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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훈 교수의 '식탁위의 인문학'] 샤갈의 작품에서 중요한 그림 소재였던 닭 종교, 고향, 자신을 중첩적으로 투영한 상징외곽선 흐린 샤갈 작품은 바로크 미술과 분위기 비슷 고국을 등진 까닭에 쇼팽 작품과도 묘한 상동성 지녀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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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3.30  09:5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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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유명한 닭 그림으로는 무엇을 떠올릴 수 있을까? 무수한 화가들이 무수한 닭 그림들을 그렸겠지만 필자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은 마르크 샤갈의 ‘수탉’이다. 우리에게는 ‘눈 내리는 마을’과 ‘푸른 빛의 서커스’로 잘 알려진 샤갈은 사실, ‘에펠탑의 신랑신부,’ ‘수탉,’ ‘노란 꽃송이와 닭,’ ‘수탉 위의 신랑 신부’ 등과 같이 닭에 대한 그림도 많이 내놓았다. 그리고 그의 닭 작품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에펠탑의 신랑신부’이다.

러시아의 유대교 집안에서 태어난 샤갈은 어린 시절, 비테프스크라는 시골 마을에서 자랐는데 화가의 길을 걸은 이후, 종교와 함께 고향의 자연 풍경을 자신의 작품 활동에서 주된 소재로 많이 동원했다. 그런 까닭에 샤걀의 작품에는 고향 마을에서 자주 접했던 소와 양, 당나귀와 염소, 닭과 물고기 등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덧붙이자면, 샤갈의 작품에 나오는 닭은 모두 수탉이며 수탉은 비테프스크에서 치러지는 종교 행사의 제물로 사용되곤 했다.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했던 베드로가 수탉의 울음을 통해 자신의 죄를 깨달았기 때문. 말하자면 샤갈의 마을에선 수탉이 죄를 사함받기 위한 희생물로 사용됐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어린 시절, 수탉이 제물로 바쳐지는 장면을 자주 목격했던 샤갈에게 수탉은 연민과 친숙함, 종교적 의미 등이 중첩적으로 내재되며 복합적인 상징물로 작용하게 된다.

샤갈의 그림에 등장하는 수탉은 남성의 정력을 상징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에펠탑의 신랑신부,’ ‘수탉,’ ‘날고 있는 연인‘ 등에서는 캔버스 중앙에 수탉이 커다랗게 그려져 연인들과 함께 등장하는데 이는 연인들의 욕망과 정욕을 상징한다고 한다. 샤갈의 수탉은 또한, 부와 다산을 의미하기도 하며 경우에 따라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도 활용된다. 한다. 그런 까닭에 혹자는 수탉을 샤갈의 ’아바타‘로 부르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샤갈의 환상적인 작품들을 보노라면 벨기에의 초현실주의화가 마그리트가 떠오른다. 하지만 비슷한 화풍을 지닌 마그리트의 그림들이 정갈하고 밝게 그려진 데 반해, 샤갈의 그림은 다소 흐릿하고 어둡게 채색돼 있어 마치 르네상스 미술과 바로크 미술의 차이를 연상시킨다. 참고로, 르네상스 미술과 바로크 미술의 대표적인 차이점으로는 외곽선의 분명함과 함께 이야기의 전개 방식을 꼽을 수 있다. 이를 전문적인 말로 표현하자면 ‘선적인 것’과 ‘회화적인 것,’ 그리고 ‘닫힌 형식’과 ‘열린 형식’의 차이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주장은 필자의 것이 아니라 20세기 최고의 미술사가인 하인리히 뵐플린의 것이다. 뵐플린은 1915년 대표작인 「미술사의 기초 개념」을 간행했는데 여기에서 그는 르네상스 미술과 바로크 미술의 차이를 논함에 있어 당시 유럽 미술계에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이유는 두 미술 사조를 비교해 분석한 논증이 너무나 적확하고 설득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뵐플린의 미술사 해설은 르네상스 미술과 바로크 미술의 차이를 설명하는 정답이 됐다.

「미술사의 기초 개념」에서 그가 설명하는 두 미술 사조의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르네상스 미술의 경우, 피사체의 외곽선이 뚜렷하지만 바로크 미술은 피사체의 외곽선이 흐릿해 그림 소재가 화면 전체에 녹아드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이야기가 작품 한 점에 다 펼쳐져 있어 그 결말을 알 수 있도록 메시지가 전달되는 것이 ‘닫힌 형식’의 르네상스 미술이며 향후의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는지 알 수 없는 ‘열린 형식’을 채택한 것이 이른바, 바로크 미술이다. 참고로, ‘바로크’란 스페인어로 찌그러진 진주를 뜻하는 용어로, 깔끔하고 단아하며 알기 쉬운 르네상스 미술에 비해 난해하기 이를 데 없으며 그림도 어둡고 외곽선이 분명치 않은 바로크 미술들을 당시의 비평가들이 비꼬아서 부른 데서 그 유래가 시작됐다.

그런 까닭에 벨기에의 화가 마그리트가 외곽선이 분명한 가운데 모순적인 장면들을 그림 안에 투영시킴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그 의미를 화면 안에서 파악하도록 유도하는 반면, 샤갈의 작품들은 애매한 관계의 여러 피사체들이 불분명한 외곽선으로 한데 어우러져 관객들의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돌이켜 보면,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그림 풍과는 달리, 비운의 삶을 산 화가가 샤갈이었다. 러시아에서 태어났건만 러시아 정교가 아닌 유대교를 믿었으며, 러시아 혁명 이후에는 고향을 떠나 프랑스 파리에 머물다가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다시 미국으로 건너간 이가 샤갈이었기 때문이다. 종전 이후에는 공산국이 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파리에서 생을 마감한 그는 20세기의 인류사가 나은 ‘다이아스포라’의 희생물이었다. ‘다이아스포라’란 팔레스타인을 떠나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면서 유대교의 규범과 생활 관습을 유지하는 유대인들을 지칭하던 말. 이후, ‘다이아스포라’는 의미가 확장되면서 본토를 떠나 자신들의 규범과 관습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민족 집단 또는 그 거주지를 가리키는 용어가 됐다.

그런 의미에서 종교적 제물인 동시에 고향을 상징하던 수탉은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고스란히 투영해주던 슬픈 대상물이었다. 그래서일까? 샤갈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낭만파 음악가 쇼팽과 샤갈 사이의 묘한 상동성(相同性)이 느껴진다. 프레데리크 쇼팽 역시, 자신의 고국인 폴란드가 프로이센 및 러시아와 분할 통치되는 바람에 폴란드를 떠나 프랑스에서 생을 마친 비운의 예술가였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샤갈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비련과 애수, 환상과 낭만은 쇼팽의 음악에서도 어렵잖게 확인된다는 생각이다. ‘다이아스포라’가 이들에게 그들만의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하도록 유도했다고나 할까?
그럼, 다음에는 닭과 관련된 국내의 작품들과 화가들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드디어 중간고사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모두들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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