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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우리 사회에는 ‘만화는 어린이들이 보는 것’이라는 통념이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이 만화는 어린이들도 맘놓고 보지
못한다. ‘만화는 어린이가 보기에는 해악스러운 것’이라는 또 다른 통념이 함께 존재했기 때문이다. 만화는 20세기 초 상업 신문이 범람하던
시기에 태어났다. 선정적이고 상업적인 언론을 지칭하는 Yellow Journalism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낸 것이 바로 현대 만화의 시발점이라
불리는 「Yellow Kid」이다. 이렇게 만화는 저급한 오락을 대표한다는 인식 속에서 출발했지만 그 대중성을 이용해 기반을 굳히며 급성장해
왔다. 지금은 그림을 영상으로 옮긴 애니메이션, 만화 속 캐릭터 상품 등으로 확산되면서 하나의 산업으로서의 의미도 확보할 만큼 큰 성공을
거두었다.
반면 한쪽에서는 어두운 그림자가 걷히지 않고 있다. 바로 출판 만화 시장이다. 흔히 사람들은 출판 만화, 애니메이션, 만화적
캐릭터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 ‘만화’라는 말로 표현한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은 만화보다는 영화에 가깝고 캐릭터 또한 주변 산업일 뿐이다. 만화의
근본은 서사적 줄거리를 그림이라는 도구를 이용해 표현한 출판 만화인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출판 만화는 인터넷 같은 다양한 매체와 대여점을
통한 저렴한 시장 접근으로 점점 더 그 저변은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그 저변 확대의 이면에는 한국 출판만화의 존립을 위협할 정도의 큰 위기가
있다는 것을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는 쉽게 알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에 기획부에서는 한국 출판 만화의 위기는 어디에서 왔으며 현실은 어떠한지,
그에 대한 대안은 없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만화계 불황, 이대로는 안된다
만화에 대한 인식과 패러다임의 변화에 발맞춘 변화 필요
IMF이후 한국의 출판 만화가 고사상태에 있다는 말은 모두 거짓말이다. 한국의 출판만화는 IMF 이전이나 이후나 크게 달라진
바가 없다. 워낙 오랜 기간 불황이다 보니 거덜날 대로 거덜난 살림이라 더 이상 찰 쪽박도 없다는 말이다. 만화계에서 회자되는 불황의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왜곡된 유통체계. 대여점으로 대표되는 한국만화의 유통시장은 한마디로 ‘동서 고금을 통틀어 세계 역사에 유러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낙후돼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그려도 일부 서점용 만화(기획, 학습물)를 제외하고는 ‘만화책’을 사서 보지 않고 빌려보는
시스템이 정착돼 있기 때문에 만화작가들에게 수익이 거의 돌아가지 않는다. 전국적으로 1만 군데에 조금 못 미치는 대여점에 만화가 깔리면 그 길로
수명이 다한다는 말이다. 아무리 재미있어도 제아무리 소장 가치가 높아도 일부 매니아층을 제외하고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평범한 사람이 만화를 사는
것은 생소한 일이 돼 버렸다. 이러한 현상은 작가들로 하여금 한 권 그리면 될 것을 여러 권 그리지 않으면 먹고살지 못하는 구조를 잉태하게 하여
질을 낮은 만화를 분만하고, 독자의 외면으로 성장한 후 다시 잘못된 구조를 잉태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게 하고 있다.
둘째, 무료 인터넷만화의 범람. 세계에서 초고속 통신망이 가장 잘 구축돼 있는 우리나라에서만 찾아 볼 수 있는 인터넷만화
시장의 급속한 팽창에도 위기의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마우스 클릭 세번이면 몇천, 몇 만권 분량의 만화가 공짜로 펼쳐지는 오늘날, 만화를 사는
사람은 고사하고 대여점을 찾아 3백원이라도 내는 사람이 고마울 지경인 것이다. 물론 수익모델 창출 실패로 몇몇 만화사이트들이 문을 닫기는 했지만
아직도 각 포탈사이트의 접속 상위권에는 무료만화가 당당히 자리하고 있다.
셋째, 강력한 경쟁자 PC방과 휴대폰. 최대 구매 세력인 10대들이 PC방과 휴대폰에 지출하느라 더 이상 만화를 사지 않는
것도 출판만화 불황의 이유중의 하나로 꼽을 수 있다. PC방과 휴대폰은 과거에 없었던 새로운 소비문화를 창출해 내어 한정된 용돈의 씀씀이를
싹쓸이 해 가는 현상을 낳았고, 매체적 우위에서도 만화를 밀어내고 아이들을 지배하기에 이른다. 장래희망란에 만화가가 사라지고 프로게이머가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없는가? 대여점 주인 모두 구속시키고, 무료 인터넷만화사이트에 테러하고, PC방에 세금 1천배 물리고,
휴대폰에 전기 충격 가하는 장치 필수 옵션으로 달면 되겠지만 만화에서나 가능하지 현실은 매우 우울하고 막막하다. 대여점 문제만 하더라도
출판사들이 만화를 공급하지 않으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매출의 60% 이상을 대여점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당장 만화공급을
끊으라는 것은 스스로 혀 물고 자결하라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그나마 인터넷 사이트들은 나은 편이다. 조회수에 따라서 업체쪽에서 작화료를
지급하거나 권당 작화료를 계약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네티즌들이 볼 때는 무료이기 때문에 몇십만명 봐 바야 몇 만원 안 떨어지는 게 문제고 권당
계약금으로 몇 십만원 안주는 게 문제다. 해결책이라면 유료화인데 무료가 난립하는 상황에서 유료가 제대로 자리 잡기란 거의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최근 이 틈을 비집고 막대한 물량과 퀄리티로 승부를 걸고 있는 유료사이트가 몇몇 생겨나고 있어 희망을 갖게 한다.
또 다른 ‘희망의 증거’는 서점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참 대단한 나라다) 학습만화 시장이
매우 굳건하게 자리잡고 있다. 같은 만화라도 학습적인 것이면 부모들은 무조건 사준다. 그래서 최근 출판만화 시장만큼이나 어려운 일반 도서
출판사들이 앞다퉈 학습만화 시장으로 뛰어들고 있다. 이러한 현상과 맞물려 유럽의 고급만화와 기획만화들이 고급양장으로 포장돼 대여점이 아닌 서점에
속속 선보이고 있는데 조만간 국내 작가들의 순수 창작물도 이러한 유통 경로를 통해 선보일 태세다. 이를테면 소량생산 및 스테디셀러 만들기
전략으로 볼 수 있는데 만화에 대한 일반의 인식과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오늘날 매우 적절한 선택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는 있다. 출판사들이 너도나도 뛰어들다 보니 전문적인 만화기획자가 절대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외국 만화의 무분별한 수입과 아무 작가하고나 만들고 보자는 식의 물량주의가 고개를 쳐들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가속화되고 일반화되면 시장이
결단나는 것은 시간 문제다. 전문적인 만화기획자의 양산과 소양을 갖춘 작가를 길러내는 것이 이를 방지하기 위한 관건이다. 최근 문화관광부와
부천만화정보센터 등에서 만화 기획자 과정을 만들고 전문인력을 양성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어 다행이라고 하겠다.
지금까지 출판만화의 위기와 대안에 대해 두서없이 서술하면서 만화와 그 주변부의 인프라에 집중했다면 결론은 조금 다른 곳에서
내리고 싶다. 영화나 애니메이션이나 출판만화 등은 창작의 소산이다. 창작의 중심은 누구인가? 바로 작가다. 오늘날 한국영화가 외국영화를 압도하는
현상의 근저에는 제대로 공부한 천재적인 감독들이 있었다. 박재동이 시사만화의 새 시대를 열고 양영순이라는 작가가 성인만화의 흐름을 바꾸어 놓고
박광수가 신문만화의 양상을 일신한 것처럼, 일본을 만화대국으로 끌어올린 일본 만화의 신데스카 오사무와 같은 한 사람의 천재가 출현하는 것이
1천억원의 자금을 만화계에 투입하는 것 보다 중요하다. 이것은 지난해 11월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던 한일만화인 세미나에서 내려진 결론이기도하다.
오늘날 한국만화는 천재의 출현을 기다리고 있다.
/ 우리만화 발전을 위한 연대모임 사무국장 김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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