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교양
거안제미(擧案齊眉), 사랑과 공경의 마음으로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6.09.03  14:25:19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이번 고사성어는 '눈썹 높이에 맞춰 밥상을 든다'는 뜻을 가진 거안제미(擧案齊眉)다.
양홍과 맹광의 일화를 통해 거안제미 속 내포된 진정한 의미를 알아보도록 하자.

어떤 남녀관계가 가장 이상적일까. 결혼생활은 어떠해야 오래 지속될 수 있을까. 최근 한 결혼정보업체가 결혼을 준비하고 있는 미혼 남녀들에게 물었다고 한다. ‘이상형인 배우자감을 찾는 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인가?’ 남성은 자신의 ‘능력’을, 여성은 자신의 ‘외모’를 첫 번째로 꼽았다. ‘능력’이라 함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결국 ‘경제적인 능력’을 말하는 것일 테고, ‘외모’라 함은 성형 열풍이 불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여성적인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일 게다. 그런데 결혼생활에서 정말 이런 것이 근본적인 걸림돌일까.

중국 후한(後漢) 시대, 부풍군 평릉현에 살았던 은사(隱士) 양홍(梁鴻). 그의 집은 가난했지만 그는 절개가 곧은 선비였고, 나름의 뜻이 있어 장가를 늦추고 있었다. 그런데 같은 현에 맹광(孟光)이라는 처녀가 살았다. 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맹광은 피부가 까무잡잡하고 몸은 비대하며 돌절구를 들 수 있을 정도로 힘이 셌다고 한다. 맹광은 이처럼 그 외모가 별로였지만 안목이 높아서 서른 살이 되도록 시집을 가려 하지 않았다. 그녀의 부모는 딸의 혼사 문제로 속앓이를 했다. 그녀가 시집을 못 가는 이유는 사윗감들이 맹광을 못생겼다고 나무라서가 아니라, 맹광이 선을 본 신랑감을 못마땅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부모가 그 까닭을 물었더니 맹광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소녀는 양홍 같은 훌륭한 분이 아니면 시집을 가지 않겠습니다.” 맹광의 바람을 전해들은 양홍은 예물을 보내 그녀를 아내로 맞이했다.

맹광은 시집가기 전에 소박한 베옷을 준비해두고 혼례를 올리는 날에는 예복을 곱게 차려입었다. 그런데 양홍은 그런 신부의 모습을 못마땅하게 여겨 7일 동안이나 그녀의 얼굴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맹광은 양홍에게 용서를 구하며 물었다.

부군이 의가 높아 여러 아녀자를 물리쳤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 역시 별 쓸모는 없지만 이미 여러 사람의 구혼을 거절했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감히 부군께 죄를 청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왜 자신을 거부하는지 까닭을 물은 것이다.) 양홍이 대답했다.

나는 소박한 옷차림으로 깊은 산중에 은거할 수 있는 배필을 원했는데, 당신은 비단옷을 입고 분을 바르고 왔으니 내가 어찌 기꺼워하겠소?

그 말뜻을 이해한 맹광은 예복을 벗고 준비해 온 베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러자 양홍이 기뻐하면서 말했다. “이제야말로 양홍의 아내답구려!” 그 후로 그녀는 꾸미지 않은 촌부의 모습으로 양홍과 산속으로 들어가 농사짓고 베를 짜면서 생활했다.

양홍은 농사짓는 틈틈이 시를 지어 친구들에게 보냈는데, 그 내용 중에 후한의 조정과 황실을 비방한 대목이 문제가 돼 목숨이 위태로운 처지가 되었다. 그는 오(吳)나라로 도망쳐 그곳의 명문가인 고백통(皐伯通)이란 사람에게 몸을 의탁하고 방앗간지기 노릇을 하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나갔다. 방앗간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아내는 싫은 내색 없이 밥상을 차리고 눈썹 높이에 맞춰 들어 올려 남편에게 공손히 바쳤다. 이러한 부부의 모습을 본 고백통은 큰 감명을 받아 그들에게 새 보금자리와 생활 터전을 마련해줘 그들을 도왔고, 그 덕에 양홍은 수십 편의 책을 저술할 수 있었다.

거안제미(擧案齊眉). ‘눈썹 높이에 맞춰 밥상을 든다’는 뜻의 이 말은 양홍과 맹광의 이야기에서 비롯됐으며, 흔히 남편을 깍듯이 공경하는 아내를 묘사하는 말로 이해된다. 밥상을 차려서 눈썹 높이까지 들어 올려 남편에게 바친다고 하면, 여성의 입장에서 살짝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다. 그리고 남편을 공경해야 하는 아내의 의무만 강조한 이야기가 아닌가 해 반감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런데 다시 한 번 이 이야기를 곱씹어 보면 내포하고 있는 의미가 얕지 않다.

우선 양홍의 처지는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의 기준으로 볼 때 단연 ‘꼴찌 신랑감’이다. 집이 가난한 데다 절개까지 있었다면 아무리 학식이 높다 하더라도 그는 쉽게 벼슬길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산속에서 농사만 지었던 이유는 관직을 얻어 벼슬살이를 하기에는 조정과 황실의 부정부패가 너무 심하고 세상이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올곧고 개결한 선비들이 혼탁한 세상에서 벼슬하기를 거부하고 산속에 은거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양홍도 바로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원래 가난한데다가 절개를 굽히고 현실과 타협할 수 없다면 그의 삶이 경제적으로 궁핍하리라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이런 남자를 남편으로 맞이하고자 하는 여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당시 미혼 여성들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남자의 경제적 능력을 결혼 조건의 첫째로 꼽았을 테니까.

그런데 그런 양홍이 아니면 결혼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여자가 있었으니, 바로 맹광이다. 그녀는 황제(皇帝)의 처 모모(嫫毋), 제(齊)나라 선왕(宣王)의 왕후 종리춘(鍾離春), 동진(東晉)의 명사 허윤(許允)의 처 완씨(阮氏)와 함께 중국의 ‘4대 추녀’로 불린다. 피부가 검고, 몸이 비대하고, 힘이 장사인 여자. 남성들이 바라는 ‘아름답고 매력적이며 여성미가 물씬 풍기는’ 그런 여자와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 양홍은 이 여인을 아내로 맞이했고, 그녀가 화려하기보다는 자신과 함께 어려운 삶을 씩씩하게 헤쳐 나갈 수 있기를 원했다. 양홍을 바라보는 맹광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녀는 남편의 가난을 부끄럽고 불편하게 여기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의 높은 학식과 곧은 절개를 높이 평가했음이 분명하다. 그래서 좋은 혼처를 다 마다하고 양홍만을 기다린 것이 아니겠는가. 양홍도 이런 여자라면 가난하고 소박한 자신의 삶의 여정을 함께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에서 청혼했을 것이다.

양홍이 필화(筆禍)를 입어 오나라로 망명하고 방앗간지기 같은 허드렛일을 하게 됐을 때도 맹광은 남편을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았다. 빈한한 살림에 밥과 찬은 넉넉했을까. 거친 밥에 나물 한 가지. 보잘것없는 밥상을 남편에게 내오면서 맹광은 그가 안쓰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곧은 마음을 굽히지 않는 그의 태도가 존경스럽기도 했으리라. 남편을 격려하고 위로하기 위해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었을까. 차린 것 없는 가난한 밥상이지만 있는 힘껏 높이 들어서 남편에게 가져다주는 것. 이것은 다름 아닌 남편을 향한 사랑과 공경의 유일한 표현이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양홍이 그런 아내를 무시하고 하대했을까. 아내와 함께 가난한 살림을 꾸려가면서 그 역시 아내가 자신과 뜻을 함께해 준 것에 대해 고마움과 미안함이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는 ‘거안제미’하는 아내를 향해 똑같이 예를 갖춰 감사하는 마음으로 밥상을 받았으리라. ‘부부가 서로 공경하기를 손님처럼 한다.’는 뜻의 ‘상경여빈(相敬如賓)’이라는 말에서도 볼 수 있듯이, 좋은 배우자는 ‘서로 공경할’ 줄 아는 사람이다. 양홍은 끝내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아내와 손수 밭일과 집안일을 하며 검소한 생활을 영위하는 것으로 낙을 삼았다고 한다. 양홍은 경제적 능력이 부족해서, 맹광은 외모가 예쁘지 않아서 결혼생활이 불행했던가. 우리가 소위 말하는 ‘루저’들의 결합이라고 감히 비하할 수 있겠는가. 서로의 장점을 알아봐 주고 마음을 함께하는 것, 그로부터 비롯된 신뢰와 공경, 그리고 사랑까지. 양홍과 맹광이 보여주는 이상적인 부부의 모습이다.

/강지희(퇴계학연구원 전임연구원, 한림대학교 교양기초교육대학 강사)

한림학보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인기기사
1
[보도] 후보자 정책 공청회, 올해도 아쉬움 남아
2
[보도] 잊지 말고 신청하자, 동계 계절학기 수강신청
3
[보도] 너의 관심사를 보여줘! ‘한림 덕후 파이터’ 대회
4
[보도] ‘한강전’ 추위도 날린 열정…종합우승은 놓쳐
5
[보도] 유학생ㆍ재학생 모두 함께한 김장봉사
6
[보도] 봉사와 함께한 1년 ‘우수봉사자 선발대회’ 열려
7
[선거특집] 쏟아진 256개 공약, 다양해진 선택지
8
[선거특집] 단과대 경선 토론회, 치열한 공방 이어져
9
[시사] 빈살만 방한…국내 기업과 ‘네옴시티’ 계약 체결
10
[시사] ‘화물연대’ ‘학비노조’ 등 노동계 잇단 총파업
신문사소개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24252 강원도 춘천시 한림대학길 1 캠퍼스라이프센터 9-308호 한림학보사
제보 및 문의 : news@hallym.ac.kr / 033-248-287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지혜수(간사)
Copyright © 2005 한림학보. All rights reserved. news@hallym.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