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매스컴에 가끔 등장하는 한류(韓流)라고 하는 신조어가 있다. 한류란 직역하면 한국 물결이라는 한자어로서 현재 동남아 여러 나라에서 불고 있는 한국 열풍을 일컫는 단어이다. 즉 중국·베트남·대만 등지에서 젊은 청소년층을 중심으로 불고 있는 한국 문화,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면 한국 연예인이나 한국 TV와 영화에 대한 열광을 말한다.

  매스컴에서 이 단어를 접할 때마다 나는 여러 가지 생각에 잠긴다. 우선 뿌듯한 마음이 앞선다. 우리는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남에게 영향을 주기보다는 주로 영향을 받아 왔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과거에는 중국으로부터 한자와 유가를, 현대에 들어와서는 미국 혹은 일본 문화의 유익하고 살이 되는 것부터 저속한 쓰레기 문화에 이르기까지 이것저것 남의 것을 받아들이기에 바빴다. 이런 우리가 이제는 비록 생명력이 지극히 짧을 수도 있고 감각적이고 유행에 민감한 연예 문화이지만 우리의 것을 가지고 다른 나라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에 뿌듯한 느낌이 들고 기분이 좋아진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다소 비약적일 지는 모르겠지만 한류(韓流)의 등장이 단지 문화 교류 차원이 아니라 우리나라가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해 하나의 방향성을 제시해 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우리나라는 지정학적으로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어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외세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결국 이런 설움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우리가 강대국이 되는 길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가 강대국이 되기 위해 갖춰야 할 것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다지 많은 것 같지는 않다.

  우선 우리가 살고 있는 땅덩어리는 너무 좁다. 표현이 좋아 삼천리 금수강산이지 실제로 남북한 합쳐 7천만의 인구가 여유롭게 다리 뻗고 즐길 풍족한 땅은 아니며, 우리가 대외적으로 큰 소리 땅땅 치며 위세를 보이기에는 좁디좁은 땅덩어리다. 땅덩어리가 좁다 보니 천연 자원도 그렇다. 중동의 산유국들이 석유를 무기 삼아 세계경제를 뒤흔들어 놓을 때 우리는 그대로 당해야만 하는 설움을 갖고 있다. 경제적으로도 그렇다. 과거에 비해 타국의 모범이 될 수 있을 만큼 성장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중국이나 미국과 같이 자체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커다란 내수 시장을 갖고 있지도 못하다. 어떻게 보면 수출만이 살 길인 수출입국형의 국가이다. 그러다 보니 항상 외부의 변화로부터 자유스러울 수가 없다. 외부의 자그마한 충격에도 크게 흔들릴 수 있는 경제적 구조를 갖고 있다. 비좁은 국토에 살고 있는 현재의 4천만이 넘는 인구, 적지 않은 숫자이다. 하지만 강대국이 되기에는 좀 부족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이제 한류(韓流)의 등장은 우리도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이 있는 국가로 발돋음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해 주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가져 본다. 설사 군사적이나 경제적으로 강대국이 될 수 없다 하더라도 문화 강국으로 발전할 수 있지 않는가?

  최근 동남아에서 불고 있는 한류의 열풍은 이에 대한 실마리를 제시해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쉽게 불이 붙다가도 어느 순간 갑자기 식을 수 있는 것이 연예 문화의 속성이다. 따라서 갓 피어나고 있는 한국에 대한 뜨거운 열풍이 썰렁한 바람인 한류(寒流)로 변하지 않도록 지속적인 투자와 연구가 진행되어져야 할 것이다. 아울러 연예 한 부분에만 국한되지 않고 어떻게 하면 다른 문화 방면까지 파급시켜 진정한 문화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는가 하는 명제를 갖고 고민해야 할 것 같다.  

/ 장범성(중국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