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11일, 패권국가 미국의 경제력과 군사력의 핵심부인 세계무역센터와 팬타곤에 기습적인 테러가 가해져 수많은 인명이 희생됐다. 세계는 무고한 미국민들의 죽음에 대해 슬픔과 애도로 숙연했으며, 미국은 테러에 대한 보복을 천명했다. 21세기의 첫 해에 세계역사에 길이 남을 전쟁은 이렇게 시작된다.

▲2001년 9월 29일, 감정일색으로만 치닫던 “테러응징 전쟁선언”은 사건발발 이후 세계여론의 선회와 함께 평화적 해결책의 모색이라는 희망을 보이기도 했다. 뚜렷한 테러증거의 공개 없이 개전을 선포할 경우 미국은 그간 이슬람을 비롯해 제3세계로부터 받아온 “힘으로 군림하는 제국주의국갚라는 오명을 세계 모든 나라들로부터 받게 될 것이라는 여론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극우파와 손잡은 미국내 주요언론은 미국민들의 테러 보복감정을 자극했고, 막대한 로비자금을 투입한 다국적 군수산업체들, 일본을 비롯해 자국의 이익에 이번 전쟁을 이용할 심산을 노골적으로 표출해 온 국가들은 UN의 공식적인 비준을 무시한 채 국제법상 불법으로 규정된 미국의 보복전쟁을 부추기게 된다.

▲2001년 9월30일, “두더지 사냥”이라는 작전명으로 선포된 미국의 대 테러 보복전쟁은 이번 테러의 주범으로 지목된 ‘오사마 빈 라덴’을 비롯해 그가 속한 테러조직 ‘알 카에다’와 배후 후원세력인 중동의 일부 적성국가를 대상으로 비밀리에 개전됐다. 세계 여러 국가와 평화인권단체들의 이성적 판단을 호소하는 목소리는 잠식됐고, 작전은 전쟁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단기간에 결론지어 졌다. 험준한 산맥과 지하벙커로 짜여진 아프가니스탄의 지형, 종교적 신념으로 뭉쳐 제국의 침공을 물리쳤던 이슬람의 전사들도 현대과학이 만들어낸 핵무기 앞에선 무력하게 무너진 것이다. 당초 적진의 주요 전투시설과 지도부만을 대상으로 한정정 공격이 이뤄질 것이라는 예상은 개전 초기에 빗나갔다. 미국의 개전 선포와 함께 미국 본토와 병력지원국가를 대상으로한 이슬람 급진 테러조직의 테러활동이 재개된 것이다. 또한 여타 온건적 이슬람 국가들도 예고 없는 개전과 폭격으로 아프카니스탄 민간인들의 피해가 속출하자 반미감정이 극에 달했고, 더이상 형제들의 죽음을 좌시할 수 없다며 “시온주의로부터 이슬람을 지키기 위한 성전에의 동참”을 천명한 것이다. 전쟁은 장기화되고 확전될 기미를 보였으며, 미국은 과거 영국과 소련연방의 전철을 밟을 것을 두려워해 최후의 보류였던 “전술핵무기”를 사용하게 된 것이다.

▲2002년 9월11일, 1년 전 전쟁으로 괴멸하다시피한 이슬람의 몇몇 도시들에서는 수백만명의 사상자와 전쟁난민이 발생했다. 그리고 살아남은 이슬람인들은 결사항전과 “또다른 보복”을 천명했다. 이슬람의 테러조직은 더욱 늘어나고 공고해 졌으며, 테러발생 빈도도 더욱 증가했다. 테러 대상 또한 전쟁 당시 미국에 직·간접적인 협조를 한 국가까지 확대됐다. 세계인의 ‘화합의 장’으로 기대했던 2002년 한·일 공동월드컵은 아랍인들의 입국을 엄격히 통제한 채 우습게도 ‘치안월드컵’으로 전락했다. 전쟁당시 한미상호방위체제를 내세우며 경솔한 파병결정을 내렸던 우리나라 또한 테러대상국의 위험을 떠안게 된 것이다.

▲이상은 이번 미국테러로 인해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을 가상시나리오로 그려본 것이다. 무찰별적이고 야만적인 테러리즘은 전쟁보다 못한, 어떠한 명분에서건 용납할 수 없는 범죄행위며 마땅히 규탄받아야 한다. 그러나 미국이 범인을 확실히 밝혀내지 못한 채, 아프가니스탄과 공조범들에 대한 보복공격에 핵전쟁까지 불사하겠다는 격앙된 목소리를 내는 것은 더욱 심각한 우려를 자아낸다. 이번 미국테러에 버금가는 또다른 참사를 불러올 것이기 때문이다. 기실 이슬람 국가들에 대한 미국의 대외정책은 일관된 억압과 무력에 의한 것이었다. 결국 이번 테러가 “칼로 흥한자 칼로 망한다”라는 말처럼 미국이 스스로 자초한 부분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미국은 군사시설확충과 미사일방어체제 구축, 핵확산방지정책 폐기, 교토의정서 폐기 등 독선적·자국중심적 대외정책을 전향해야 하며, 우리정부 또한 성급한 판단으로 이슬람이라는 또다른 우방에 총구를 겨누는 우행을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