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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우(杞憂), 쓸데없는 걱정을 가끔은 하는 시대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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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1.19  13: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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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고사성어는 괜한 걱정, 쓸데없는 걱정을 일컫는 ‘기우(杞憂)’다. 우리는 수많은 위험들이 상존하고 있는 사회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이를 피하기 위해 스스로를 유폐시킬 수는 없다. 예측할 수 없는 불상사를 미리 걱정하는 것은 말 그대로 ‘기우’다. 천수(天壽)를 누리기를 하늘에 기도하는 것 외에도, 적어도 인간의 잘못으로 죄 없는 생명들이 사라지는 불상사가 없길 간절히 바라본다.

‘트럼프 군사력 강화, 주한미군 철수는 기우’, ‘인류의 지배자는 알파고? … 아직은 기우’ 이처럼 ‘기우(杞憂)’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는 말로 괜한 걱정, 쓸데없는 걱정을 뜻한다. 본래는 ‘기인지우(杞人之憂)’ 즉, ‘기(杞)나라 사람의 걱정’인데 보통은 두 글자로 줄여서 ‘기우’라고 쓴다. 기나라 사람은 무엇을 걱정했을까? 『열자(列子)』의 「천서(天瑞)」편으로 들어가서 이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읽어보자.
기나라의 어떤 사람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서 몸 둘 곳이 없음을 걱정해 잠도 못 자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또 한 사람은 그가 걱정하는 것을 걱정했다(친구가 과도한 걱정으로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으니, 그러다가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한 것이다). 그래서 그를 찾아가 다음과 같이 깨우쳐 줬다. “하늘은 공기[氣]가 쌓여 있는 것일 뿐이니, 공기가 없는 곳이란 없소. 당신은 몸을 움직이고 호흡을 하면서 하루 종일 하늘 가운데에서 행동하며 그 안에 있는데 어째서 무너져 떨어질 것을 근심하시오?”(여기서 ‘氣’란 공기와 같은 기체, 영어로 하면 ‘air’ 또는 ‘gas’ 정도로 보는 것이 좋겠다)
그 사람이 대답했다. “하늘이 정말 기운이 쌓인 것이라면 해와 달과 별들은 떨어져야 할 것이 아닙니까?” 그를 깨우치려는 사람이 말했다. “해ㆍ달ㆍ별들도 역시 기운이 쌓인 가운데에서 빛을 지니고 있는 것들이오. 그것이 떨어진다 하더라도 또한 맞아서 부상을 당하는 일은 있을 수 없소이다.”

그 사람이 말했다. “땅이 무너지는 것은 어떻게 합니까?” 깨우치려는 사람이 말했다. “땅이란 흙덩이가 쌓인 것일 뿐이오. 사방 빈 곳에 꽉 차 있어서 흙덩이가 없는 곳이란 없소. 당신이 머뭇거리고 걷고 밟고 뛰고 하면서 하루 종일 땅 위에서 가고 멈추며 온갖 일을 하는데, 어째서 그것이 무너질 것을 근심하시오?” 그 사람은 의심이 시원하게 풀린 듯 크게 기뻐했고 그를 깨우치려던 사람도 속이 후련해져서 크게 기뻐했다.

장려자(長廬子)가 그 이야기를 듣고 웃으면서 말했다. “무지개, 구름과 안개, 바람과 비, 사계절 등과 같은 것은 하늘에 기운이 쌓여 이뤄진 것들이다. 높고 험준하게 솟은 산들, 강과 바다, 쇠와 돌, 불과 나무 같은 것은 땅에 형체가 쌓여서 이루어진 것들이다. 기운이 쌓인 것임을 알고 흙덩이가 쌓인 것임을 안다면 어찌 무너지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또 말했다. “대저 하늘과 땅이란 공허한 가운데 있는 한 가지 미세한 물건[物]이요,(여기서 ‘物’이란 개별적인 사물이 아니라 천지 사이에 존재하는 ‘만물’의 개념으로 보아야 한다) 존재하는 물건 가운데에서 가장 큰 것이어서 끝장이 나기도 어렵고 다하기도 어려우니 본시부터 그러한 것이요, 헤아리기도 어렵고 알기도 어려우니 본시부터 그러한 것이다. 그것이 무너질까 걱정하는 사람은 진실로 너무나 멀리까지 생각하기 때문이요, 그것이 무너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역시 옳지 않은 것이다. 하늘과 땅은 무너지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니 곧 언젠가는 무너지게 될 것이다. 그것이 무너질 때가 된다면 어찌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열자(列子)가 그 말을 듣고 웃으면서 말했다. “하늘과 땅이 무너질 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잘못이지만 하늘과 땅이 무너지지 않을 거라고 말하는 사람도 역시 잘못이다. 무너질지 무너지지 않을지는 우리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저렇게 되어도 한 가지요, 이렇게 되어도 한 가지인 것이다(무너지면 모두가 죽게 되는 것은 마찬가지이고, 무너지지 않으면 모두가 사는 것도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적에는 죽음을 알지 못하고 죽을 때에는 태어나는 것을 알지 못하며, 올 때에는 가는 것을 알지 못하고 갈 때에는 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무너지고 안 무너지는 일에 대해 내 어찌 마음을 담아 두겠는가?”

이로써 이야기는 끝난다. 약간 형이상학적인 담론의 느낌이 있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해하기에 그리 어렵지 않다. 기나라 사람은 하늘이 무너질까 땅이 꺼질까 걱정했고, 그 걱정 때문에 침식을 전폐한 모습을 본 그의 벗은 나름대로 논리적인 근거를 들어가며 그의 걱정을 일소시켜 줬다. 이 이야기를 들은 장려자는 거기에 부연설명을 덧붙이며 천지가 무너지지 않을 것을 장담할 수는 없다. 다만, 그런 종말이 그리 쉽게 오지는 않을 테니 그것을 걱정하는 건 생각을 너무 깊이 한 탓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무너질 테니까 그때 걱정하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하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논란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열자의 말이다. 천지가 무너질지 무너지지 않을지 인간이 그것을 어떻게 알겠는가. 그것은 인간의 인지 영역 너머에 있는 것이다. 그런 논란 자체가 큰 의미가 없다. 어차피 무너지면 그 아래 있는 인간은 다 죽게 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여전히 살아 있을 테니까. 천지의 존재 여부와 인간의 삶과 죽음은 우리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또 미리 예측하거나 헤아릴 수도 없는 것이니까 그 문제를 마음에 담아두고 고민하는 것은 쓸데없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지당하신 말씀이다.
그런데 현대를 사는 우리는 ‘하늘이 무너질까, 땅이 꺼질까?’에 대한 걱정은 아니더라도, 길을 가거나 차를 타거나, 배를 타거나 비행기를 타면서, 오늘 혹시 무슨 사고가 나지는 않을까 하는 근심을 가끔씩은 하게 됐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2014년 세월호 참사, 그리고 2014년 이후로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지반붕괴 사고(싱크홀), 2015년 루프트한자 비행기 알프스 산 추락사고 등등 일일이 열거하기가 힘들 정도로 이제는 예측할 수 없는 사고들이 곳곳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그때마다 적게는 수십 명, 많게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다치거나 세상을 떠났다. 늘 그랬듯이 사고가 났던 그 날도 모두가 평소처럼 하루를 시작했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엄마, 나 지금 나가.”, “여보, 나 갔다 올게.”, “할머니, 다녀오겠습니다.” 인사를 하고 바쁘게 집을 나섰던 그 날이 이 생의 마지막 날이 될 줄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알았다면 절대 집을 나서지 않았을 것이고, 그 지하철에, 그 비행기에, 그 배에 절대 타지 않았을 것이며, 그 장소에 절대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가족은 그들의 외출을 어떻게든 막았을 것이다. 그 건물이 부실공사로 지어졌는지, 내가 탄 지하철에 방화를 작정한 어떤 사람이 탔는지, 내가 탄 비행기의 기장이 우울증을 앓고 있는지, 내가 건너고 있는 다리의 교각이 낡았는지…그걸 어떻게 다 알 수 있겠는가. 방법이 없다.

그러나 이런 위험들이 상존하고 있다고 해도 이를 피하기 위해 스스로를 유폐시킬 수는 없다. 우리는 매일 출근해야 하고, 학교에 가야하고, 출장도 가야하고, 여행도 가야 한다. 사고가 두려워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수는 없다. 그러니 이런 사고, 예측할 수 없는 불상사를 미리 걱정하는 것은 그야말로 ‘기우’이다. 우리가 대처할 수 있는 일이 과연 있을까. 비명횡사하지 않고 천수(天壽)를 누리기를 하늘에 대고 기도하는 것 외에.

자연재해야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에 나오는 사건 사고들을 보면서, 적어도 인간의 잘못으로 죄 없는 생명들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불상사는 없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강 지 희 (교양기초교육대학 ·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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