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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초가(四面楚歌), 영혼을 울리는 절대 예술 ‘음악’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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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4.08  10: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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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고사성어는 ‘사방이 적으로 완전히 포위된 상태’라는 의미의 ‘사면초가(四面楚歌)’이다. 초나라 항우(項羽)와 한 고조(高祖) 유방(劉邦)이 마지막으로 전투를 벌였던 해하(垓下)에서의 일화가 실려 있다. 음악이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보자.

장기를 둘 줄은 몰라도 장기 알에 새겨진 ‘초(楚)’, ‘한(漢)’이 초나라 항우(項羽)와 한 고조(高祖) 유방(劉邦)을 뜻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리고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고 ‘초한지(楚漢志)’를 읽어봤다면, ‘사면초가(四面楚歌)’가 항우와 유방이 마지막으로 전투를 벌였던 해하(垓下)에서 있었던 일이라는 것도 알 것이다. 사방이 적으로 완전히 포위된 상태를 ‘사면초가’라고 한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초나라 노래’를 듣고 전의(戰意)를 상실한 채 도망간 이들은 항우가 이끌던 초나라 군사들이었다. 이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유방의 참모였던 장량(張良)의 천재성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살벌한 전쟁터 한복판에서 어떻게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 부를 생각을 했을까?

항우와 유방의 싸움이 시작된 시대적 배경을 잠깐 살펴보고 가자. 중국 최초의 통일제국이었던 진(秦)나라, 그리고 첫 번째 황제였던 시황제(始皇帝)의 이야기는 따로 다룰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 뒤를 이어 2세 황제가 된 호해(胡亥)는 나라를 다스릴 능력도 없을뿐더러 잔인무도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었다. 그는 즉위한 직후 선제(先帝)를 모시던 여자들을 비롯해, 진시황의 능묘 공사에 동원돼 그 비밀을 아는 인부들, 늙은 신하들, 자신의 이복형제인 공자와 공주 등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 그는 또 진시황이 시작한 아방궁 공사를 완수하기 위해 300만에 가까운 백성을 동원해 강제 노역을 시켰다. 당시 중국 인구가 기껏해야 2000만 정도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숫자의 장정들이 아방궁 공사에 동원된 셈이다. 전형적인 간신이었던 환관 조고(趙高)는 호해를 등에 업고 숱한 인명을 해쳤으며, 그 중에는 진시황을 도와 중국을 통일하고 진 제국을 세우는 데 일조했던 승상 이사(李斯)도 포함됐다. 이사가 그 아들과 반란을 꾀하고 있다고 모함하는 데 성공한 조고는 혹독한 고문 끝에 이사에게서 거짓 자백을 받아냈고, 이사는 처형됐다. 뒤를 이어 승상이 된 조고는 막강한 힘을 휘둘렀고, 그 힘은 황제의 권력을 위협하는 데까지 이르렀으니 그 유명한 ‘지록위마(指鹿爲馬)’의 고사가 이때 나온 것이다.

조고는 황제를 조종하며 끝없는 사치와 향락을 부추겼는데, 그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온 백성을 핍박하며 고혈을 짜냈다. 추상같은 악법을 내세워 세금을 혹독하게 거뒀고, 가난과 기아에 시달리던 백성들은 징집이 있을 때마다 가차 없이 끌려가 강제 노역을 당했다. 마침내 폭정에 시름하던 진나라 백성들의 원한과 분노는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이 이끄는 농민 봉기를 도화선으로 분출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봉기는 실패로 끝났지만, 그 뒤를 이어 전국에서 수많은 반란 세력이 일어났고 그 가운데 항우와 유방이 있었던 것이다.

항우의 집안은 대대로 초나라의 무장을 지낸 귀족가문이었다. 그의 조상 중에는 전국시대 말기 진나라에 끝까지 맞서 싸웠던 명장 항연(項燕)이 있었고, 그의 삼촌은 진나라 말기 반란군을 이끌었던 항량(項梁)이다. 유방은 항우와 달리 명가의 자손도 아니며 지위도 높지 않았다. 신분도 보잘것없는 서민으로 사수(泗水)의 정장(亭長)이라는 말단 벼슬아치에 불과했지만 신기하게도 소하(蕭何), 한신(韓信), 장량, 조참(曹參), 번쾌(樊噲) 같은 인재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항우는 처음 강동의 정병(精兵) 8천을 이끌고 전쟁을 시작했는데, 가는 곳마다 연전연승을 거두며 그 군사가 40만으로 불어났다. 진의 항복을 받아낸 항우는 초(楚) 회왕(懷王)을 의제(義帝)로 받들고 자신은 '서초패왕(西楚覇王)'이라고 해 천하를 장악할 기세였다. 항우는 곧 의제를 살해하고 18명을 왕으로 봉했는데, 유방을 한왕(漢王)에 봉해 외진 한중(漢中), 즉 파촉(巴蜀)으로 보냈다. 그 밖의 왕들도 대부분 이전에 가지고 있었던 땅보다 작은 땅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논공행상(論功行賞)이 공평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항우에 대한 불만이 컸다. 유방은 의제를 시해한 항우를 벌준다는 대의명분을 내세워 불만이 있었던 제후들의 호응을 얻었다. 애초에 그는 패현(沛縣)에서 3천의 병력을 이끌고 전쟁을 시작했지만 마침내 그의 군사는 56만으로 불어났다. 지존의 자리를 놓고 양보할 수 없는 싸움을 시작한 항우와 유방. 전쟁은 4년 동안 계속됐다.

초한전의 마지막 전투가 벌어진 곳은 안휘성 영벽현의 ‘해하’이다. 항우의 군대는 10만으로 줄어 있었으나 모두가 정예군이라 할 만큼 전투실력이 뛰어났다. 유방군의 통수권을 받은 한신은 30만 대군을 이끌고 왔지만, 항우의 군대가 워낙 막강한 터라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한신은 치밀하게 전략을 세웠다. 산으로 둘러싸인 해하 주변 곳곳에 군사들을 매복시키고 항우의 군대를 그 한가운데로 유인하고자 했던 것이다. 항우는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한나라 군대를 맞아 용감히 싸웠지만, 그러는 사이 초나라 병사들도 무수히 죽어갔고 끝내는 한신의 계획대로 한군(漢軍)에게 완전히 둘러싸인 형국이 됐다.

해가 지고 밤이 되자 항우의 군대는 공격을 중지하고 휴식을 취했다. 그에게 남은 군사는 5만이었지만, 그 중에는 8천명의 강동 정예 결사대가 포함돼 있었다. 그들이 항우를 지키고 있는 한 초군(楚軍)을 무너뜨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고, 전투를 계속 하게 되면 한나라의 손실도 만만치 않을 터였다. 유방과 한신이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장량이 어디선가 피리를 가져왔다. 한나라 진영에는 포로로 잡힌 초군이 3만 명 정도 있었다. 장량은 그들에게 노래를 부르게 했다. 고향인 초 땅에서 어린 시절 불렀던 노래, 부모님과 사랑하는 이들을 생각나게 하는 슬픈 가락의 노래들을 부르게 하고 그것을 한나라 군사들에게도 가르쳤다. 한나라 군사들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낯선 노래였지만, 장량은 그들에게 일부러 그 노래를 가르쳤다. 그리고 항우의 군대를 둘러싼 포위망을 점점 좁혀갔다.

항우는 성녀산 언덕을 중심으로 진을 치고 있었다. 사위가 고요한 캄캄한 밤, 이지러진 달만이 희미하게 떠 있는데, 어디선가 피리소리가 들려온다. 아, 너무나 익숙한 이 가락. 어릴 적부터 불렀던 그 노래, 고향 땅 초나라의 노래가 아닌가. 피리소리에 맞춰 들릴 듯 말 듯 가냘프게 사람들의 노래 소리가 들려오더니, 삽시간에 사방으로 퍼져 나가 대합창이 돼 온 천지를 울리고 있었다. 초나라 군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주르륵 눈물을 흘렸다. 이곳은 낯선 전쟁터,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극한의 상황. 고향 노래를 듣고 문득 떠오르는 얼굴들. 늙으신 어머니의 모습, 환하게 웃는 아이들의 미소, 사랑스러운 아내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리며, 초나라 군사들은 오랫동안 떠나 있던 집을 하염없이 그리워했다. 내가 지금 여기에서 무얼 하고 있는 거지? 근심 걱정이 없던 고향, 단란하고 화목했던 가족들을 두고 나는 왜 여기까지 와서 이 차가운 땅바닥에 누워 있는가. 가야겠다! 나는 고향으로 가야겠다! 초군의 집단 이탈이 시작됐고 그 흐름은 걷잡을 수 없었다. 강동의 정예부대 8천명도 다 흩어지고, 항우 곁에는 8백 명만이 남았다. 이로써 항우의 군대는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한순간에 무너져버렸다. 장량의 피리에서 시작된, 심리전의 완벽한 승리였다.

음악은 육감적이고 직접적이며 절대의 힘을 가진 예술이다. 우리 각자에게도 마음속의 거문고, 심금(心琴)을 울리는 익숙한 노래나 음악이 하나쯤 있지 않은가. 음악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 만일 천국이 있다면, 다른 건 몰라도, 그곳에선 반드시 영혼을 소생시키는 아름다운 음악이 끊임없이 흐르고 있을 것이다.

/강지희(교양기초교육대 ·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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