼는 엄마의 모순과 이중성을 회상하는 것으로 끝난다. 엄마가 바라던 신여성이 되었지만 엄마의 이상과는 거리가 있는 현실의 나, 문안과 문밖, 시골과 대처와 같은 이분법을 통해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옛 것도 아닌 것이, 새것도 못되는” 한국의 근대성이 지닌 모순이다.

「엄마의 말뚝」2는 중산층 전업주부로 안정된 삶을 살아가던 ‘나’가 엄마의 다리 부상을 계기로 과거 한국전쟁 당시 오빠를 북한 인민군의 총살로 잃게 된 참담한 기억을 떠올리고, 그 기억을 공유한 엄마와 딸이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엄마와 나는 “똑똑하고 지조 있던” 오빠가 전쟁 때 의용군에서 도망쳐 나온 뒤 정신이 파괴되고 끝내 인민군 군관에게 총살당하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고, 전쟁통에 이런 오빠의 죽음을 서둘러 묻으려 했다는 공통의 경험과 죄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나는 세월이 흘러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룬다. 엄마도 아들이 남긴 손자들을 거두어 기르면서 평화롭게 늙어가고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엄마의 다리 수술을 계기로 하여 3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엄마의 평온한 삶 이면에 전쟁의 상처와 분노, 원한이 감춰져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충격을 받게 된다. 하지만 나는 환자의 것으로 보기 힘든 엄마의 괴력과 광기를 이해한다. 엄마와 나는 오빠의 참혹한 죽음을 함께 경험한 유일한 육친이기 때문이다. 소설 마지막에서 엄마는 자신이 죽은 후 화장을 해서 유해를 아들의 유해를 뿌린 곳에 뿌려 달라고 나에게 부탁한다. 이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간 ‘분단이라는 괴물’에 홀로 맞서려는 엄마만의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엄마의 말뚝’은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된다. 「엄마의 말뚝」1에서는 일차적으로는 삶의 터전인 ‘괴불마당집’을 일컫지만, 심층적으로는 자식들이 신문물과 신식 교육의 혜택을 받아 성공하기를 바라는 엄마의 강렬한 열망과 의지를 상징하는 것으로, 이 가족이 낯선 서울에 입성해서 뿌리를 내렸음을 의미한다. 「엄마의 말뚝」2에서는 한국 전쟁으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이산의 아픔을 겪어야 했던 우리 민족의 마음 속에 숨어 있는 상처와 분단 상황에 대한 분노로 볼 수 있다.

「엄마의 말뚝」 연작은 딸이 쓴 엄마 이야기이자 가족 이야기이다. 하지만 개인적인 가족사에 그치지 않고 평범한 일가족이 어떻게 식민지 시기, 일제 말기, 한국전쟁과 같은 한국 근ㆍ현대사의 중요한 고비 속에서 상처를 입고 살아남는지를 생생하게 복원해내고 있다는 점에서 보편적인 의미를 획득하고 있다. 더욱이 이런 역사적 사건들을 남성의 시각이 아닌 여성의 시각과 체험, 심리에 바탕을 두어 그리고 있어 기존 가족사 소설이나 분단 소설과는 다른 성취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김양선(교양기초교육대학ㆍ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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