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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근본주의와 테러리즘은 서구 침략의 결과 지난 11일 일어난 테러 직후, 미국은 신속하게 ‘보복과 응짱을 천명했다.
현재 전시체제를 선포하고 특수부대를 투입하는 등 아프가니스탄과의 전쟁이 초읽기에 들어간 시점이다. 어떠한 이유에서도, 무고한 인명을 살상하고
인류를 공포에 몰아넣는 이러한 테러는 반인류적이며 야만적인 행위임에 분명하다. 때문에 ‘미사일 방어’ 등과 관련, 미국과 냉랭한 관계를 유지해
오던 유럽도 이번 만큼은 미국의 입장에 동조하고 있다.
그런데 왜 유독 미국이 테러의 표적이 되었을까. 미국이 무엇을 크게 잘못했기에 이렇게 큰 희생을 치러야 할까. 이 부분에 대해
미국의 정치권과 언론은 거의 다루지 않고 있다. 침묵하는 것인가, 아니면 테러는 무조건 악마의 행위이기 때문에 그 원인이 문제가 될 수가 없다는
얘기일까.
사회 일각에서는 쌍둥이 빌딩과 충돌한 것은 비행기가 아니라 이슬람 문명이라는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에 기인한 이야기들이 새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그러나 ‘문명의 충돌’을 기정사실로 돌려놓고 세계를 ‘공작’과 ‘전략’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헌팅턴의 서구
패권적 발상이 과연 현실에 적합한가, 그리고 미국과 이슬람의 관계가 이러한 ‘문명의 충돌’이었는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슬람 세계는 오랜 위기에 빠져 있다. 이 위기는 물론 새로운 것은 아니며 서구 열강이 모슬렘의 세계를 악몽처럼 침범하면서
시작됐다. 그 시작은 1798년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이었고 이 침략으로부터 아랍 세계는 1백50년 동안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의 압박과
굴욕과 착취를 당했다. 영국은 이집트를 파산 처분했고, 북아프리카 마그레브 전체가 반세기 동안 식민화됐다. 알제리는 프랑스에 지독하고 잔인하게
당했다. 중동의 팔레스타인 레바논 시리아에서 메소포타미아에 이르는 ‘비옥한 반달’의 아랍인들은 1차 세계대전 동안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지휘
아래 반란을 일으켜 터키 세력을 묶어둠으로써 오스만이 유럽의 격전지에 뛰어들 수 없도록 했다.
그러나 영국은 아랍인들에 한 약속을 베르사유에서 일언하에 져버렸다. 아랍 독립의 꿈은 영국과 프랑스의 보호령이라는 미명 아래
산산조각 났고 민족자결을 외쳤던 윌슨은 이를 축하했다. 양차 대전의 중간 시기에 식민세력은 분리통치를 위해 아랍 세계를 토막내면서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이집트 레바논 요르단 시리아 이라크의 독립을 허용했다. 그후 정치적 종속관계를 끊고 내적 통합과 근대화를 성취하려는 아랍국들의 몸부림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여기에는 미국이 있다. 미국은 산유국 중동의 전략적 이익과, 서구 기독교 문명의 모태인 이스라엘의 상징적 가치를 결코 양보할
수 없다는 십자군적인 사명을 떠맡았다. 이슬람 세계가 근대 서구와 만나면서 여러 대에 걸쳐 겪은 고통과 치욕의 경험을 외면한다면 아랍인들의
마음속에 응어리진 서구와 미국에 대한 뿌리 깊은 원한을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는 세계를 서구의 눈으로 재단하는데 익숙해 있다. 바로 여기서
스스로를 왜곡하고 냉소하는 자기부정의 신화가 생성된다.
팔레스타인 출신의 미국 학자 에드워드 W 사이드(Edward W. Said)는 ‘동양에 대한 서양의 사고방식이자 지배방식’을
‘오리엔탈리즘’으로 규정하면서, 이를 동양을 지배하고 재구성하며 위압하기 위한 서양의 스타일이라고 했다. 오리엔탈리즘은 서양의 지리적 확장과
식민주의, 인종차별주의, 자민족 중심주의와 결부되어 지배의 양식으로 대두한다. 그는 제국주의 시대로부터 현대 미국의 제3세계 정책에 이르기까지
오리엔탈리즘의 기능을 파헤치면서, 특히 유대-아랍문제를 축으로 한 미국의 중동정책과 서구의 이슬람 여론조작의 역사를 집요하게 추적하여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말하자면 가해자의 눈으로 피해자 스스로를 비난해 왔던 도착(倒錯)된 사고방식의 틀이 깨어지는 순간이었다.
아랍 세계는 지금껏 세계 정치의 의붓자식으로 취급되었다. 이슬람 자체는 민주주의와 인권에 적대적이 아니다. 그러나 이슬람
세계의 다양성, 여러 인종 종파와 분파의 대립 등의 정치적·문명적 특성은 조화와 내적 통합을 어렵게 만든다. 이런 가운데 정교일치와 이슬람에
낯선 외부 요소를 거부하는 이슬람 근본주의는 분열과 폭력적 갈등을 부추긴다. 테러리즘은 인간성 자체를 거부하고 인류 문명을 위협하는 악마적
만행이다. 그러나 테러리즘은 특정 목적을 지닌 정치적 선택이라는 점에서 냉철하고도 합리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모슬렘은 서구와 그 지도국인 미국의
패권적이고 일방적인 잣대를 비판해 왔다. 이 비난에 대한 미국의 반응은 항상 힘의 논리였다. 극도의 좌절과 절망에 사로잡힌 근본주의는 어디에서
정치적 출구를 찾겠는가?
그러나 테러의 야만성과 무고한 미국 시민의 희생에 필설로 다할 수 없는 고통과 분노를 느낀다. 동시에 우리는 아프가니스탄과
아랍 민중의 지친 삶과 그들의 깊은 절망감을 이해해야 한다. 미국은 인류 문명과 세계정치에 대한 도덕적 지도력의 회복에 힘써야 한다. 주변부
국가들에 대한 원조와 지원, 이슬람 세계와의 화해가 곧 그 길이다. 이 시점에, 미국을 상대로 그러한 테러가 자행된 것은 의미가 자못 심장하다.
세계 최강의 미국을 상대로 한 테러는 그만큼 정치적 효과가 크다. 미국을 상대로 한 테러의 가능성이 미국의 힘에 비례하여 높아지는 것이
당연하다. 또 부시 공화당 신행정부가 출범한지 7개월여만에 이와 같은 테러가 발생한 것은 ‘오만한 단독주의’라는 비난을 사온 부시 행정부의
외교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 관측이다.
이번 사건 이후 부시도 강조했듯이 미국은 힘이 있다. ‘힘의 논리’를 앞세운 군사, 외교, 경제정책은 다른 나라들로부터 견제와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부시가 취임한 이후 밀어붙이고 있는 미사일 방어정책과 반환경정책은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아왔다. 무엇보다도 미국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신봉하고 있는 나라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미국이 추구하는 자유와 정의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각종 정책들로 인해 자의든 타의든
일부의 소수와 약자가 상처와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미국은 이러한 부분에 대한 반성은 커녕 부시의 강경정책은 국내에서 더욱 힘을 얻어가고 있다. 이번 사건은
우리가 믿고 있는 문명에 대한 신화가 얼마나 불완전하고 허약한 것인지 알게 해준다. 또한 세계 강국이라는 미국의 위상이 기실은 그로 인해
억압받는 많은 민족들의 절규와 분노를 밟고 일어선 것이라는 것을 엄청난 현실로써 대변해 주고 있다. 또 테러는 강자에 대한 약자의 유일한 저항
수단이긴 하나 그렇다고 미화할 것은 못된다. 평화를 위협하는 테러는 추방돼야 하고, 있으면 마땅히 응징해야 하는 것은 맞다. 한반도에 미칠 여러
가지 우려의 정황에서 장차 부시의 대응은 무척 주목된다. 그러나 인류의 평화공존 차원을 넘어 부시 자신의 자존심을 살리기 위한 잘못된 응징은 더
큰 재앙을 가져오기 십상이다.
/ 기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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