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테러로 한 동안 방송과 신문들에는 미국과 테러집단, 그리고 배후인물로 지목된 오사마 빈 라덴의 이야기들로 가득 찼었다. 세계를 충격으로 몰고 갔던 이번 사건을 알려내는 데에는 테러가 일어난 후 4분만에 보도했던 CNN과 같은 거대한 방송사들의 힘이 컸다. 이러한 충격적인 사건은 세계적인 연결망을 갖춘 거대 메이저 방송사들에 의해 전세계에 생생하게 전해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필연적인 이유가 있기는 하지만 CNN의 방송을 여과 없이 그대로 생중계 함에 따라 우리의 시각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미국의, 미국중심의 시각만이 난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에 사회부는 우리나라의 언론사들 그 중에서도 한겨레신문, 경향신문, 중앙일보, 조선일보를 중심으로 보도기사와 사설을 비교하면서 그들의 시각을 읽어봤다.

  지난 11일 뉴욕과 워싱턴은 아수라장이 됐다. 사상 최대 규모의 테러로 전 세계인들의 이목은 미국을 주목했다. 일제히 모든 방송사에서는 모든 정규 방송을 포기하고 테러에 관한 많은 보도를 해왔다. 정말 이것이 실제로 일어난 일일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영화 같은’ 장면이 반복해서 방송됐다. 하지만 이러한 ‘영화 같은’ 장면들이 계속해서 방송 될 때 우리의 시각은 서서히 고정되고 있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많은 언론들은 논점의 가닥도 잡지 못한 채 무차별적으로 CNN, BBC 등의 해외방송을 그대로 생중계 했으며 신문들도 AP 등의 보도를 인용해 기사를 써내려 갔다. 비디오의 ‘리플레이’ 버튼을 계속해서 누르고 있다는 착각을 느낄 정도로 폭파음까지 효과음으로 첨가된 화면이 온 프로그램을 덮쳤고, 우리의 뇌리에 오랫동안 각인 될 충격적인 장면의 사진들이 시종일관 신문의 반 이상을 차지했다.

  생각해보자 우리는 신문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뉴스속보에서는 무엇을 보았는가? 11일 테러 후 12일자 각종 일간지에는 테러에 관한 일들로 가득 찼다. 이번 사태에 관해 한겨레신문은 12일자 사설에서 “…이유가 어디에 있던 상상을 초월하는 극단의 테러행위를 저지르는 바닥에는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절망과 좌절, 극도의 증오가 자리잡고 있을 터이다. 그런 절망과 좌절, 극도의 증오는 종교와 인종문제로 인한 뿌리깊은 갈등, 냉혹한 세계화 과정에서 나타난 소외감 등 여러 갈래에서 빚어질 수 있다. … 힘을 앞세운 물리적인 방어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유일 초강대국 미국의 심장부에 가해진 동시다발 테러는 이런 한계를 너무나 분명하게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극단적인 행동을 미리 막을 수 있는 적극적이고 광범위한 외교, 정보의 수집,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해결의 노력이다. 진정한 평화가 무엇이며, 그것을 얻고 유지하게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미국을 비롯한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이 처참한 테러 앞에서 다시 한번 새겨봐야 한다. ”라며 미국의 신중한 태도를 당부했다.

  또한 경향신문의 12일자 사설에서는 “… 미국이 이번 만행을 자행한 테러분자를 추적, 응징하는 것은 당연하다. 조지 부시 대통령이 강조한 대로 미국은 강철같은 의지로 주모자와 배후세력을 철저히 색출해 처벌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미국에는 그보다 한 차원 높은 의무가 있다. 바로 정돈된 국제질서를 이끌어 내고 인권, 자유, 평화 등 인류의 공동선을 지키는 일이다. 분노에 겨운 나머지 색출된 태러분자, 혹은 추정되는 테러세력에 대해 과도한 응징을 가하는데는 신중해야 한다. 과도한 응징은 또다시 보복적 테러를 불러 피의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다. 강력하되, 차분하고 냉정한 미국의 대책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대부분의 언론들은 이렇듯 충격적인 테러에 관한 비판과 이에 따른 신중한 미국의 대응을 촉구했다.

  그렇다면 왜 그러한 테러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를 그 배경을 다루는 신문들은 없었을까? 이전에 테러를 한 테러리스트들은 사건이 터짐과 동시에 성명서를 내고 그들의 행동에 관해 자랑스럽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번 테러는 다르다. 누가 범인인지도 모르고 확실한 증거조차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또 아랍권, 그리고 또 빈 라덴 일 것이라는 무성한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이에 관해 조선일보에서는 12일자 ‘이규태 코너’라는 칼럼 란에서 아랍인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아랍사람들이 사는 고원지방은 맹하 후에 엄동이 끝바꿈하고 또 같은 계절에도 타는 듯한 낮과 얼음 속 같은 밤이 끝바꿈한다. 이 혹서와 혹한을 완충하는 봄이 없고 가을이 없다. 이와 같은 극단을 오가는 기후 틀에 마음도 틀이 박혀 아랍사람들은 매사에 극단적이다. 사람을 극진히 환대하다가도 적대를 하고 관대하다가도 호전적이며 포옹하다가도 칼을 뽑는다. … 그리고 그들은 말끝마다 ‘인샬라’, 곧 알라신이 원하신다면 알라신이 정해주신 숙명이라면 쌍둥이 빌딩이 폭파되건 펜타곤이 폭삭하건 국제경제가 뒤죽박죽이 되건 미사일이 날아오건 아랑곳없다. 색출되고 있는 암살 테러범들이 예외 없이 아랍인들이며 이들에게 공통점을 찾는다면 자살 충돌 직전에 예외 없이 ‘인살라!’라고 외쳤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 읽는 이로 하여금 어떠한 느낌을 갖게될까? 그들의 실제적인 역사적 진실과 배경을 외면하고 근거없는 편견으로 함부로 ‘이슬람의 공격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고 무고한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이르게 한 이번 테러에 손을 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무고하게 희생당한 그리고 미래에 희생당할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입장도 밝혀줘야 하지 않을까?

  미국 테러사건 이후 하버드대학의 교수 헌팅턴의 저서 ‘문명의 충돌’이라는 책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책에서는 과거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인해 성립되었었던 냉전시대가 끝나고 이제 세계는 서방, 이슬람, 힌두, 불교 등의 여러 문명이 각자의 이익과 패권을 위해 충돌한다는 대략의 내용을 가지고 있다. 언론들은 이 책의 내용을 언급하며 이번 사태를 문명의 충돌이라 결론짓고 있다. 하지만 정말 문명의 충돌이라는 단어 하나로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 헌팅턴은 서방문명의 지속적인 우위를 위해서는 다음을 강조했다.

▲정치, 경제, 군사적 결속을 한층 강화하고 정책공조를 도모해 다른 문명의 국가들이 유럽과 미국의 반목을 이용하지 못하게 막는다 ▲유럽연합과 나토 안으로 중부유럽 국가들을 끌어들인다 ▲중남미의 서방화를 후원하고 이들과 서방과의 긴밀한 결속을 최대한 도모한다 ▲이슬람 국가들과 중화국가들이 재래식, 비재래식 전력의 강화에 나서는 것을 견제한다 ▲일본이 서방으로부터 거리를 두면서 중국에 접근하는 속도를 늦추게 한다 ▲다른 문명에 대한 서방의 기술적, 군사적 유지를 유지한다

  한겨레신문에서는 22일자 신문에서 “이미 베트남 전쟁 때 ‘정략촌 정책’을 기한 바 있는 ‘실천적 지식인’헌팅턴의 시각은 문명의 충돌을 기정 사실로 돌려놓고 세계를 공작과 전략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위험스런 패권적 발상이다. 어떠한 문명이든 공격적 근본주의를 지니고 있지만 한편으론 조화와 공존의 논리 또한 포함하고 있다. 각 문명의 공존 논리를 애써 외면하는 서방 중심의 전략 구상을 위한 허구다”라고 말하고 있다.

  미국의 테러사태 이후 우리나라는 안보, 경제 등 많은 부분이 술렁이고 있다.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미국에 집중되어 있을 때 즈음에 정부는 각종 대책안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한겨레에서는 이에 대해 “정부의 각종 대책 속에는 금융안정이나 증시부양과는 별 관계없는 내용들이 대거 숨어 있기 때문이다. 미국 테러사태라는 절체 절명의 호기를 맞아 개혁포기, 아니 반개혁적 조처가 일거에 분출하고 있는 듯 하다. … 건전한 기관투자가를 육성함으로써 증권시장의 효율성과 안정성을 제고하는 것은 한국경제와 투신사가 재벌의 계열금융기관이라는 한국적 현실을 망각한 조처는 기관투자가의 건전한 육성을 저해할 뿐이다. … 산업자본과 금융의 분리는 구조개혁의 필수적인 요소이다. 미국 테러사태를 빌미로, 금융안정과 증시부양의 허울 속에 양보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라는 특별 기고문이 실리기도 했다.

  한편 중앙일보는 17일자 사설에서 “…상호방위조약 제2조에 규정된 ‘공동대처’사안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서는 법리적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5천명 이상의 무고한 목숨을 앗아간 이번 테러에 대해 미국과 공동 대응하는 것은 법의 차원을 넘어 동맹국의 도덕적 의무다. …문명사회의 구성원이라면 마땅히 응징과 근절 노력에 동참해야 한다. 성급한 전쟁으로 인한 보복의 악순환을 우려하면서도 결코 테러집단에 대한 응징에 반대할 수는 없다”라고 말하며 미국의 ‘전쟁’논리에 노골적으로 손을 들어주기도 했다.

/ 김진희 기자 real-li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