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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열렸던 국어국문학과 학술행사의 일환으로 <작가와의 대담>에 초대돼
우리학교를 찾은 바 있는 하성란이라는 여성작가는 자신에게 있어 ‘문학은 시선이 미치지 않는 곳에 가지는 관심이며 인간에 대한 애정의 표현’이라고
밝혔다. 그런 그녀의 대표작에 해당하는 작품이 바로 <곰팡이꽃>이다.
1999년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하성란의 <곰팡이꽃>은 어떠한 이유로 쓰레기봉투를 뒤지게 된 한 남자가 쓰레기 봉투
속에서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이웃들의 개인정보를 모으는 이야기를 그린 특이한 작품이다. 작가는 작품 속에서 익명화된 개인간의 소통의 단절을
조명하고 나름의 대안을 모색한다. 문학 평론가 김윤식씨의 말처럼 한국현대소설에 새 장을 열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탁월한 미시적(微視的)
묘사와 소재 자체의 새로움은 필자와 같은 민머리 대중독자의 눈으로도 대단하게 느껴진다. 기성작가와 그들의 작품과는 다른 이색적인 소재와 만듦새가
그 자체로도 높게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인 것이다.
작품 전편에 그려진 디테일한 묘사는 마치 현미경을 들여다보는 듯 정교한 느낌을 준다. 물론 현대사회에서 타인과의 소통상의
어려움 혹은 단절이라는 주제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하성란이라는 작가는 ‘마이크로 묘사’를 통해 전혀 색다른 작품을 독자에게 선사한
것이다. 쓰레기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 누구라도 세상에 내놓을 수밖에 없는 ‘배설물’인 것이다. 자신의 생활패턴과 기호가 고스란히 담긴
현대인의 배설물. 그래서 작가는 쓰레기를 뒤지는 것만으로도 타인의 많은 부분을 이해하고 파악할 수 있다는 가설을 설정한 것이다. 실제로 사회학
조사 방법 중에 일정 지역을 설정하여 배출되는 쓰레기를 체크하는 방법으로 주거민의 사회적 성분과 생활양태를 파악하는 조사법이 행해진다고 한다.
그러나 쓰레기라는 현대인의 배설물은 뭘 먹고 어떻게 사는지 까지는 해독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 이상은 위험한 추론에 불과하다. 작중의 남자처럼
쓰레기 속에 편지 따위를 버리지 않는다면 그의 사고방식과 심경파악은 사실 무리한 추측이 아니고서야 힘들다.
그럼에도 작가는 현대인의 배설물인 쓰레기를 뒤지는 악취미를 통해 타인에게 말 걸기를 시도한다. 완전할 수 도, 대안일 수 도
없는 색다른 시도는 독자들로 하여금 주위를 돌아보게끔 하는 ‘환기’라는 이름의 절반의 성공은 거두었다고 본다. 「도대체 알 수 없다니까.
진실이란 것은 쓰레기 봉투에서 썩어가고 있으니 말이야」 작품 속의 이 마지막 한마디로 작가가 말하고자하는 바를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쓰레기통을 뒤지는 ‘변태적인’ 행위를 통한 단절의 극복의지 혹은 타인 이해하기를 위한 현대인의 처절한 몸부림의 문학적 표현인
것이다.
문학작품의 가치판단의 관점에 대해 황현산 교수는 “사회적으로 익숙한 사고방식과 기존논리에 의존하여 일반적 통념을 반성 없이
되풀이함으로써 독자에게 영합하는 문학은 불성실한 문학이며, 인간의 내적·외적 생활에 있어 사회적으로 은폐되어 있거나 왜곡되어 있는 사실들을
들추어내어 문제를 제기하고, 그 해결책에 접근하기 위해 새로운 언술체계를 만들어내려는 문학은 성실한 문학이다.”고 정의했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하성란의 <곰팡이꽃>은 그래서 성실한 문학작품인 것이다. ‘곰팡이’라는 부패의 상징어와 ‘꽃’이라는 희망적이며 긍정적인 단어의
결합은 이질적인 느낌을 전달한다. 이 이질적 느낌의 곰팡이 꽃이라는 표제는 소설 전체의 내용을 포괄한다. 쓰레기를 뒤지는 변태적 행위를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인간적인 모습으로 그려냄은 곰팡이와 꽃의 합성어처럼 이채롭다. 이제는 결코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단절이라는 문제에 대한 대안
없는 상황에서의 변칙적인 접근은 진실이라는 결코 다다를 수 없는 목표를 찾아가는 도정과도 같이 느껴진다. 자기 자신에 관하여도 잘 모르는 세상
속에서 내가 아닌 남을 100% 이해하기 즉 절대적인 진실 찾기란 결국 ‘미션 임파서블’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과정이며, 타인을 이해하고자하는
의지의 문제인 것이다. 쓰레기통에서 썩고있는 진실을 어찌해볼 도리는 실제적으론 없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야기 속의 남자는 타인을 이해하려는
부단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은 변화된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쓰레기통에서 진실이 썩고 있을 땐 적당히 오해하고, 짐짓 모르는 체 살 필요도 있는 것이다. 이는 대(對)타인과의 타협점인
것이다. 타인을 알고자 하는 노력과 적당히 모르고 지나쳐야 하는 것들. 심지어 스스로를 속이는 현대인에게 순도 100% 진실은 애당초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 속에서 서로를 조금씩 속이고 속고 사는 것이다. 곰팡이 꽃이 진짜 꽃이 아니듯. 그런 의미에서 하성란의 <곰팡이꽃>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화구로 그려내는 현대인의 자화상(구체적으로는 정밀묘사)과 같은 작품이다.
/ 송명규(법학부·4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