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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별짓기 사회학의 부르디외(Pierre Bourdieu)가 지난 1월 23일 우리를 떠났다. 71살, 1968년
유럽사회학연구센터를 만들어 소장 학자들과 공동연구를 시작한 지 35여 년만의 일이다. 아비투스(Habitus)같은 낯선 개념을 통해 그는 무엇을
말하려고 했을까? ‘행동하는 이성’으로 불리는 그는 어떤 사람일까? 생전에 자유로운 토론을 즐겼던 그의 방식대로 한 대학생 Y와 부르디외(B)의
가상 대화를 통해 이 물음의 답을 구해보겠다. 대화 내용은 부르디외의 논문과 강의, 그리고 기사 등을 기초로 해서 구성한 것이다.
Y : 안녕하세요 선생님. 2000년 9월에 ‘서울국제문학포럼’에서 주제 발표하시는걸 보기는 했는데 이렇게 직접 만나는 건 처음이네요.
그때 선생님이 세계화를 비판하면서 “세계화는 경제체제를 지배하는 사람들이 세계를 무제한적으로 지배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이
기억나는군요.
B :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지배적 강대국의 세계 정책으로 제3세계 국가의 모든 것들이 위협을 받고 있어요. 그들이 퍼뜨리는
신자유주의 속에는 강한 폭력이 도사리고 있고, 자신들의 횡포에 의한 부작용에 대해서는 매우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고 있어요. 부시의 ‘악의 축’
발언도 마찬가집니다. 그의 말에는 미국의 세계 지배를 정당화하려는 의도가 담겨있어요. 미국은 자신들의 폭력을 ‘반 테러 전쟁’으로 포장하고
있지만 사실은 무고한 시민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살상을 정당화함으로서 인류 문명을 파멸로 몰아가고 있는 거예요.
Y : 진짜 악의 축은 미국을 포함한 지배적 강대국들이 될 수 있다는 말씀이군요. 그렇다면 미국이 공개적으로 한반도의 위기 상황을
조성하고있는 있는 지금 한국의 지식인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B : 한국사회를 깊이 알고 있지 못해서 대답하기 조금 부담스럽네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한국의 지식인들이 부시 정권의 강경한 한반도
정책에 대해 분명한 반대의 뜻을 전달해야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지식인들이 보수적 상업 언론의 눈치를 보면서 애매모호한 의견들을
만들어내고 있는데 그들은 자신의 계급적 위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참 지식인은 긍정적인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의견을
발표해야 합니다. 지식인은 대리인에만 만족해서는 안 되요, 주체적으로 정치적 상징을 생산해 내야합니다. 제가 1991년에 여러 교수들과 함께
이라크전쟁 반대 성명을 냈던 일과 1995년에 철도 노동자 파업을 지지했던 것을 참고를 해 주세요. 남미, 아시아, 유럽 등에서 전개되어온
저항적 정치 운동들도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Y : 지식인들이 자신의 계급적 위치를 냉철하게 판단하고, 분명한 정치적 목소리를 내야한다는 말씀이군요. 그런데 지금의 지식인들은
정치보다는 문화에 관심이 더 있는 거 같아요. 대학생들은 더 그렇고요.
B : 당신도 정치와 문화가 서로 관계 없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나요? 그렇다면 매우 어리석은 사람이군요. 문화는 다른 무엇보다도 더 정치
관계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어요. 내가 말한 아비투스란 사람들이 저마다 갖고 있는 특정한 성향의 무의식적 구조를 뜻하는 말인데요, 별거 아닌
것으로 여겨지는 문화적 취향이 사실은 사회 구조 내에서 개인이 차지하는 계급적 위치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정치에
냉소적이며 문화적 활동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정치 영역에 더 깊이 들어가 있는 셈이죠. 내가 계속해서 문화적 자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Y : 그런데 문화적 자본은 경제적 자본에 비해 더 쉽게 얻을 수 있고 원하는 데로 사용할 수 있지 않나요? 나는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고
원하는 음악과 공연을 즐길 수 있어요.
B :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에요. 『구별짓기』(1979)에서 밝힌 것처럼 음악과 공연의 종류를 포함해서 그것을 즐기는 ‘방식’까지도 모두
한 사람의 계급적 위치를 말해주는 코드예요. 옷을 입고 식사를 하는 방식도 문화적 자본의 영역에 속한다고 할 수 있죠.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예식을 모든 계층이 다 향유할 수는 없지요. 상층 계급들은 자신들만의 문화 양식을 생산하고 차별화해서 다른 계급과 구별짓기를 시도하고,
그것에 소외된 계급들은 그 차이를 극복하려고 하지만 계속 한계에 부딪치죠. 학력, 성 모두 같은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어요. 우리는 쉽게 규정할
수 없는 다양한 문화적 상징들이 투쟁하는 영역에도 주목해야만 합니다.
Y : 요즘같이 대중화된 시대에 그런 것이 있을 수 있나요? 신문의 여론조사 기사를 보세요. 연령하고 성별만 비슷하면 문화적 취향도 거의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어요. 아무리 다양해도 다 한 울타리 안에 있기 마련 아닙니까?
B : 당신은 내가 『사회학의 문제들』(1980)에서 “여론은 없다”라고 말한것을 기억하죠? 대부분의 여론조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의도적으로
가공된 거예요. 조사하는 사람은 질문을 할 때도 모든 사람이 제한된 보기 안에서 대답하길 기대하고, 여러 가지 성격의 대답도 정해진 테두리
안에서 억지로 해석해 버리죠. 이런 방법은 절대 과학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나는 문헌적·통계적 자료 수집, 인류학적 관찰과 인터뷰,
설문조사 등의 방법을 적절하게 그리고 조화롭게 사용하는 방법을 제안했습니다. 『구별짓기』와 『세계의 비참』(1993)을 참고해 주세요.
Y : 여론조사를 하기 위해서는 과학적 치밀함이 꼭 필요하겠군요. 끝으로 앞으로의 연구 계획에 대해 궁금합니다. 요즘 건강이 좋지 않다고
하던데….
B : 1968년의 혁명 때부터 줄곧 많은 강연을 했고 그보다 더 많은 연구를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학문의 장에서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지만 제도의 장에서는 이룬 것이 별로 없어요. 제도적 장에서의 변화를 위해 세계에 호소하는 일을 죽기 전까지 계속 하고 싶습니다. 사실
2년 전 한국에 왔을 때 암이 발병된 상태였는데 그 포럼에 참여하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정을 강행했어요. 앞으로도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할겁니다.
/ 원충연(춘천시민연대 지역사회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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