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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돼지’는 전투 코끼리에 대항했던 비밀 병기‘세포이’ 반란과 영·미 돼지 전쟁에도 돼지가 개입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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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2.09  13:3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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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는 알고 있을까? 자신 때문에 인류가 수도 없이 희생을 치른 가운데 때로는 전쟁의 비밀 병기로 활용됐다는 사실을?

인류사를 살펴보면, 돼지가 전쟁에 동원된 기록은 이미 기원전 275년의 로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로마인들은 에페이로스의 왕 피로스의 전투 코끼리들을 격퇴하기 위한 비밀 병기로 돼지를 동원했다.

전투 코끼리에 대한 비밀 병기가 돼지였다고? 믿어지지 않겠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돼지의 비명 소리를 코끼리가 대단히 무서워했기 때문이다. 비단, 코끼리만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가 ‘돼지 멱따는 소리’라고 부를 정도로 소름끼치게 듣기 싫은 것이 돼지의 비명 소리다. 신체조건상 성대가 굵고 짧을 수밖에 없는 돼지는 자기 성대에 걸맞게 엄청난 기운으로 파열적인 고음을 내지를 수 있다. 파이프가 짧을수록 소리가 날카로우며 파이프가 길어질수록 소리가 부드러워지는 이치를 생각하면 된다. 악기로 비유하자면 피콜로와 튜바의 차이라고나 할까?

그럼, 어떻게 해서 전투 코끼리를 돼지가 이겼을까? 피로스 왕의 적군을 맞이한 로마인들은 전투 코끼리가 대오를 정비한 대치 전선에서 기름을 돼지 몸에 바른 후, 불을 붙여 돼지를 적진으로 몰아넣었다. 그러자 등에 불이 붙은 돼지는 상상 초월의 비명 소리를 질러대며 전투 코끼리들 앞으로 달려갔고, 전투 코끼리들은 겁에 질려 돼지를 피하려다 오히려 아군을 짓밟으며 난동을 피웠다. 그런 와중에 적군의 대오는 순식간에 무너지며 아비규환에 빠진 피로스 왕의 군대는 대패하고 만다.

그러고 보면 세계적으로 몸짱 열풍을 불러 일으켰던 헐리우드 영화 ‘300’에서도 철갑으로 무장한 무시무시한 모습의 페르시아 전투 코끼리들이 주인공인 스파르타 왕 앞에서 등장하고 있다. 더불어, 영화 ‘반지의 제왕: 두 개의 탑’ 편에서도 거대한 전투 코끼리들이 주인공과 그의 군대를 커다란 곤경에 빠뜨리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 까닭에 만일, 두 영화의 주인공들이 불타는 돼지로 전투 코끼리들을 간단히 제압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안다면 얼마나 허탈해 할까?

로마의 전쟁사 이후에도 ‘불타는 돼지는 꾸준히 그 존재감을 과시했다. 돼지에겐 잔인한 형벌이지만 무적에 가까운 전투 코끼리를 상대로 발군의 효과를 보인 까닭에서다. 그런 역사를 아는 게임 개발자들은 고대 로마와 그리스를 비롯한 여러 문명들의 전쟁을 배경으로 한 전략 게임에서 ‘불타는 돼지’를 집어넣기도 한다.

하지만 역사상 피를 가장 많이 흘린 돼지 관련 전쟁은 인도에서 일어난 ‘세포이의 반란’이다. ‘세포이’란 영국의 동인도 회사가 인도 정복을 위해 고용한 인도인 용병을 가리키던 말. 19세기 중엽, 영국은 다민족, 다종교 사회인 인도를 통치하기 위해 부족 간, 종교인 간의 내분을 조장하며 인도 전역으로 지배력을 넓혀 나가고 있었다. 동시에 통치권을 획득한 지역에서 영국은 커피, 차, 면화 등을 닥치는 대로 수탈했으며 지역의 반발과 저항을 억누르고자 용병을 고용했다. 물론, 수탈의 중심에는 영국 정부가 아니라 주식회사인 영국 동인도 회사가 있었다. 이러한 주식회사 건립은 이미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에서 식민 통치를 할 때 개발한 것이며, 인도를 지배한 영국은 선진국 네덜란드의 효율적(?)인 방식을 똑같이 모방했다. 물론, 그런 영국으로부터 식민지 기술을 전수받은 일본 역시, 이들 국가와 동일한 방식으로 한반도에 동양척식주식회사를 세우고 쌀과 광물 등을 빼앗아 갔다.

어쨌거나 영국 동인도 회사는 수탈에 따른 지역민들의 반발을 진압하고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용병들을 고용했는데 이들이 소위 ‘세포이’라 불린 인도인들이었다. 세포이 용병들은 영국 장교들의 오만불손한 태도와 형편없는 급여에 자존심을 상해가며 영국에 대한 적개심을 고조시키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영국 동인도 회사가 자신들에게 지급한 탄약통에 소와 돼지기름을 사용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급기야는 불만이 폭발하기에 이른다. 당시, 세포이 용병들은 힌두 교도들과 이슬람 교도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바, 힌두교도들에게는 신성한 소의 기름이, 이슬람교도들에게는 금기시되고 있는 돼지의 기름이 분노 폭발의 기폭제로 작용한 것이다. 이후, 세포이들의 폭동은 인도 전역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며 전국적인 반란으로 확대되었다. 당시, 반란의 규모가 얼마나 크고 광범위했던지 영국 정부가 네팔 용병 및 시크 교도들을 동원해 세포이의 반란을 진압하는데는 꼬박 2년이 소요되었다.

한편, ‘돼지 전쟁’으로 명명된 전쟁도 실제로 존재한다. 1859년 미국과 캐나다 사이에서 벌어진 충돌로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반면, 캐나다는 여전히 영국의 식민지였다. 그런 가운데 미국과 영국의 영유권 분쟁이 지속되고 있던 뱅쿠버 인근의 산후안 제도에서 돼지 전쟁의 발단이 시작됐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산후안 제도의 한 섬에 거주하던 라이먼 커틀러라는 미국 농민은 어느 날, 자기 밭에서 돼지가 작물을 파먹는 것을 보고 돼지를 총으로 쏘아 죽인다. 하지만 커틀러가 쏴 죽인 돼지는 영국 회사의 소유로 인근 농장에서 탈출한 놈이었다. 이에 10달러의 보상금을 제시한 커틀러에게 영국 측에서 100달러를 요구하였고 커틀러가 이에 대한 지불을 거절하자 위협을 가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커틀러를 비롯해 이전부터 영국군의 고압적인 태도에 불만을 품고 있던 미국인 섬 주민들이 인근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에게 몰려가 자신들을 보호해달라고 호소허기에 이르고 미군은 자국민의 보호를 위해 461명의 군인들을 파견하게 된다. 영국 역시, 5척의 전함에 2천여명의 해병과 공병대를 태워 샌 후안섬에 파견하면서 양측은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전쟁 직전에 이르게 된다.

당시, 워싱턴에서는 뱅쿠버 인근에서 벌여지고 있는 이 같은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리하여 얼마 후, 이 소식을 전해들은 미 정부는 화들짝 놀라며 영국 정부에 협상을 제의하게 된다. 당시, 미국 정부는 남북 전쟁을 앞둔 상황으로 국내 정세가 매우 흉흉해지고 있었다. 다행히 영국이 미국의 협상 제의를 극적으로 받아들이며 양측은 군사적 충돌을 피해갈 수 있었다.

결국, 미·영 간의 돼지 전쟁은 미국의 남북 전쟁이 끝난 후에도 타결되지 못하다가 첫 분쟁이 발발한지 14년이 지나서야 독일 황제 빌헬름 1세의 중재를 거쳐 타결되기에 이른다. 물론, 그동안 총성이 오가는 전쟁은 벌어지지 않았기에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 그러고 보니 분쟁의 불씨를 제공한 돼지 한 마리가 희생물이라면 희생물이랄까? 그래도 전쟁의 이름에 자신의 종족명을 아로새겼으니 이 정도면 돼지로선 남는 장사가 아니었을까? 그리하여 14년 만에 타결된 국경 분쟁은 영국이 미국의 분쟁 지역 소유권을 전부 인정하면서 종지부를 찍었다. 글자 그대로 돼지 한 마리만 죽어버린 돼지 전쟁이었던 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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