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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홈페이지에 찍힌 ‘주홍글씨’ 인터넷 내용 등급제, ‘청소년 보호’의 탈을 쓴 ‘검열’
늙은 의사와 결혼한 한 여인이 어느 목사와 간통을 저질러 사생아를 낳는다. 여주인공은 간통한 벌로 공개된 장소에서
adultery(간통)의 첫글자인 「A」자를 가슴에 달고 일생을 살라는 형을 선고받는다…. 이렇게 소설 「주홍글씨」의 헤스터는 가슴에 낙인이
찍힌 채로 평생을 살아가게 된다.
인터넷상에서 많은 논란을 빚어왔던 ‘인터넷 내용 등급제’가 지난 1일 전면적으로 시행됐다. 10월12일 정부가 발표한
‘청소년유해매체물 표시방법’에 대한 정보통신부(이하 정통부) 장관고시로 인해 확정된 인터넷 내용 등급제는 유해성 정보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인터넷 컨텐츠마다 등급을 매기는 것이다.
청소년보호법으로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결정·고시된 정보를 인터넷으로 제공할 때는 반드시 ‘19세 미만의 청소년이 이용할 수
없음’을 뜻하는 표시와 함께 개인용 컴퓨터 이용자가 이를 인식할 수 있도록 전자적 표시도 병행해야 한다. 이를 위반하면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통신질서확립법)’과 ‘청소년 보호법’규정에 따라 2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정통부가 채용한 청소년 유해매체를 표시하는 방법은 PICS(Platform for Internet Content
Selection) 방식으로 짝이 되는 차단 소프트웨어가 있어야 작동한다. PC방이나 학교, 도서관 등 공공장소나 청소년 유해 매체물에 대한
격리 조치가 필요한 공간은 의무적으로 차단 소프트웨어를 설치해야 한다. 또한 개인 PC 사용자가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이하 윤리위)에서 제공하는
세이프넷 홈페이지(http://www.safenet.ne.kr)에 접속해
youth.rat 파일을 다운받아 웹브라우저에 설치함으로써 청소년 유해매체물을 전자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소프트웨어는 청소년 보호를
이유로 정통부가 불온하다고 여기는 모든 곳에 접근을 차단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어떤 정보가 청소년 유해매체인지 아닌지, 그에 대한 등급 기준과 부여, 표시 방법을 윤리위가 맡게 된다는
데 있다. 자체적으로 정해놓은 기준으로 ‘검열’을 하겠다는 것인데 그 기준 또한 모호하고 터무니없다. 등급은 0∼4등급까지 5단계로 나눠지는데
노출, 성행위, 폭력, 언어 등의 범주에 걸쳐 매겨지며 불법 정보로 분류돼 등급외 판정을 받게 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여성의 생리가 혐오
3등급으로 분류돼 있고, 동성애는 퇴폐 2등급으로 분류돼 있다. 이런 방침에 따르면 모든 성교육 사이트와 동성애 사이트는 폐쇄되어야 마땅하고,
실제로 한 동성애자 커뮤니티가 퇴폐사이트라는 이유로 폐쇄된 적이 있다.
이렇게 윤리위의 잘못된 잣대에 조금이라도 어긋나게 되면 주홍글씨와 같은 낙인이 찍혀버리는 것이다. 그 사이트의 본질이 어떠하든
청소년에게 유해한 사이트라는 인식만이 남게 된다. 또한 PICS 방식에 따른 등급 전자표시를 하지 않은 사이트의 경우에는 아예 접속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사이트 폐쇄 효과를 가져온다.
또 다른 문제는 인터넷이 성교육과 동성애뿐 아니라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표현할 공간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했다는 데 있다. 지난 5월 백두청년회 명의의 북한체제를 찬양하는 게시판 글 삭제 파문은 이를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이것으로 볼
때 윤리위가 국가의 심의기구 노릇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인터넷 내용 등급제를 반대하는 시민사회단체들의 모임인 ‘정보통신검열반대 공동행동’은 11월1일 “기술적인 방식으로
인터넷을 차단하는 것은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가 아니라 국민의 인터넷 접속점을 차단하고 통제하는 행위일 뿐”이라며 “끝내 우리의 표현의
자유와 알권리를 지켜내고야 말 것”이라는 결의문을 발표하며 인터넷 내용 등급제의 폐지를 주장하고 나섰다.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이는 헌법 제37조 2항으로 인간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어느 정도 제한할
수 있는 조항이다.
그러나 이번에 실시된 인터넷 내용 등급제의 경우는 국가가 자신의 기준에 따라 인터넷의 내용을 ‘제 입맛대로’ 걸러내는 등
지나친 제한으로 검열의 수준에까지 이르고 있다. 국가는 청소년 보호를 명목으로 표현의 자유는 물론이고 생각의 자유, 사상의 자유까지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 고진선 기자 dimple63@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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