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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구검(刻舟求劍), 과거가 나를 붙드네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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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1.05  15:3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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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고사성어는 ‘배에 새기고 칼을 찾는다’는 뜻을 가진 각주구검(刻舟求劍)이다. 우리는 과거의 실패에 집착하는 태도를 버리고, 우연한 성공에 집착하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현실에 맞는 새로운 시스템과 규율이 필요하다. 위의 세 가지 사례를 통해 우리는 정말 바보의 범주 안에 들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우리는 지금 21세기에 맞는 시대정신으로 살고 있는지 되짚어볼 시간이다.

 

인간은 기억으로 이뤄진 존재이다. 우리에게 기억이 없다면 내가 누구인지, 나는 무엇으로 존재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등의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기억’을 잃어버리는 병, 알츠하이머는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피폐하게 만든다. 그러나 반대로 시시각각 변하는 현실 속에서 과거에만 기억이 머무르고 있다면 나의 삶은 어떻게 될 것인가.

춘추시대 초(楚)나라의 어떤 사람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게 됐는데, 지니고 있던 칼을 실수로 물에 빠뜨리고 말았다. 그러자 그는 얼른 칼을 빠뜨린 뱃전에다 표시를 해두고 “여기가 내 칼이 떨어진 곳이다”라고 했다. 배가 강 언덕에 닿아 멈추자 그는 아까 표시해 둔 곳을 따라 물로 뛰어들었고 그곳에서 칼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배는 이미 지나왔으니 강을 지나던 중에 떨어뜨린 칼을 찾을 리 만무하다. 이 글은 󰡔여씨춘추(呂氏春秋)󰡕 「찰금(察今)」편에 나오는데, 결론은 이렇다. “옛 법으로 나라를 다스리고자 하는 것이 이와 같다. 시대는 이미 옮겨갔는데 법은 옮겨가지 않았으니, 이런 식으로 다스린다면 어찌 어렵지 않겠는가?”

여기에서 유래된 말이 ‘각주구검(刻舟求劍)’이다. ‘배에 새기고 칼을 찾는다’는 뜻으로, 판단력이 둔하여 시대나 상황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비유한다. 이와 비슷한 뜻을 가진 성어로는 ‘수주대토(守株待兎)’ ‘탁족(度足)’ 등이 있다. 단순하고 황당해 보이는 이야기지만 시사하는 바가 있다.

‘수주대토’는 󰡔한비자(韓非子)󰡕 「오두(五蠹)」편에 나온다. ‘주(株)’는 나무를 베고 난 밑동 즉 그루터기를 뜻하니, ‘수주대토’는 나무 그루터기를 지키며 토끼를 기다린다는 말이다. 송(宋)나라에 한 농부가 있었다. 하루는 밭을 가는데, 어디선가 토끼가 나타나 정신없이 달려가다가 밭 가운데 있는 그루터기에 머리를 부딪쳤고, 목이 부러져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그래서 농부는 밭을 갈던 쟁기를 버리고 나무 밑동을 지키며 다시 토끼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토끼를 다시는 얻을 수 없었으며 그 자신은 송나라의 웃음거리가 됐다고 한다. 한비자가 ‘수주대토’를 비유로 든 것은, 당시 이상적인 군주로 여겨졌던 요순(堯舜)ㆍ우탕(禹湯)ㆍ문무(文武)의 도(道)에 대한 무조건적 찬미와 모방을 지양하고, 시대 사정에 맞는 새로운 제도와 규율, 법체계가 필요함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탁족’은 어떤가. ‘度’는 대개 정도(程度)나 법도(法度)를 뜻할 때는 ‘도’라고 읽지만, ‘재다’ ‘헤아리다’라는 뜻으로 쓰일 때는 ‘탁’이라고 발음한다. 따라서 ‘탁족’은 ‘발 크기를 재다.’라는 뜻이 된다. 이 이야기는 󰡔한비자󰡕 「외저설 좌상(外儲說左上)」에 실려 있다.

정(鄭)나라 사람 중에 장차 신발을 사려고 하는 자가 있었다. 먼저 자신이 발의 치수를 재고 자리에 그것을 놓아두었는데, 시장 갈 때 깜빡하고 그것을 두고 갔다. 이미 신발을 구했는데 그는 바로 말하기를 “내가 잊어버리고 치수 잰 것을 갖고 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되돌아가서 그것을 가지고 왔으나 시장이 파해서 끝내 신발을 살 수 없었다. 다른 사람이 말하기를 “왜 발로 재보지 않았는가?” 하였더니, 그는 “치수 잰 것은 믿을 수 있어도 내 자신은 믿을 수가 없다”고 했다.

이 세 편의 이야기를 읽고 있자니 마치 ‘바보들의 대행진’을 보는 것 같지 않은가. 세상에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이 어디 있는가. 우리는 이들을 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쉴 지도 모른다. “다행이야. 난 이 정도는 아니니까” 그런데 정말 그럴까.


‘각주구검’과 ‘수주대토’를 비교해 보면 전자는 과거의 실패에 집착하는 태도이고, 후자는 과거의 우연한 성공에 집착하는 태도이다. 배를 타고 오다 칼을 떨어뜨렸다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 방법은 두 가지다. 그 자리에 배를 세우고 그대로 물속으로 들어가서 강바닥을 다 헤매며 칼을 찾는 것이다. 배를 세울 수 없어서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면 칼을 찾을 방법은 없다. 그냥 잊어야 한다. 그리고 장에 가서 새 칼을 사야 한다. 실수를 했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잡았어야 한다. 그런데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났다면 잊어야 한다. 그것이 미래로 나아가는 길이다.

아무것도 애쓴 것이 없는데 토끼가 와서 나무 밑동에 머리를 박고 죽었다면, 그날은 운이 좋았을 뿐이다. 그날 저녁으로 토끼 고기를 맛있게 먹고, 그 다음날에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밭일을 열심히 해야 한다. 그런데 토끼 고기의 그 고소하고 쫄깃한 맛을 잊을 수 없다면 본격적으로 토끼 사냥에 나서야 한다. 단 농사는 포기해야 한다. 자동으로 토끼가 와서 머리를 박는 일은 더 이상 없다. 그것은 상수(常數)가 아닌 우연일 뿐이었다. 어제의 기억에서, 그 황홀한 행운의 기억에서 빨리 벗어나야 현재 나의 본분을, 지금 취할 수 있는 소득을 잃지 않는다.

발을 잰 것을 집에 놓고 왔다면, 지금의 내 발을 믿고서 신발을 신어보면 그만이다. 왜 발 그려놓은 것에 집착했을까. 장이 서는 날이면 수많은 사람으로 장터가 붐빈다. 그 와중에 신발을 이것저것 달라 해서 신어보느니, 발 사이즈 잰 것을 장사치에게 내밀고 그에 맞는 신발을 달라고 하면 얼마나 간편하게 일이 끝날 것인가. 좋은 아이디어였는데 이것을 써먹지 못하는 것이 아깝기도 하고, 지금의 내 발 상태와 현재의 내 판단을 믿을 수 없었기에 정나라 사람은 집에 두고 온 그것을 가지러 다시 돌아갔던 것이다. 이것은 비유이다. 과거에 만들어 놓았던 원칙, 체계, 법문 등에 매달려 계속해서 그것을 고집하고 그것이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태도이다. 주어진 현실에 맞는 새로운 방책을 강구해야 할 때에도 이런 태도를 버리지 않으면 결국 일을 그르치게 될 것이다.

개인적인 차원, 사회적인 차원, 국가적인 차원에서 이 모든 이야기들의 적용이 가능하다. 과거의 성공과 실패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해, “내가 왕년에는 말이야……” “내가 그 나이 때는……” 하면서 부질없는 성공담을 끊임없이 반복하거나, “그땐 내가 왜 그랬을까?” “그때 그렇게 했기 때문에 내가 지금까지 이 모양 이 꼴이야”라고 계속해서 탄식하고 자조하는 것은 지금 나의 처지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기만의 외골수 같은 원칙을 세워놓고 “이것이 아니면 안 돼!”라고 고집을 부리는 것도 지혜롭지 못한 모습이다. 특히 그 원칙이란 것이 본질적인 것도 아니고 비본질적인 차원의 것이라면.

사회적, 국가적 상황에 이 이야기를 적용해 볼까. 한비자는 요순ㆍ우탕ㆍ문무에게도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고, 세월이 많이 흐르고 세상도 급변했으니 거기에 맞는 새로운 시스템과 규율이 필요하다고 강변한다. 태평성대라고 간주됐던 시대까지도 우리가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데, 하물며 공과(功過)의 논란이 있는데다 어느 방면에서는 후퇴했다고까지 판단되는 과거 그 시절을 우리 국민의 일부는 몹시 그리워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 그리움이 선거의 결과로 나타났고, 그 이후의 사태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이다. 1200년 전, 당 현종(玄宗)의 애첩이었던 양귀비(楊貴妃). 그녀의 세 언니와 사촌오빠 양국충(楊國忠)은 양귀비와의 친분을 배경으로 궁궐을 자유롭게 드나들며 사리사욕을 채우기에 바빴다. 이들은 관직을 독점하고 전횡을 일삼았으며, 공공연하게 뇌물을 받고 사적인 친분에 따라 관리를 임명하였다. 왠지 기시감(旣視感, deja vu)이 느껴진다. 우리는 정말 바보의 범주 안에 들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우리는 지금 21세기에 맞는 시대정신으로 살고 있는가?

 

강 지 희
퇴계학연구원 전임연구원
한림대학교 교양기초교육대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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