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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을 파헤치다 프란츠 카프카의 『 변신 』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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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0.01  15:4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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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의 붕괴가, 개인에 대한 압제가 시작되는 시대였다. 1915년, 1차 세계대전이 본격적으로 막을 올렸다. 합리성과 이성에 대한 믿음이 붕괴되고, 느슨했던 관습적 권력들은 체계적으로 조직화된 압도적인 근대의 권력으로 대체돼 개인을 무자비하게 압살했다. 이제 인간은 그리스 로마시대의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낭만적인 생명체가 아니었다. 권력 앞에 발가벗겨진 하나의 부품이요, 하찮은 존재가 돼버린 것이다. 1915년에 저술된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은 현대까지도 이어지는 인간성의 파괴를 다룬다.

변신의 이야기는 간단하다. 주인공 그레고르는 일가를 책임지는 가장이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그는 벌레가 된다. 그의 가족들은 벌레가 된 그를 일단은 가족의 일원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혐오스러운 벌레가 할 수 있는 것은 사실상 아무것도 없었기에 감금돼 비참하게 살아간다. 가장인 그가 벌레가 되자 집의 살림은 점차 어려워진다. 가족들은 생계를 위해 일을 하기 시작한다. 벌레가 된 그레고르는 철저히 무력하기에 이런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없다. 가족들은 점차 그레고르를 가족의 구성원으로 생각하지 않게 된다.

그레고르는 결국 아버지가 홧김에 던진 사과에 맞아 죽는다. 남은 가족들은 그레고르의 존재로 인한 고통에서 해방된 것을 홀가분하게 여기며 소풍을 떠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꿈꾼다.

변신은 파격적인 책이다. 동화 같은 이야기에서 만물의 영장인 인간을 벌레로 바꾸는 것은 상당히 강렬하게 인간성의 상실을 보여준다. 그와 가족은 작은 기계적 사회를 이룬다. 그레고르가 기계적 사회의 부품으로서 정상적인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자 배제된다. 이를 현실과 연계해 생각해볼만 하다. 나폴레옹이 근대를 시작한 이래 사회의 부품으로서 미달되는 인간들은 배제되거나 스스로를 파괴하곤 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개인은 일반적으로 국가로 대표되는 거대한 권력이 정해주는 명칭에 따라 가치를 부여 받는다. 과거 박정희 대통령 시절 많은 이들이 ‘산업의 역군’으로 불렸다. 이를 거부하거나 부응하지 못하면 철저히 배제됐다. 그레고르도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으로 불려진다. 그러나 벌레가 돼 의무를 수행치 못하게 되자 배제된다. 이 때 각자의 개성과 존엄에 대한 배려는 없다. 강력한 권력의 요구에 따라야 할뿐이다. 카프카는 오랜 세월이 지나도 유지되는 권력에 의한 존엄성의 파괴와 정체성의 강제적 부여를 통찰한 것이다.

변신을 다루며 음악에 대해서 언급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레고르에게 음악은 정신적 가치의 표상이자 인간성의 보루였다. 그가 생각하기에 음악에 감동하는 자신은 벌레가 아니었다. 그러나 숭고한 인간성을 지탱해주는 음악 또한 영락해버린다. 그레고르가 인간으로 있을 때 최선을 다해 여동생이 배울 수 있게 해주고 벌레가 되었을 때 위안을 얻은 음악. 그 음악은 하숙인들을 위한 단순한 여흥거리로 낭비돼 버린다. 주목해야 할 것은 그 소비재적 음악마저도 그레고르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정신적 가치 따위도 포용성을 상실하고 아우라가 퇴색된다. 인간을 인간으로서 있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정신적 가치가 아니던가? 이제 정신적 가치도 무가치하게 소모되고 인간을 품어주지 않으니 인간을 인간이라 할 수 있겠는가? 오늘날까지도 통용될만한 화두라 하겠다.

물론 『변신』도 아쉬운 점이 몇 가지 있다. 첫 번째는 그레고르가 너무 나약하다는 것이다. 그는 체제로부터 배제되고 이를 수용한다. 그리고 끝이다. 최후마저도 자의가 아닌 던져진 사과라는 타의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기묘한 평안함과 함께 죽는다. 차라리 권력과 체제에 대한 저주를 남기며 죽었다면 좋았을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변신은 권력에 압살당하는 개인에 대해서 다뤘기에 일부러 나이브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그래도 저항은 있어야 했다. 어떤 저항도, 분노도 없다면 인간은 단순한 부품이 돼버린다.

두 번째는 해결책의 부재다. 예를 들어 무라카미 하루키는 글을 통해 ‘파편화 된 개인들은 사랑을 통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해결책을 제시한다. 이런 해결책은 가타부타를 따지기 전에 글의 완결성을 위해서 포함돼야 한다. 문제를 제시했다면 피상적이나마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왜냐하면 문제만 제시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변신은 근대 이후 백 년은 갈만한 강렬한 문제를 제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청사진이 없다. 인간성을 상실하고 저항하지 못하다 죽는다. 허무하다.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겠다면 차라리 벌레가 된 그레고르가 가족을 잡아먹고 하숙인도 잡아먹다가 사살되는 파괴적 결말이 좋았을 것이다. 무력하게 소모될 바에야 부조리한 시스템과 싸우다 파멸하는 삶이 훨씬 인간답다.

변신의 내용은 범위와 강도만 다를 뿐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변신은 압도적이고 실체적인 권력에 대해서 다뤘지만 지금은 훨씬 교묘하고 세밀한 권력가 있다는 것이다. SNS와 대중매체는 끝없이 프레임을 만들며 일방적으로 개인을 호명한다. 이에 대해 개개인은 지극히 취약하다. 게다가 종종 개인이 자발적으로 권력을 타인에게 투사하기도 한다. 어떤 이가 조금이라도 튀면 손가락이 자판을 경쾌하게 누비고, 곧이어 무자비한 제재를 가한다. 우리 모두가 하나의 부품인 동시에 개인을 부품으로 떨어뜨리는 보이지 않는 권력이 됐다. 보이지 않는 권력의 시대, 자칫하면 문제가 있는지도 모르고 살아갈 수 있는 시대다. 변신을 읽음으로 인간성에 대한 진정한 고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강민형(러시아ㆍ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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