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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 선택의 갈등 이후 얻는 희망 최인훈의 『광장』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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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0.29  17: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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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은 개인사다. 개인사가 모여 한국사가 된다. 한국사는 세계사의 한 부분이며, 세계사는 인류사나 다름없다. 즉 소설은 인류사이다. 소설가는 당대 삶의 낱알들을 모은 창고지기라 할 수 있다. 최인훈이 ‘전후 최대의 작가’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는 지금 우리의 삶을 가장 명철하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 충실한 창고지기로서 그가 증언하고 있는 우리의 근현대사는 어느 사회철학자의 시각보다 날카롭다. 그의 창고에 있는 양식 중 하나가 『광장』이다.

대중/본격, 통속/순수의 구분이 희미해졌어도 좋은 소설과 나쁜 소설은 여전히 존재한다. 대체로 좋은 소설은, 주인공의 사적 체험이 인류의 삶을 총체적으로 인식하는 데 기여한 소설인데, 『광장』이 그렇다. 주인공 이명준은 한국전쟁 때의 청년으로 20세기 냉전의 최대 피해자인 우리 민족의 모습을 상징한다.
이명준이 본 남과 북의 이데올로기 모습은 몇 가지로 요약된다. ▶ 미군부대의 식당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받아 자기 집을 치장하는 남한의 정치 ▶ 남한의 부르주아는 대부분 친일행동을 한 사람들이고 ▶형사들이란 해방된 조국에서도 일제의 앞잡이처럼 좌익을 잡는 역할밖에 하지 않는 부류들 ▶반일투쟁하던 아버지는 맥 빠진 월급쟁이로 전락해 버렸고 ▶현실의 평등에는 쓸모없는 성서와 같은 코뮤니즘 ▶신명다운 신명이 아닌 흉내뿐인 북한의 신명과 ▶인민 위에 내리누르는 무거운 분위기로 인민에게서 웃음을 빼앗은 북한의 정치 ▶억압적인 언론 검열에 회의해 인민군에 참전해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군사문화와 정치제제 등이다.

이명준의 비판적인 성찰은 우리 근현대사의 연원을 드러내며 반성을 촉구하고 올바른 미래를 제시한다. 현실비판이 날카롭게 제시됐다고 모두 좋은 소설은 아니다. 소설도 예술이기 때문에 심미적 완성도가 높아야 한다. 예술의 심미성은 표현의 수준에서 가늠된다. 특히 소설의 심미성은 서사의 정합성에 개성적인 문체가 주제를 향해 조화롭게 구성될 때 드러난다.

『광장』의 서사는 작가의 다른 작품보다 비교적 단순한 구성으로 이뤄져 있다. 현재진행사에 과거사가 액자 형식으로 끼워져 있는데, 현재는 동지나 바다 위의 타고르 호 선상의 사건들이고, 과거는 남한과 북한의 체험들이다. 소설이 다루고 있는 사건의 문제성도 중요하지만 그 문제에 대처하는 인물의 내면도 소중하다면, 『광장』은 이명준을 통해 공공의 파블라를 비판하려는 단순한 구조가 아닌, 그로 인해 한 개인이 어떻게 좌절하고 방황하며 그 끝에 어떤 성찰을 얻어내 행동으로 옮기는가를 파헤친 소설이기에 독자들에게 꾸준히 읽히는 것이다.

외부 사건에 응전하는 주인공의 사건은 ▶책을 읽으며 삶의 보람을 느끼지만 곧 부질없음을 알게 됨 ▶갈빗대가 버그러지도록 뿌듯한 것을 찾음 ▶S서에 불려가 호되게 고문을 당함, ▶윤애의 사랑을 삶의 보람으로 삼고 살아가려고 함 ▶윤애의 무의식적인 몸의 거부 때문에 실망함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고 월북함 ▶이북의 현실을 보고 좌절하지만 이북에서 은혜를 만나 삶의 참 보람을 찾음 ▶ 은혜와의 이별로 삶의 의미를 잃음 ▶윤애의 남편이 된 태식을 고문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고 함 ▶그러한 가학 또한 아무런 소용이 없는 짓임을 인식함 ▶은혜를 다시 만나 그녀의 사랑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음 ▶그녀가 전사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잃음 ▶바다에서 행방불명 등이다. 『광장』은 남북의 이념이나 체제 비판보다 관련 사건들이 이명준의 의식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고 작용하는가에 초점을 맞춰 서술된다. ‘사랑과 구원의 문학’이라는 평가가 과장된 것이 아니다.

최인훈은 『광장』을 열 번 고쳐 세상에 내놓았다. 1960년 처음 발표했을 때는 600매 분량의 경장편이었는데, 지금은 900매 정도의 온전한 장편이 됐다. 작가 나이 25세에 쓰여져, 77세에 10번째로 수정이 이뤄진 것이다. 갈매기에 대한 의미부여 외에는 달라진 내용은 없고(최근 태식의 고문을 꿈으로 설정했다), 대부분의 개작은 문장과 단어의 첨삭으로 진행됐다. 어려운 한자어는 한글로 표현했고, 시제를 현재형으로 많이 고쳤다. 독자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좋은 소설’은 독자로 하여금 주인공과 일체돼 사건을 겪어나가면서 최종 행동을 함께 한 뒤에 인생과 우주에 대해 어떤 깨달음을 얻게 한다. 최인훈은 주로 이명준의 심리와 행동에 독자가 자연스럽게 빙의되도록 문장을 다듬고 다듬었다. 특히 이명준의 의식에 외부 사건을 재편하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데 중심을 두고 개작했다.

『광장』은 3인칭 시점이어도 1인칭보다 깊은 내면의 상황을 드러내기도 하고, 과거의 서사도 현재로 보이게 한다. 이는 인물의 행동 외부와 내부에 화자를 개입시켜 그 둘의 적절한 조율에 따라 독자의 마음도 이완과 긴장을 갖게 하는 기법이다. 이 같은 내부초점화와 외부초점화의 자연스러운 운용은 소설을 더욱 현장감 있게 만들어 준다. 독자는 『광장』을 읽으며 이명준과 함께 깊게 절망하지만, 읽고 난 뒤에는 희망을 간절히 생각하게 된다.

이념 선택 갈등 이후의 이명준을 다시 보고 싶다면 최인훈의 만년작 『화두』를 읽어보기 바란다. 그리고 이성의 기호로 감성의 장엄함을 전해받고 싶다면 『화두』의 시적 형상물인 『바다의 편지』도 읽기를 권한다.

/김기우 (교양기초교육대학ㆍ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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