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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주 칼럼] ‘벌레’가 되지 않기 위한 노력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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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3.16  09:0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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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를 헤매고 갈팡질팡하게 하는 사건이 있다. 물증은 없고, 완벽하게 엇갈리는 주장만 난무하는 현장에 있다 보면 설익은 직감조차 오지 않는다. 몇 번은 여론에 편승하는 전략을 펴봤다. 다수의 합의된 의견이, 경험에서 우러나온 기성세대의 통찰이, 때론 관성과 세파에 찌들지 않은 젊은 세대의 열정이 결과적으로 옳은 판단이었던 기억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수의 판단이 언제나 옳은 것만은 아니었다.

지난해 5월 유튜브 크리에이터 양예원(25)씨가 서울 마포구의 한 스튜디오에서 음란한 사진 촬영을 강요받고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사건을 취재하다가도 적지 않은 혼란을 겪었다. 양씨가 성추행을 당하고 ‘피해자답지 않게’ 되레 추가 촬영을 요구했다는 증거물이 나오면서다. 더구나 주요 피의자인 스튜디오 실장이 억울하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한강에 투신해 사건은 더욱 미궁에 빠졌다.

참고하려는 여론도 다소 혼란스러운 양상이었다. 양씨의 진술에 의심할만한 균열이 생기자 일각에선 양씨를 살인자로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양씨의 거짓된 폭로가 무고한 사람을 죽였다며 분노했다. 양씨를 동정하는 여론은 예전만큼 많지 않았다.

양씨 측의 납득하지 못할 해명도 논란을 키웠다. 양씨는 지독한 생활고를 이겨내지 못해 스튜디오를 몇 차례 더 찾기는 했지만, 성추행은 분명히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상식 밖의 행동이라는 지적이 터져 나왔다. 아무리 생활고가 심했다고 한들 성범죄 소굴에 제 발로 찾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내가 근무하던 신문사를 비롯해 수많은 매체는 양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보도했다. 나는 그 연장선에서 양씨의 무고 혐의를 유죄로 주장하는 취지의 기사를 썼다. 숨진 실장은 외려 양씨의 노출사진이 유출되지 않도록 노력했다는 정황이 담긴 문자메시지 내용을 보도했다.

반응도 좋았고, 조회 수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속으로는 여전히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숨진 실장의 주장이 다 옳다고 하더라도 양씨가 굳이 무고를 할 이유는 없지 않나’라는 의문이 끝내 해소되지 않았다.

뒤숭숭한 마음에 기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기를 수십 번쯤, 갑자기 다른 부서의 한 선배가 태클을 걸어왔다. 디지털 성폭력의 피해자인 양씨에게 ‘2차 가해’를 했다고 지적했다.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했다”고 한참을 야유하는데도 반박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들어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양씨의 무고 혐의는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됐다. 검찰은 양씨가 명백한 허위사실로 무고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스튜디오 실장 측은 곧바로 항고하겠다는 뜻과 함께 양씨의 무고 혐의를 입증할만한 증거를 내놓겠다고 밝혔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지금도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 다만 향후 이어질 항고 절차에서 아래 두 가지 정도는 내내 곱씹으며 고민해보려고 한다.

첫째는 양씨가 음란한 사진을 찍는 동안 느꼈을 위압감과 무력감이다. ‘고분고분하게 말을 듣지 않으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내 모습이 전 국민에게 보일 것’이라는 두려움. 이 두려움이 양씨를 짓눌러 자포자기하게끔 했을 것이다. 위력은 대체로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저 작동한다. 그래서 증거가 남지 않는다. 직접 명령할 필요도 없다. 주변의 약자를 침묵하게 하고 무기력하게 한다.

둘째는 미투 이후 여성계가 왜 그토록 분노하는지에 관해서다. 지난해 출간 30주년을 맞은 고(故) 신영복 선생의 자서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머리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고, 마음 좋은 것이 손 좋은 것만 못하고, 손 좋은 것이 발 좋은 것만 못한 법입니다. 관찰보다는 애정이, 애정보다는 실천적 연대가, 실천적 연대보다는 입장의 동일함이 더욱 중요합니다. 입장의 동일함, 그것은 관계의 최고 형태입니다.”

여성계의 분노는 결국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데서 출발한다. 피해자의 호소에 공감을 뛰어넘어 ‘내 얘기’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내가 지금껏 갈팡질팡했던 이유는 ‘입장의 동일함’은 커녕 ‘관찰’의 수준을 뛰어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음 단계인 ‘애정’과 ‘연대’의 관계로 발전하려면 지금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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