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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그 위의 박힌 사색의 은하수 ‘존 프란시스’의 『플래닛 워커』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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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1.19  13: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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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서북부의 캐스케이드 산맥을 넘을 때의 일이다. 유명 트레일과 코스가 겹치는 날이 아니면 사람 한 명 보기도 힘든 여정이었다. 오히려 다양한 동물과 마주치는 일이 더 잦을 정도였다. 7일째 되던 날, 멀리 옹송그리며 걸어오는 여행자를 발견했다. 반가웠다. 가지고 있던 초콜릿바라도 건넬 요량으로 주머니를 뒤졌다. 어… 순간 나는 걸음을 멈췄다. 조금은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상대방은 키가 큰 흑인 남자였기 때문이다. 미국 대도시에서 흑인을 보는 건 특별할 것이 없다. 하지만 미국을 여행하면서 자연경관 위주의 관광지나 트레일 코스에서 흑인을 만나는 건 드문 일이다. 흑인 인구의 절반 이상이 미국 동남부에 사는 탓도 있지만 그들의 경제 수준이 여가를 즐기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어쨌건, 낯선 장소에서의 낯선 인종과의 만남은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상대가 먼저 턱짓을 하며 인사를 건넸고, 나는 겨우 그의 웃음에 반사적 미소를 지었다. 50대로 보이는 그는 내게 어디까지 가냐고 물었고 난 “시스터스”라고 답했다. 자신은 며칠 전에 그곳을 지나쳤다며 예쁜 도시라며 몇몇 이야기를 해줬다.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그 잠깐 사이에 참 부드러운 사람이란 걸 느낄 수 있었다. 결국 난 한국산 초코바 하나를 건넸고 그가 전하는 신의 가호를 답례로 받았다. 도보여행 중 겪는 흔한 만남이었지만 그가 흑인이라는 이유로 꽤나 오래 그의 손 흔듦이 잊혀지지 않았다.

2008년, 한 블로그에서 흥미로운 글을 발견했다. 22년간 미국 전역을 걸어 다녔다는, 심지어 17년간은 말조차 하지 않았다는 한 미국인이 쓴 책에 관한 이야기였다. ‘존 프란시스(John Francis)’는 1971년 금문교 근처에서 일어난 기름유출 사고를 통해 지구를 병들게 하는 인간들의 모습에 회의를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더 이상 차를 타지 않겠다고 결심했고 침묵을 맹세하기까지 이른다. 그 세월이 수십 년이었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하지만 스멀스멀 거부감이 일었다. 꽤 오랫동안 걸었지만 그 행위에 의미를 둔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삶에 유의미한 무언가를 줄 거란 기대조차 한 적 없었다. 왜 걷느냐고 누군가가 물으면 딱히 답을 한 적이 없었다. 정말 답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럴듯한 대답이 아닌 진실 어린 답을 찾고 싶었다. 그런데, 이 남자는 걷기의 이유를 거창하게 정하고 걸었다니 의심스러웠고 질투가 났다. 그러나 22년이라니, 거기엔 인정할 수밖에 없는 위대함이 느껴졌다.

이틀 후 주문했던 책을 받았다. 그리고 난 잠시 멍해졌다. 표지에 배낭을 메고 밴조를 연주하는 저자의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그는 백인이 아니라 흑인이었다. 즉시 나는 내 편협함을 돌탄했다. 당연한 듯 저자가 백인이라고 생각했던 꼴이라니, 오래전 미국 여행 때의 흑인 남자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닮은 것 같기도 했다는 생각에 바투 들여다보았다. 설마가 혹시가 될까 했지만 그럴 리 없었다. 남자가 걸었던 22년간의 기간은 내가 미국을 여행하던 시기들보다 훨씬 이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 나는 단숨에 그의 책 『플래닛 워커』를 읽기 시작했다.

총총히 책 여기저기에 여행 중 내가 사유했던 별들이 박혀 있었다. 언젠가 읽었던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의 구절들도 어김없이 자리하고 있었다. 62세의 나이로 12,000킬로의 실크로드를 걸었던 그가 겪었던 경험을 걷어내면 『플래닛 워커』에 나오는 프란시스의 사색과 면이 닿아있었다. 결국, 의도는 달라도 인생에 흔적을 남길 정도의 걷기를 해본 사람이라면 느낄 수 있는 그런 것들이다. 그중에 몇 가지의 별빛은 ‘존’과 ‘베르나르’, 그리고 나의 사색을 대변하고 있었다. 걷기는 침묵을 동반한다. 이는 모든 것의 속도를 늦추며 나와 타자에게 귀를 기울이게 만들고는 한다. 그건 단순히 물리적인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귀 기울인다는 것은 모든 것에 대한 이해의 깊이를 뜻한다. 인내가 짙어지고 여행 후 삶은 분명 인지하든 못하든 변화했고 했었을 것이다. 『플래닛 워커』에 나오는 많은 주옥같은 사색의 흔적은 이 변화 과정에서 나온 것들이며, 읽는 이의 감정을 흔드는 솔솔바람은 진솔함에서 나오는 것이다. 물론 도보여행은 육체적인 고통을 수반한다. 처음이거나 여러 의미의 강제에 의한 것이라면 걷기 후 남은 것이라곤 뒤틀린 근육과 속 물집까지 터져 흘러내린 핏물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더 걷는다면…, 이제야 나는 나보다 훨씬 걷기에 달인이 된 선배들에게 답을 얻고 있다.

맡고 있는 ‘고급작문’ 수업에서 학생들을 여행길로 내몰았다. 그 여행 속에서 학생들은 한두 시간의 걷기조차 주저하거나 대단한 것으로 치부한다. 마음의 문이 열리기에는 야속한 걷기가 아니던가. 내 걷기의 시작이 젊음을 담보한 것이었던 것처럼, 그 담보물이 사라지기 전에 제발 걸어보길 초초하게 바라는 것이 후배들에 대한 내 지나친 욕심일까. 혹 이 비루한 글을 읽고 『플래닛 워커』를 접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독서의 끝은 직접 걷는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 길고도 짧은 젊음이 신기루처럼 사라지기 전에……


지난여름, 캐스케이드 산맥의 여러 트레일들을 오랜만에 다시 걸었다. 나는 이제 길 위에서 마주치는 사람의 인종을 백인 혹은 남자라고 한정하지 않는다. 모든 편견을 내려놓았다. 가진 거라곤 귀 기울일 줄 아는 이해와 깊은 인내였고, 그것으로도 여행은 꽤나 충만했다. 여행에서 돌아온 지 몇 개월이 지났다. 일상에서 평범한 중년으로 돌아온 나는 문득 환영을 보고는 한다. 내 시선 속에 점점 가까워지는 한 여행자가 보인다. 물론 그가 정말 ‘존 프란시스’였는지, 혹은 ‘베르나르 올리비에’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가 오롯이 나였다는 것이 확실해졌으니 말이다.  

/이현준 (교양기초교육대학ㆍ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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