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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주의 '젊은 꼰대가 바라본 우리 사회'] 이별까지 ‘안전’하게 해야 되는 요즘 애들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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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3.01  14: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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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리에서 알게 된 친구가 어느 날 선글라스를 끼고 강의실에 나타났다. 그 해 첫 학기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친구는 강의실 구석에 자리를 잡고, 수업 내내 잠시도 선글라스를 벗지 않았다. 볕이 살짝 따가워지긴 했지만 초여름에 선글라스는 유난이라고 생각했다.

친구도 눈치가 보인 모양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열없다는 듯 먼저 말을 꺼냈다. “남자친구한테 맞았어” 그제야 선글라스 너머로 시퍼렇게 멍들어 있는 그의 눈두덩이 보였다. 그는 맞은 적이 몇 차례 더 있는데 지금껏 몰랐냐고 되레 묻기도 했다.

그의 남자친구는 집착이 심한 편인 듯했다. 감시하듯 불쑥불쑥 집에 찾아왔고, 휴대전화를 빼앗아 문자메시지를 검사했다고 한다. 집착에 질려 헤어지자고 연락한 날에는 집에까지 찾아와 주먹을 휘둘렀다는데. 수소문을 해보니 친구와의 술자리에 나타나 횡포를 부린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둘은 꽤 오랫동안 헤어지지 않았다. 몇 달이 지나 얼마나 됐을지도 모를 기념일을 자축했다는 소식만 전해졌다. 친구에게는 참담하기만 했을 그 시간이 과연 축하받을만한 것일까. 선글라스를 낀 친구의 멋쩍은 듯한 미소가 아른거렸다.

슬프게도 해마다 수천명의 연인이 핏빛으로 물든 시간을 보낸다. 애인을 폭행해 입건된 건수는 2017년에만 1만건을 넘어선다. 전년(8천367명)보다 23.1%나 증가한 수준이다. 가해자는 대부분 남성이었다. 10명 중 8명꼴이다. 범죄의 유형으로는 폭행 및 상해가 69.2%로 가장 많았다. 이어 감금이나 협박(13.1%), 살인 및 살인 미수(5.6%), 성폭력(2.5%) 순이다.

여성의 10명 중 9명은 교제하는 남자친구에게 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다는 통계도 있다. 언어폭력이나 가스라이팅 등의 정서 학대까지 포함된 것이라 과장된 측면도 없지 않아 있으나, 초라하기만한 사랑의 현주소를 잘 보여준다는 생각이 든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인터넷에는 ‘안전이별’ 후기를 전하는 글이 무척 많아졌다. 안전이별은 스토킹이나 폭력에 시달리지 않고 연인관계를 끊는다는 뜻이다. 결별 선언이 살인까지 부른 사건이 심심찮게 일어나자 생겨난 신조어다. 이별과 함께 떠오르는 단어는 아픔이나 슬픔이었는데, 올해는 안전이 포털사이트 연관검색어 1위를 차지했다.

안전이별의 방법을 소개하는 글도 화제다. ①거칠게 욕하다 갑자기 애교 떨기 ②다정한 커플을 보면 밑도 끝도 없이 울기 ③아프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기 ④취업을 포기하고 시집가겠다고 말하기 ⑤바람피우는 거냐고 의심하기. 이 글을 작성한 네티즌은 “남자친구에게서 헤어지자는 말을 받아낸 뒤에도 한동안은 ‘누구랑 바람난 것이냐’는 내용의 문자를 계속 보냈다”고 밝혔다. 추억을 포장할 틈조차 주지 않으려는 확인사살이었다. 핀테크로 보급된 간편송금도 이별의 기술로 활용된다. 연인에게 수시로 돈을 꿔 달라고 해 정을 떨어뜨리는 식이다.

지난해 춘천에서는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가 남자친구에게 처참히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서울 강서구의 한 아파트에서는 40대 여성이 전 남편의 흉기에 찔려 숨진 사건도 있었다. 모두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해 일어난 범죄였다. 목숨 걸고 이별하는 세상이란 한탄이 어색하게 들리지 않는다. 이별은 아프고 서럽기만한 연애의 잔상을 긴 시간동안 담금질해 추억으로 만드는 과정이었는데, 치밀한 전략 아래 서둘러 정을 떼야 하는 절차가 돼버렸다.

범죄야 처벌로 막을 수 있다지만, 로맨스가 스릴러로 변질된 세태는 또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

/전형주 언론방송융합미디어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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