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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포지교(管鮑之交), 그대 이런 친구를 가졌는가?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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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0.08  15:0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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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고사성어는 관중과 포숙의 우정을 뜻하는 관포지교(管鮑之交)다. 절친한 사이였던 관중을 항상 신뢰한 포숙의 일화를 통해 우리는 포숙과 같이 나를 알아봐 주는 친구를 가졌는지, 내게는 포숙처럼 사람을 알아보는 안목이 있는지 돌아보자.

 

 

  관중과 포숙은 모두 제(齊)나라 사람으로, 어린 시절부터 친한 친구였다. 포숙은 관중의 현명함을 일찍부터 알아봤다. 관중은 곤궁해서 언제나 포숙을 속였지만, 포숙은 항상 그를 잘 대해 줬고 속인 일에 대해 따지지도 않았다. 포숙이 관중을 얼마만큼 신뢰했는가는 몇 가지 일화를 통해 드러난다.

  관중은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다. “내가 가난하게 살았을 때 포숙과 장사를 한 적이 있었다. 이익을 나눌 때마다 내가 더 많은 몫을 차지하곤 했으나, 포숙은 나를 욕심쟁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가난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한 번은 내가 포숙을 대신해서 어떤 일을 경영하다가 실패해 그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지만, 포숙은 나를 어리석다고 하지 않았다. 운세에 따라 좋은 때와 나쁜 때가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 같으면 같이 장사를 해서 남은 이익을 똑같이 나누는 것이 공평하다 여겼겠지만, 포숙은 관중의 가난한 처지와 상황을 고려하고 그가 더 많은 몫을 가져가게 했다. 자신에게 금전적으로 손해를 끼쳤을 때도 포숙은 그를 비난하거나 절교하지 않고 단지 관중이 운이 없어서 그랬다고 생각했다. 친구의 실력과 인간성에 대한 그의 깊은 믿음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관중은 일찍이 세 번이나 벼슬길에 나갔다가 세 번 다 군주에게 쫓겨난 일이 있었다. 하지만 포숙은 그를 무능하다거나 모자란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관중이 충분한 실력을 갖추고 있지만, 아직 때를 만나지 못해서 그렇게 됐다는 걸 포숙은 알고 있었다. 관중은 또 세 번 전쟁에 나갔다가 모두 도망친 적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를 겁쟁이라고, 배신자라고 욕했지만 포숙만은 그를 두둔했다. “관중은 늙은 홀어머니를 모시고 있지 않은가?” 효자인 관중을 사람들은 더 이상 비난할 수 없었다.

  이 정도만 해도 포숙은 참 대단한 친구이다. 객관적 입장에서 보면 관중은 때때로 비판받아 마땅할 짓을 하는데도 그때마다 포숙은 한 번도 다른 사람들처럼 그의 잘못을 지적하거나 비난하지 않았다. 관중이 아무리 실수를 하고 실패를 해도 포숙은 늘 그의 편에 서서 그를 변호하고 이해하려 했다. 그런데 두 사람의 우정의 깊이를 짐작케 하는 더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제나라 임금은 희공(僖公)이었는데, 그에게는 제아(諸兒), 규(糾), 소백(小白) 등의 세 아들과 문강(文姜)이라는 딸이 있었다. 장년이 된 후 포숙은 제나라 공자(公子-제후의 아들)인 소백의 보좌관이 됐다. 그런데 얼마 후 희공의 둘째 아들인 규의 보좌관이 나이가 들어 은퇴하게 됐고, 포숙은 공석이 된 그 자리에 관중을 천거했다. 마침내 관중은 임금의 둘째 아들을, 포숙은 임금의 셋째 아들을 섬기게 된 것이다. 첫째인 제아는 태자로서 왕위를 물려받을 처지에 있었지만, 자질이 매우 부족했고, 그에 반해 규와 소백은 두뇌가 명석하고 공부에도 열심이었다.

  제아는 희공이 죽은 후 자리를 물려받아 임금이 됐지만, 그는 애초부터 문제가 많은 사람이었다. 그는 공부하기를 즐기지 않았을 뿐 아니라 국가의 경영에도 별 관심이 없었고 주색잡기에만 능했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그가 배다른 여동생이었던 문강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는 것이다. 이들의 근친상간은 문강이 노(魯)나라 군주와 혼인한 후 10여 년 만에 친정인 제나라를 찾아왔을 때도 계속됐다. 문강은 양공(襄公-제아)의 침소에 수시로 드나들었고 결국 남편에게 발각되고 말았다. 문강의 남편 노 환공(桓公)은 분노해 강을 죽이려고 했는데, 제 양공은 그런 환공의 처소에 아들 팽생(彭生)을 보내 그를 살해했다. 마침내 이 일은 외교 문제로 비화돼 노나라에서 전쟁을 불사할 정도에까지 이르렀고, 양공은 아들 팽생을 처형하는 것으로 사건을 일단락 지었다. 이후 양공은 환락과 음탕한 생활에 더욱 골몰했고 아들 팽생을 죽인 일로 인해 정신병까지 얻어 결국 피살되었다. 그때 양공의 두 아우 규와 소백은 국내의 어지러운 정세를 피해 각각 노(魯)나라와 거(莒) 땅에 머물고 있었다. 제나라 양공이 피살되고 그 틈을 타서 임금이 됐던 사촌 공손무지(公孫無知)마저 죽게 되자, 공석이 된 군주 자리를 놓고 규와 소백은 한판 승부를 벌이게 된다.

  두 사람 중 누가 먼저 제나라 수도 임치(臨淄)에 입성하느냐가 관건이었는데, 거리상으로 볼 때 포숙이 모시고 있던 소백이 관중의 주군 규보다 임치에 더 가까운 곳에 있었다. 관중은 자신과 규가 아무리 말을 달려 부지런히 제나라로 간다 해도 소백과 포숙보다 늦게 도착할 것을 알았다. 그는 자신의 주군을 제후로 만들기 위해 소백을 살해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소백 일행이 거 땅을 떠나 임치로 향하는 길목에 잠복해 있다가, 수레를 타고 가는 소백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소백은 쓰러졌고 관중은 목적을 달성했다 여겼다. 그런데 사실 소백은 죽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관중이 쏜 화살이 소백의 허리띠 쇠붙이 장식을 맞춘 것이다. 그러나 소백은 죽은 척하고서 그대로 수레를 타고 갔고, 그날 밤 머무는 여관에서 관을 준비하여 장례행렬로 위장하고 제나라 수도로 향했다. 관중의 추격을 따돌린 기막힌 묘수였다. 소백이 죽은 줄 알고 안심했던 관중은 주군인 규에게 돌아가 여유 있게 제나라 수도로 향했다. 결국, 포숙의 일행이 먼저 임치에 도착했고 소백은 즉위식을 거행한 후 환공(桓公)이 됐다. 이에 규와 관중은 오던 길을 되돌려 노나라로 다시 가서 군사를 빌려 제나라를 공격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규는 노나라에서 처형당했고 그의 가신들 모두 죽임을 당했는데, 관중은 생포돼 제나라로 송환됐다.

  제 환공은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관중이었으므로 당연히 처형하려 했는데, 이때 포숙이 관중을 죽여선 안 된다며 환공을 설득했다. “주군께서 제나라 하나만을 다스리신다면 대부(大夫)인 고혜(高傒)와 소신 두 사람이면 충분하지만, 천하의 패자(霸者)가 되시려 한다면 그에 걸맞은 재상은 관중뿐입니다.” 평소 포숙을 깊이 신뢰했던 환공은 그의 건의를 받아들여 관중을 죽이지 않고, 심지어 재상의 벼슬을 내리기까지 했다. 포숙은 관중보다 낮은 자리에서 그를 도왔지만 전혀 불만이 없었다. 관중은 40여 년간 재상의 자리에 있으면서 정치, 경제, 군사 등 모든 방면에서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했고, 이에 힘입어 제 환공은 춘추시대 첫 번째 패주(霸主)가 됐다.

/강지희 (교양기초교육대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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