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시골외갓집에서 재래식 화장실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결국 며칠 씩 화장실도 가지 않고 버티다가 집에 돌아와서 볼일을 해결하던 일이 어린 시절 기억속에 남아있다. 군대 시절에도 화장실은 여러가지 일이 벌어지곤 하였다. 이등병 녀석이 화장실에서 몰래 라면을 먹다가 일직사관에게 걸린 일, 자다가 고참에게 화장실로 불려나가는 후임병등 내 머릿속에서 하나의 추억으로 남아있다. 화장실은 가장 중요한 생리적 욕구를 해결하던 문제를 비롯, 은밀한(?) 공상과 자기혼자만의 시간을 채워나가는 현대 사회의 새로운 공간이 되기도 한다.

  ‘밀란 쿤테라’는 자신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배변의 쾌감에 대해 예찬한다. 자유로운 상상과 화장실 안에서의 편안함은 아마도 나만이 갖는 생각은 아닐 듯 싶다. ‘이런 생각들이 화장실 낙서를 자연스럽게 이루어 질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닐까?’ 자유로운 상상이 허락되는 화장실에서 많은 광고물들이 벽과 소변기 앞에 가지런히 붙어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심지어는 먹는(중국) 음식점 전화번호에서 학생들과 별로 상관없는 ‘사채’ 광고까지 다양하다. 그나마 우리학교 화장실은 부지런한 청소부 아줌마들의 노력으로 깨끗한 화장실을 유지하고 있다. 만일 화장실 입구를 막아놓고 청소하는 아줌마들에 대해 불만을 갖는다면 아줌마들의 노고를 한번쯤 생각해 보면 어떨까 한다.

  아무튼 화장실 안에서 눈에 튈 수 있는 광고와 깨끗하고 편안한 화장실 조성이라는 두가지 과제를 한꺼번에 이룬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오죽하면 수고하는 청소하는 아줌마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광고물이 화장실 소변기 위에 붙어 있겠는가? 결국 화장실 광고물은 청소부 아줌마들이 아무리 화장실 청소를 열심히 한다고 해도 생겨날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그렇다면 화장실 안 게시판을 만든다는 것은 매우 설득력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화장실안에 일정한 장소와 공간을 통일해서 게시판을 만든다면 두가지 과제 모두를 충족시키는 일이라 보여진다. 게시판에 붙어 있지 않고 여기저기 붙어 있는 광고물은 가차없이 청소 아줌마들의 몫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솔직히 게시판이 설치된다 하여도 걱정이다. 게시판을 만든다고 과연 제대로 운영될 수 있는 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벌써 시효가 끝난 광고물이 그대로 붙어 있거나 규격도 정해지지 않은 커다란 광고물이 게시판을 다 차지한다면 게시판의 효용성은 매우 떨어질 것이다. 따라서 게시판은 설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게시판을 운영관리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깨끗하고 편안한 화장실을 만들기 위해서 게시판은 꼭 필요하다.

/ 강원희(사과·정외·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