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름만으로 설레이는 ‘여행’

  작년 7월에 제대한 이후, 자리를 못잡고 갈팡질팡하며 허송세월을 보내던 나는 9월말에 학업의 정진을 위해 ‘영국’ 이라는 땅을 밟게 되었다. 96년도에 유럽배낭여행을 통해서 이미 한 번 방문한 바가 있어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 않을거라 생각했었지만 막상 도착하고 보니 모든 것이 새롭게만 느껴졌다. 공항에서 만나는 사람부터 집, 학교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들이 영국인이라 약간의 두려움마저 생기기 시작했다. 2-3주 정도 지나고 나니 차츰 여유도 생기고 학교에서 친구들도 사귀게 되었다. 물론 집주인 아저씨와도 친해지기 시작했다.

  영국 생활에서 가장 인상깊은 모습은 ‘교통질서’였다. 영국은 무조건 사람 우선이라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선 사람이 한명이라도 서 있으면 차들은 서주곤 한다. 횡단보도를 건너더라도 이리저리 차들 눈치보며 건너야 하는 우리나라의 사정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신호등 지키기는 정확하다 못해 때로는 답답함마저 느껴질 정도다. 영국인들은 한밤중에도 빨간불이 켜져 있으면 신호를 시키곤 한다.

  하지만 영국이 그리 살기 좋은 나라는 아닌 것 같다. 가장 큰 불만 중에 하나는 바로 ‘날씨’다. 일주일에 2-3번은 꼭 비가 오고 (물론 내가 도착한 시기가 가을, 겨울인 탓도 있다. 영국은 이때가 가장 궂은 날이 많다.) 하루에 3-4번씩 변화무쌍하다. 날씨에 따라 기분이 좌지우지되는 사람에겐 잘 맞지 않을 듯 하다.

  다음으로 맘에 안 들었던 건 바로 음식. 프랑스의 칠면조 요리나 이탈리아의 파스타, 피자등은 무척 유명하다. 하지만 영국 레스토랑은 아마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영국 바로 옆에 있는 프랑스에서조차,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프랑스 지점 영국 레스토랑이 재정파탄으로 인해 문을 닫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영국사람들조차 자기네 음식을rubbish(쓰레기, 찌꺼기)라고 표현하곤 한다. 특히 밥 하나를 시키면 다양한 반찬을 곁들여 먹는 ‘반찬문화’를 가진 우리나라 사람들이 적응하기엔 보통 힘든일이 아니다. 생선튀김과 감자튀김(일명 fish & chips) 햄버거, 피자…. 이런 것만 먹으며 버텨야 한다.

  내가 살던 집은 (다른나라 사람들이 하숙하는 걸 받아주는 집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알겠지만, 그리 잘 사는 집은 아니었다.) 아이를 무려 4명이나 키우는 집안이었는데 부부가 맞벌이를 했다. 거기서 놀랐던 점은, 그 집에선 저녁식사조차 인스턴트로 해결했다. 나는 물론이거니와 그 집 아저씨, 아줌마 심지어는 아이들까지…. 학교에서 돌아오거나 일을 끝내고 돌아오면 모두들 전자렌지에 음식을 넣고 ‘땡’소리가 나면 꺼내 먹는다. 정말이지 날씨와 음식을 생각하면 다시는 가고 싶지 않기도 하다.

  그러나 도시를 보면 나라 경제에 30%를 관광산업으로 먹고사는 나라답게 관광시설이 무척 돼 있다. 얼마전부터 한국 박물관이 새로 개장된 ‘대영 박물관(BRITISHMUSEUM)’ , ‘NATIONAL GALLERY’ , ‘LONDON BRIDGE’ , ‘마담터소 박물관’ 등등…. 그리고 영국의 산물인 2층 버스는 빼놓을 수 없는 도로의 구경거리로 각광받고 있다.

  내가 쓴 글에서 영국에 대한 긍정적 요소보다는 부정적인 요소를 더 많이 담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부정적인 요소들은 거의 내가 느끼고 생각했던 부분이라 각자가 판단하기 나름이라 생각한다. 내가 영국에서 만났던 친구들 중 몇몇은, 귀국하고도 그 때의 생활들을 잊지 못해 다시 방문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배낭여행도 좋고 어학연수도 좋다. 서유럽, 특히 영국은 날씨가 좋은 7-9월이 가장 돌아보기는 좋다. 하지만 촉촉히 내리는 비를 맞으며 운치를 즐겨보는 것, 그리고 여행을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정말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