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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원] ‘사색의 정원’에 서식할 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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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9.21  13:3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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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본란에 실린 이찬 교수의 “페이스북 옥상에는 여우가 산다”는 글을 재미있게 읽었다. 최첨단 글로벌 네트워크기업의 옥상에 조성된 숲에 여우가 산다는 게 신기하기 짝이 없었다. 페이스북과 여우의 조합이라니, 환상적이지 않은가! 현실은 허구보다 기이하다는 말이 떠오르기도 했다. 한데, 그리 신기해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떤 방식과 경로를 통했건 서식하기 좋은 환경이니까 여우가 정말 ‘여우같이’ 거기로 찾아들었을 게다. 거기가 하필 페이스북 옥상이란 점이 놀라울 뿐인 것이다. 개강과 더불어 도서관에 “창의공방”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공간이 생겼다. 주위 사람들의 입담에 오르길래 구경삼아 가봤더니 학생들이 찾아들 만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학생들도 마음에 드는 공간을 여우같이 아는 게다.
 

더불어 현재 학내에는 여러 건의 공사가 진행 중이다. 그 중 두드러진 것은 차 없는 캠퍼스를 만들려는 것이다. 차가 차지하던 공간을 녹지로 조성하고 “사색의 정원”이란 이름에 걸맞게 꾸며진다고 한다. 그 이름을 듣고 ‘사색思索’이란 말을 참 오랜만에 접한다는 기분에 잠시 빠져들었다.

오랫동안 소식이 없던 옛 친구로부터 별안간 연락을 받은 듯 일순 얼떨떨하기도 했다. 언필칭 가을을 사색, 천고마비, 독서의 계절이라고 칭하던 때가 언제였던가 싶게 세월의 거리가 쉬이 가늠되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창의공방의 ‘공방工房’도 헛간으로 밀려난 케케묵은 말들의 더미에서 다시 불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을 테다.

우리는 현기증 날 만큼 부단한 변화의 흐름 속에 산다. 대학도 예외가 아니다. 상아탑으로서의 대학은 멸종 위기에 처한 아프리카의 코끼리보다 앞서 멸종되다시피 했다. 진리, 지성, 교양 등 대학의 표상과도 같았던 말들도 세월의 급속한 변화에 밀려나 대학에서도 더 이상 언급되지 않을 정도이다. 대신 경쟁력, 시장, 취업, 스펙과 같은 말들이 그 비워진 자리를 장악했다. 해서 나는 사색과 공방이란 말의 복권復權에서 페이스북 옥상에 사는 여우를 접하는 듯한 신기함을 맛본다. 물론 이는 나만의 과민하고 호들갑스런 반응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나는 사라진 줄 알았던 것들이 다시 우리 곁에 자리하는 게 참 좋다.

학생들은 나의 이런 회고적 상념에 뜨악해할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발 딛고 사는 ‘지금 여기’가 이러저러한 곡절과 경로를 통해 도달된 ‘특수한’ 지점인지를 아는 것은 필요하고 중요하다. 그래야 ‘지금 여기’에 함몰된 시각을 벗어나 삶의 다른 가능성들을 사색할 수 있다.

나는 페이스북 옥상의 여우, 창의공방, 사색의 정원을 떠올리며 애써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동시에 부단히 뒤로 떼밀려가는 것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신기하게도 현재와 과거는 긴 에움길을 통해서라도 만나고 맞닿는 것이다. 나는 내 나름의 여우같은 사색으로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이렇게 확인한다. 창의성이란 것도 현재와 여러 모로 색다르고 이질적인 과거의 헛간을 열심히 뒤지고 곰곰 성찰하여 현재와의 새로운 연결점을 찾는 데서 망외의 성취를 이룰 수도 있다. 조만간 우리 앞에 나타날 ‘사색의 정원’에도 ‘여우들’이 서식할 테지!

/김번 영어영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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