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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의 인문학] 일반인이 사용하기까지 2천여년이 걸린 색, 보라 1g 염료 위해선 1만2천마리의 고둥과 달팽이 필요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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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10.09  07:4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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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헌신, 신비와 마법의 색이며 초현실 느낌 자아내
클레오파트라가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 유혹한 색이기도

   
▲ 사진 설명. 복족류란 고둥류라고도 일컬어지며 이 가운데 몇몇 종류는 보라색 염료의 원료가 되는 분비선과 점액을 배출한다. 사진은 고대에 고둥에서 채취한 점액으로 만든 보라색 천과 해당 고둥을 전시한 모습. (이미지 출처: 네이버)

이번엔 보라색이다. 무지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동시에 파장이 가장 짧아 인류가 가시광선 가운데에서 최후로 볼 수 있는 색깔인 보라는 평화와 헌신, 신비와 마법을 상징한 까닭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귀한 색깔로 여겨져 왔다. 실제로도 보라색은 정신을 고양하고 신경을 차분하게 안정시키는 데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보라는 감수성을 높이고 상상력과 창의성도 길러주는 색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다. 「색깔의 인문학」 저자인 개빈 애번스에 따르면 보라색은 더 높은 자아와 우주 전체가 조화를 이루도록 도와주는 우주적 차원의 초현실주의 색채이다. 그래서일까? 신비로운 데다 제조 비용마저 천문학적으로 비쌌기에 왕실과 최상위 계층에서만 사용됐던 보라색이 일반인들에게 허용되기까지는 무려 2천여년의 세월이 걸렸다.

사전을 찾아보니 우리말 ‘보라’는 몽고어에서 유래한 귀화어인 까닭에 유래를 알 수가 없다. 때문에 ‘빨강,’ ‘파랑,’ ‘노랑,’ ‘하양,’ ‘검정’과 달리 ‘보랗다,’ ‘보란,’ ‘보랗게’ 등과 같은 활용이 불가능하단다. 「한자어원사전」을 찾아보아도 사정은 비슷하다. 가는 실 ‘糸’(멱)이 의미부이고 이 ‘此’(차)가 소리부로, 자주색 비단을 일컫는다는 설명만 있을 뿐, 이 글자가 어떻게 해서 형성됐는지에 대한 추가 설명은 없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대표적 포털 사이트인 ‘야후 재팬’을 찾아보니 일본어로 ‘보라’는 뜻하는 ‘무라사키’는 원래, ‘자초’(紫草)라 불리는 식물의 일본식 이름이라고 한다. 이 식물의 뿌리를 보라색 염료로 사용했기에 여기에서 나온 색의 이름을 ‘무라사키’라 부르게 됐다. 하지만, 일본 역시 ‘무라사키’의 어원에 대해서는 더 이상 알려진 것이 없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한자권의 동아시아 3국 모두에서 보라색의 어원이 오리무중(五里霧中)인 셈이다. 마치 보라색에 기품과 신비를 더하기 위한 사전 조율이 이뤄졌다고나 할까?

반면, 보라색에 대한 서양의 어원은 동양보다 훨씬 뚜렷하다. 서구에서 보라색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 명칭으로 불리는데 첫 번째가 ‘퍼플’(purple), 두 번째가 ‘바이올렛’(violet)이다. 먼저 ‘퍼플’은 그리스어 ‘포르퓨라’(porphura)에서 유래했는데 ‘포르퓨라’는 바다 달팽이인 ‘몰로스크스’의 그리스식 이름이다. 참고로 ‘몰로스크스’는 미술 전문인들에게 붉은색 빛이 도는 보라로 알려진 퍼플의 주산물이다.

지중해에 서식하는 ‘몰로스크스’는 보라색 염료를 산출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고대부터 집중적인 채집의 대상이 돼 왔다. 물론, ‘몰로스크스’만이 보라색 염료를 생산할 수 있는 생물은 아니었다. ‘몰로스크스’ 이외에도 ‘타이스 헤마스토스’나 ‘뮤렉스’라는 뿔고둥 등 몇몇 연체동물들의 점액이 보라색을 만드는데 이용되었다. 물론, 더욱 잘 팔리는 색을 만들기 위해 이들 점액 간의 혼합도 이뤄졌다. 그리하여 보라색 염료를 위해 채집된 달팽이와 고둥들은 소아시아인 레바논에서 집중적으로 거래됐으며 이곳의 ‘티레’라는 지역명을 따 그 염료는 ‘티리안 퍼플’로 불리어 왔다. 물론, ‘티리안 퍼플’은 그 희소성으로 인해 가격도 대단히 비쌌으며 제조 과정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다. 1g의 보라색 염료를 얻기 위해서는 약 1만2천여개의 달팽이와 고둥들이 필요했다. 금과 같은 무게 가치로 보라색 염료가 거래된 이유다. 그리하여 이들에 대한 채취가 집중으로 이뤄졌던 해안에서는 고대에 채집했던 고둥과 소라, 달팽이 껍질들이 지금도 발견된다니 얼마나 많은 연체동물들이 인간의 욕망을 위해 희생됐는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어쨌거나 고둥류로부터 채취한 점액은 발효시켜야 색이 깊어지는 까닭에 열흘 이상 묵혀둔 오줌과 섞었다. 때문에 ‘티리안 퍼플’을 만드는 과정에서의 악취는 혀를 내두르게 했다.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진 ‘티리안 퍼플’은 좀처럼 색이 바래지 않았으며 오히려 풍화작용과 햇빛으로 더욱 은은하고 고귀한 색으로 왕실과 지도층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그런 ‘티리안 퍼플’에 색으로서는 가장 높은 지위를 부여한 이들이 로마인들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티리안 퍼플’을 로마에 소개한 이는 율리우스 카이사르다. 기원전 48년, 숙적 폼페이우스를 무찌르고 이집트를 방문한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커튼과 소파 등 온통 보라색으로 꾸며진 클레오파트라의 방에서 그녀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이후, 로마로 돌아온 카이사르는 앞으로 보라색이 황제에게만 허용될 것이라고 선포했다. 이전까지는 부유한 시민들도 보라색 옷을 입을 수 있었지만, 이젠 로마 제국의 황제만 입을 수 있도록 법을 바꾼 것이다. 당시의 로마는 아직 공화정이었지만 민중들은 로마의 국력을 최고로 드높인 카이사르를 초대 황제로 등극시키려 했다. 그런 까닭에 카이사르의 보라색 착용법은 결국, 황제가 될 자신만 보라색 옷을 입을 수 있다는 의미였다. 물론, 그가 믿던 양아들 브루투스에게 암살됨으로써 보라색 옷을 단독으로 입고자 했던 그의 꿈은 무산됐지만.

그럼, 다음 시간에는 로마에 얽힌 보라색에 대해 마저 알아본 다음, 보라색에 얽힌 심리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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