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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학교에서 근무를 시작한 초기에는 ‘강의준비를 한다’, ‘ 연구실을 꾸민다’ 등으로 행정적인 업무에는 관여할 시간과 기회가
없다가 조금 여유를 가지게 되면서 입시업무에 관여하게 됐다. 우리 학교 교수님들과 임시 담당직원들과 함께 신입생모집에 관한 논의를 하면서
그전에는 심각하게 생각해 본적이 없는 대학입시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우리학교는 우수한 학생을 유치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내기 위하여 지난 몇 년
간의 입시결과를 분석했다.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아내 이 방안을 차기년도에 적용시켜 보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입시제도는 거의 2,
3년마다 바뀌어 왔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계속해서 바뀔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현실적이고 기술적인 학생유치방안을 작성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특차모집을 할 것인지? 특차모집을 한다면 그 비율은 어떻게 정할 것인지? 시험날짜는 언제로 할 것인지? 등의 매우 구체적인 작업을 해야 된다.
이러한 입시와 학생 유치방안에 관한 내용을 구상하고 입시업무에 관한 일을 하면서 느낀 것은 우리나라의 모든 대학이 “어떻게 하면 수능점수가
1점이라도 높은 학생을 유치할 수 있을까”에 골몰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유는 많은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입학생의 수능점수가 곧 그 대학의
수준이고 경쟁력이라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처럼 대학입시에 대한 내용이 떠들석하게 텔레비전이나 신문을 장식하는 나라도 많지 않을 것이다. 서울대를 비롯한 소위
명문대학의 수석합격자에 관한 기사가 사회면의 기사를 차지하고 어떻게 공부했는지 등 다른 나라에서는 전혀 중요한 내용이 아닌 것인데도
우리나라에서는 비중 있는 기사인 것이다. 누가 수석을 하던지 수석은 있게 마련이고, A라는 대학의 신입생이 B대학보다 수능점수가 조금
높다는 것은 그 두 대학 간에는 중요할지 모른다. 그러나 전체로 보면 전혀 발전이나 경쟁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기에 너무 많은 사회적인
관심과 에너지가 투입되고 있지 않은지,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을 높이는데 하나의 장애물은 아닌지 생각해 볼만하다.
이제 우리나라도 경제적인 면에서 규모와 질이 높아지고 넓어졌으니까 대학입시와 대학에 관한 사회의 인식도 높은 수준이 돼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대학입시가 아니라 대학교육 자체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더 필요하다는 말이다.
또 하나는 우리나라 고등학교의 교과내용과 이에 대한 인식의 문제이다. 우리나라 고등학교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지표는 대학입시에
어떤 문제가 나오는가다. 시험에 나오지 않으면 중요하지 않은 지식이 돼 버린다. 시험에 나오는 내용은 어떠한가? 시험만을 위한 교육이기 때문에
일단 시험이 끝나면 즉시 잊게 마련이다. 잊어버리는 것은 인간이면 어쩔 수 없는 생리적인 현상이지만, 12년 동안의 교육과정에서 배운 내용이
보통 시민의 일상생활에 적용도, 도움도 되지 않는 것 같아 보인다. 학생이나 선생님들도 마찬가지로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의
교육과정에서 배운 지식은 단지 대학 입학 시험지를 메우기 위한 지식이지 일상생활에서는 전혀 사용할 수 없는 죽은 지식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
또한 우리는 학교교육에서 배운 지식을 활용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아니 시험 보는 것을 제외하고는 활용해 본 적도 없다. 외국어는 시험을 잘
치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외국인과 대화를 하거나 외국 서적을 읽기 위한 것이다. 국어는 수필이나 시 또는 편지를 좀 더 잘 쓰거나 자기의
주장이나 의견을 보다 정확하고 간결하게 전달하기 위한 것이다. 수학과 과학은 논리적인 사고를 위한 것인데, 이들 과목이 정말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에 도움을 줬는가?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은 회의적이다.
이런 교과내용을 공부하기 위해 대부분의 수험생은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학교와 학원을 왔다 갔다 하면서 기력과 체력을
소모한다. 이들은 대학에 들어온 이후에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지쳐서 공부에는 신물이 난다고 이야기한다. 이럴 바에는 학교에서는 체육, 음악,
미술, 그리고 예절을 중점적으로 가르쳐서 기초체력과 감수성을 기르는 것이 국가 경쟁력을 높이고 좀 더 맑고 밝은 사회를 만드는 좋은 방안은
아닐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