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의 문화를 살펴보면 당시의 전반적인 사회 흐름들을 한 번에 읽어낼 수 있다. 문화는 사회구성원들에 의해 직접 형성되고 시대의 분위기를 가장 잘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2001년 올 한해 우리 문화계는 어떠했을까? 잠깐 떠오르는 일들만 생각해봐도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했다기보다 오히려 후퇴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올 한해를 영화계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것은 역시 ‘조직폭력배(이하 조폭)’라는 단어이다. 조폭이라는 소재로 『친구』, 『조폭마누라』 등의 영화가 흥행을 일으키고 영화계에서는 잇따라 조폭영화가 개봉되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해서 많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흥행 행진은 막을 수 없을 듯하다. 또한 2000년도를 장식했던 ‘엽기’의 유행은 계속됐고 여기에 조폭의 폭력성과 난잡성이 가세해 영화판을 휩쓸었다.

  이렇다 보니 한국영화계의 발전은 상업성에선 큰 점수를 땄지만 작품성에 있어서는 오히려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작품성을 지닌 다수의 독립영화들이 개봉했음에도 불구하고 거대 자본이 투입된 상업영화들 틈 속에서 관객들의 관심을 끌기 어려웠고 부진한 흥행에 금새 간판을 내려야 했다.

  영화계에 ‘조폭’들이 난무했다면 TV드라마에서는 사극열풍이 끊이지 않았다. 시청자들이 남녀 주인공의 삼각관계를 다루는 트렌디 드라마의 진부한 스토리에 질려있기에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엮어나가는 사극이 주목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뭐든지 지나치면 좋지 않은 법, 넘쳐나는 사극에 대한 문제제기도 많다.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극적인 내용에만 치중하고 진실을 왜곡하기 쉬운 허구의 인물들의 등장을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TV사극은 이러한 문제점들을 보완하고 참신한 소재 발굴과 함께 올바른 역사전달에도 비중을 두고 제작해 나가야 한다.

  우리나라 연예인들의 사생활 침해 문제는 언제나 문제시 돼왔다. 하지만 올해 스포츠 신문 등의 연예전문지에서 보여준 여자 연예인들의 관한 보도는 사생활 침해를 넘어서 인권 침해의 수준에 달했다. 추측에 의한 각종 의혹기사들을 여과없이 보도하고 여자연예인들의 성적 수치심을 자극하는 내용를 무분별하게 기사화 하고 있다. 그리고 이 사실을 공인이라는 이유로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일로 치부해 버린다. 이렇게 관습화 되어버린 문제의 심각성에 독자들과 시민단체들이 일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그 전에 스포츠 언론계의 자발적인 반성과 변화가 촉구돼야 한다고 본다.

  정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대중음악 가요계는 그 문제가 심각한 만큼 시민들과 음악계 주체들의 개혁 움직임이 활발해 그 효과를 많이 보고 있다. 우선 각 대중음악 개혁을 위한 시민연대(이하 대개련)에서 벌인 가요순위프로그램 폐지운동은 여론조성에 성공해 끝내 KBS의 『뮤직뱅크』는 가요순위제를 폐지했고, MBC의 『음악캠프』는 립싱크 근절과 순위선정의 외부기관의뢰라는 성과를 얻어냈다. 이 외에도 가요계에서는 연예인제작자협회와 MBC보도국과의 관계에서 일어난 MBC 출연거부사건을 통해 대중음악계의 뿌리깊은 불공정 거래와 각종 방송사와 특정가수들간의 결탁관계의 불투명성 등 많은 문제점들이 드러나기도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해결을 위해 공청회나 토론회 등을 통한 논의의 장이 마련돼 대중음악 개혁에 많은 힘이 모아지고 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

  가요계에서 또 하나의 이슈가 됐던 것은 음치가수의 출현이었을 것이다. 노래를 잘해야만 가수가 된다는 불문율을 깨고 세간의 관심을 받으며 데뷔한 이재수는 곧이어 서태지와 저작권 문제로 인해 법적 공방에 휘말리게 된다. 이른바 ‘문화대통령’이라고 불리는 서태지가 패러디를 이해하지 못한 채 너무 강경하게 나오는 것인지, 원저작자의 허락 없이 상업적 목적을 위해 원곡을 수준낮은 패러디로 바꿔버린 이재수측의 잘못인지에 대해서 떠들썩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선 제대로 된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채 가수가 노래의 주인이 되지 못하는 근본적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약해 아쉬움을 남겼다.

  인터넷상에서는 김인규 교사가 자신과 임신한 부인의 나체사진을 자신의 인터넷사이트에 올린 것이 문제가 돼 인터넷상에서의 예술적 표현의 자유와 청소년보호라는 논리가 팽팽히 맞서게 됐다. 이후 11월1일부터는 인터넷 등급제의 시행으로 인해 더욱 큰 논란이 되고 있다.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명분아래 자행되고 있는 정부의 무자비한 통제와 검열은 정보사회에 맞지 않는 옷이라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이 밖에도 플래시 캐릭터들의 인기로 인한 캐릭터 산업의 활성화와 고가의 명품사기 유행으로 인한 명품족들의 탄생이 우리 문화의 한 단면으로 자리잡고 있다. 전체적으로 올 한해 문화계는 가요계의 개혁운동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후퇴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문화수용에 있어서도 사회구성원들이 매체나 여론에 의해 만들어진 문화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짙게 나타났다.

  올해 문화계에서 나타난 문제점들은 더 바람직한 문화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과도기적 과정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앞으로 발전하는 문화를 형성해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사회구성원들의 문제에 대한 인식과 바꿔나가려는 개혁운동 실천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 최진영 기자 wlsdud821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