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여길 어떻게…… ?” “정말 오랜만입니다” 나는 새로 들어온 옷을 진열하기 위해 옷걸이에 걸어 놓으려다 박대두가 불쑥 가게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놀라 하던 일손을 멈췄다.

그가 내 가게를 찾아 온 것은 정말 뜻밖의 일이었다. 엊그제 그가 어떻게 내가 하는 가게의 전화 번호를 알아내었는지 이 년 만 에 전화를 해 와 한번 오겠다고 했을 때까지 나는 그가 나에 대한 미안한 생각에 그냥 의례적인 인사로 하는 말인 줄 알았다. 그러나 갑작스런 그의 방문으로 이 같은 나의 생각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의 이 년에 가까운 공백 기간은 당초 내가 그와 마지막으로 헤어질 때 했던 굳은 결심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또 다시 그에게 일말의 기대를 갖는 부끄러운 속내를 드러내고야 말았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군대에서 부대를 배치 받고 온지 일년쯤 된 추운 겨울이었다. 아침부터 잔뜩 찌푸렸던 하늘은 점심을 먹고 근무지인 참모부 사무실로 들어서자 드디어 희끗희끗 눈발을 휘 뿌리기 시작했다.

“씨발 오늘은 눈이 또 얼마나 오려고 아침부터 계속 날씨가 이 지랄이야”

제대를 한 달여 남겨 놓은 군수과 김 병장의 푸념 섞인 소리에 작전 과장인 김 대위가 지시한 훈련용 교안을 손보느라 정신이 없던 나는 무심코 고개를 들어 창 쪽을 바라다보았다. 어두침침한 하늘에서 쏟아지기 시작한 눈은 어느새 폭설로 변해 연병장을 하얗게 덮고도 여간해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오늘도 오후 교육은 전부 취소가 되고 각 중대원 들은 전부 나와 제설 작업에 또 매달려야 할 판이었다. 벌써 10 중대 막사 앞에는 눈 치울 삽과 비를 들고 각 소대에서 차출되어 나온 사병들이 중대 선임 하사의 지시를 받기 위해 한둘 씩 모여들고 있었다. 강원도 전방인 이곳은 한번 눈이 내리면 이삼 일씩 계속 그치지 않고 내리곤 해 겨울엔 전 부대 원들이 동원되어 며칠씩 제설 작업에 매달리는 일이 반복되곤 했다.

“갑자기 웬 눈이 이렇게 쏟아지나? 조금만 늦었더라면 오늘 못 들어 올 뻔했잖아”

새로 훈련을 마치고 막 부대로 배속된 신병 다섯 명을 연대에서 인수받아 들어온 인사병 강일중 상병의 모자와 군복에 쌓인 하얀 눈은 실내에 들어서자마자 대형 연탄 난로의 훈훈한 온기에 녹아 곧 군복을 짙은 녹색으로 물들이기 시작했다.

“우리 본부엔 몇이나 있어?”

외출을 하기 위해 앉아 워커를 닦다 눈이 많이 내리자 워커 닦기를 포기한 김 병장이 구두를 한쪽으로 밀어 놓은 채 심드렁히 말했다.

“한 명입니다”

“우리 군수과 신병이겠지?”

“예. 그렇긴 한데, 주특기가 군수가 아닌 정보를 받았습니다”

“정보과엔 티오가 다 찾는데, 뭘…… 내가 이따가 박 중위 들어오면 다시 한번 얘길 할 테니 우리 군수과로 빼 줘야 해”

“예. 그렇게 하시죠. 어차피 김 병장님 이야 한달 후 엔 제대니까 급하긴 하죠”

“누구지?”

“예. 이 친굽니다”

“옛! 이병 박. 대. 두!”

강일중 상병이 손을 들어 부동자세로 잔뜩 긴장해 있는 신병들 가운데 한 명을 가리키자 왜소한 키에 비해 유난스레 큰 군복을 입고 있던 사병 하나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선 채 가래가 그렁그렁 한 듯한 탁한 목소리로 관등성명을 복창했다. 듣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 신경이 거슬릴 수도 있는 좀 특이한 음성이었다.

“대두…? 머리가 커서 그런 게 아니고?”

“머리크기하고 목소리하곤 무슨 상관 있겠습니까?”

“어쭈, 씹새끼. 이병 쫄따구 자식이 기합은 빠져가지고…”

순간 나는 제대를 앞 둔, 시간이 남아돌아 하루에 한번 씩 외출해 부대 앞 수정다방의 미스 김에게 가기 위해 매일 같이 워커에 광을 내 닦고 있는 무료한 고참 병사와 하룻강아지 같이 아무 것도 모르는 당돌한 신병간의 벌어지는 묘한 상황을 관심을 갖고 지켜보기 시작했다. 이것이 나와 박대두와의 첫 만남이었다.

“하긴, 네 목소리하고 군수 업무하고 무슨 상관이 있겠냐. 당장 군용창고에 가 맞는 옷으로 갈아입도록 해. 그 곳이 앞으로 삼 년 간 너의 천국이자 지옥이 될 테이니깐 말야”

그 후 박대두가 군수과로 배치 받고 난 후 매주 일요일 아침이 되면 내무반에서 신병인 그의 모습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쫄다구 새끼가 군기가 빠져 가지고…”

일요일 아침마다 상급부대인 연대내 교회로 예배보러 빠져나가는 박대두에게 군수과 고참이자 나의 동기인 이치성 일병이 조금씩 불만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일요일이라 다른 병사들은 쉬어도 언제 상급 부대에서 불쑥 군수품 검열이라도 나올지 몰라 항상 현황 파악에 신경을 써야 하는 이치성 일병이었다. 곧 제대를 앞두고 일 손을 놓다시피 한 김 병장 대신 군수 과장도 모든 업무지시는 이치성 일병에게 직접 내렸다. 사수인 김 병장이 제대를 하면 바로 모든 업무는 이치성 일병이 맡게되고 박대두는 그의 조수가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새로 온 군수과 신병인 박대두가 잘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자 이치성 일병은 시간이 날 때마다 그 답답한 마음을 나에게 토로하곤 했다. 가끔씩 그는 일탈적인 행동들로 이 일병이나 고참들에게 호되게 당하기도 하지만 도무지 그의 돌출된 행태는 전혀 고쳐지질 않았다. 아니 더욱 심각한 것은 본인 자신이 그러한 것들이 문제가 된다는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예를 들어 점호시간이 가까이 되면 창고정리 하러 간다고 나가 점호가 끝나 취침시간이 되어 병사들이 잠자리에 들면 그때서야 돌아오곤 했다. 그럴 때 그의 모습이란 노동으로 하루를 마친 피로에 쌓인 노무자의 모습 그대로였다. 과연 그가 그 시간에 군수 창고 안에서 얼마나 쉬지 않고 일을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이런 모습을 보고 난 고참들은 쫄다구가 겁 대가리 없이 점호시간에 빠져나간다고 독기를 품다가도 막상 그가 이런 후즐그레 한 모습으로 돌아오면 더 이상 아무 말들이 없었다.

이런 박대두 자신은 적당한 눈치와 시의 적절한 기회를 알지 못해 좌충우돌 하긴 하지만 자기 자신만큼은 누구보다 열심히 부대끼며 살고 있다는 것을 전혀 의심치 않는 눈치였다. 그것은 그가 교회에 예배 보러 갔다 온 어느 날 왼쪽 계급장 위에 달고 온 군종사병 마크로 확인이 되는 듯 했다. 대대본부의 군종사병이 된 후 중대 내에선 그가 매주 일요일이면 교회에 가는 걸 곱게 보지 않거나 그의 행동에 색안경을 쓰고 보는 사람들이 더 이상 없게 된 것이다.

“난 이제 그 애 한테 두 손, 두 발 다 들었어”

내무반 앞에서 중대원들의 장비를 꺼내 점검을 하던 이치성 일병이 내무반으로 철모를 가지러 가던 나를 보자 말을 붙여 왔다. 새것으로 교환하기 위해 중대원들이 꺼내놓은 낡은 장비들을 판초의 위에 엄청나게 쌓아 놓은 채 이치성 일병 혼자 훼손 여부를 파악하느라 쩔쩔매고 있었다. 박대두는 어딜 갔는지 아마 이치성 일병 혼자 일을 마치려면 국기 하강식 할 때까지도 쉬 끝날 것 같지가 않았다.

“어디서 저런 괴물딱지같은게 들어 왔는지 몰라”

나는 이 일병의 계속되는 말꼬리를 끊기가 어려워 내무반에 들어가기를 포기하고 잠시 계속 멈춰선 채로 있어야 했다.

“그간 조용히 불러다 좋은 말로 타이르기도 하고 바로 위의 사수로서 엄하게 다뤄 보기도 했지만 그 애한테는 도무지 먹혀들지가 않아”

더구나 이치성 일병이 들은 얘기로는 군종사병이 된 후엔 사병들을 인솔해 교회에 가긴 하는데 예배가 시작되면 슬그머니 사라졌다가 끝날 때쯤에 돌아온다는 것이다. 나는 이 일병이 하는 얘기를 듣고 오죽 답답하고 속이 상하면 저럴까 하고 같은 동기로서 연민의 정을 느끼긴 했지만 내 일 때문에 곧 한쪽으로 흘려 버려야 했다.

내 위의 사수인 유홍수 상병이 뜻하지 않게 상급부대로 전출되어 가는 바람에 나는 곧 상병으로 진급 될 일병 말년이긴 해도 갑작스런 그 업무공백을 메우느라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그 얼마 후 이 일병이 시간만 나면 푸념하던 일들이 사실일 지도 모른다고 아니 이 일병이 그간 왜 틈만 나면 박대두를 더구나 자기의 하나밖에 없는 조수를 그토록 미워하며 투정을 부려야 하는가에 대한 이유들이 선명한 해답이 되어 나타났다.

그러니까 대대훈련인가를 마치고 자대로 돌아오던 날 하필 공교롭게도 그 날 밤에 상황근무에 걸려 참모부 사무실에서 혼자 당직을 서고 있던 나는 잠을 못 자 핏발 선 눈을 연신 비비며 쏟아지는 잠과 힘겨운 씨름을 하고 있었다. 눈꺼풀을 덮어오는 잠도 잠이었지만 연대에 훈련 상황종료 보고를 하느라 채 저녁식사를 걸러서 인지 계속 속이 쓰리고 아파 왔다. 그때 참모부 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에 깜짝 놀란 나는 퍼덕 졸음에서 깨어나 시선을 소리가 나는 문 쪽으로 돌렸다. 상황이 종료되고 자대 까지 백 킬로미터 행군으로 걸어와 모두가 피곤에 지쳐 잠에 곯아떨어진 상태라 그 시간에 참모부에 들어올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문 앞에는 군수과 신병인 박대두가 버티고 서 있었다.

“아니, 박 이병이 이 시간에 잠 안자고 웬일이야?”

나는 뜻하지 않은 박대두 이병의 방문을 받고 놀라 물었다.

“최 일병님, 라면 안 드시겠습니까?”

“이 늦은 밤에 웬 라면?”

나는 의아한 생각이 나 물었다.

“창고에 준비했으니 저하고 함께 가시죠”

“상황근무는 어떡하고?”

“아, 이 시간에 뭐 별일 있겠어요. 자, 라면 다 불기 전에 빨리 일어나요”

나는 박대두의 재차 권유에 엉거주춤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고 말았다. 부끄럽게도 배가 고파서 속이 아픈 것보다는 혹 상급부대에서 내려올지 모르는 긴급한 비상 연락이 문제였지만 이상스레 이 시간에 무슨 일이 있겠냐는 박대두의 한마디에 정말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는 안도감이 먼저 와 닿았던 것이다. 나는 문을 열고 박대두를 따라 나섰다. 군용창고는 참모부 건물에서 이십여 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었지만 그 위에 통신병들이 근무하는 교환대가 있어 별도 경계 근무 자는 없었다.

“아, 잠깐만요”

박대두는 다시 돌아서 우리가 나온 참모부 문을 열고 들어가더니 잠시 후에 술 한 병을 들고 나타났다.

“아니, 웬 술이야. 술이 어디서 났어?”

“최 일병님을 모시는데 술이 없어서야 되겠습니까”

박 이병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보안검열이 철저한 참모부 안에 술이 있을 곳이라곤 대대장 당번실 밖에 없었다. 그곳은 담배를 피우지 않는 대대장을 위해 늘 간식 거리와 유독 술을 좋아하는 당번병인 유일두 병장이 대대장을 구실 삼아 자신이 마시기 위해 주임상사로부터 얻어 온 소주가 박스 째 쌓여 있었다. 나는 가끔 내무반 회식을 하다 술이 모자라면 유 병장이 키를 줘 심부름으로 몇 번이나 그곳에서 술을 꺼내 온 적이 있었다. 그곳은 대대장실 하고도 통하는 문이 있어 일과가 끝나면 유 병장은 늘 열쇠로 문을 꼭 잠가 놓고 들어갔다.

나는 혹시 아침이라도 시끄러운 일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염려스러워 당번실에서 가져온 게 아니냐고 재차 확인하려고 했지만 박대두는 긍정도 부정도 않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태도로 미루어 볼 때 그 동안 그가 필요한 물건들을 당번실에서 꺼내온 게 이번 한번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자물쇠를 열고 들어 간 것일까. 그리고 내 추측이 정말 사실이라면 그 깐깐한 유일두 병장은 당번실 자기 영역 내에 누가 침입한 흔적을 그렇게 정말 까맣게 몰랐을까. 또 당번실에 들어가기 위해 필히 거쳐야 할 참모부 내에서 밤새 상황을 보고 있던 고참 근무자 들은 어떻게 처리를 했을까. 나의 이런 궁금증은 박대두를 따라 창고 안에 들어서면서 언제 그랬냐 싶게 곧 깨끗이 사라지고 말았다. 창고 안 그가 준비한 냄비 속에는 놀랍게도 라면이 아닌 고기가 낡은 전기곤로 위에서 뚜껑을 들썩이며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아니, 이건 개고기가 아닌감?"

“아니, 어떻게 잘 아시네요. 예. 개고깁니다”

“이걸 어디서 구했어?”

“제가 어려서 우리 어머니가 제 몸이 약하다고 개를 몇 번 잡아 먹였습니다. 물론 그 중엔 이웃집 개도 있었죠. 저는 그 개를 광 안에 가두었다가 밤이 되자 아버지와 어머니가 뒤꼍에서 잡는 것을 똑똑히 봤습니다. 저는 개가 그렇게 명이 긴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전선줄로 목을 감아 나무에 매달았는데도 쉽게 죽지 않고 버둥거리다 나중에는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해 나무가 부러 졌는데도 목을 캑캑거리며 마당 한 가운데를 헤매닥질하는 겁니다. 종국엔 몽둥이로 맞아 죽었지만요”

박대두는 내가 묻는 물음에 답은 않고 밑도 끝도 없이 이상스런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그것은 우리가 어려서 동화책에서나 읽었음직한 밤길을 잃고 헤매다 주막에 찾아든 손님을 재워 놓고 달밤에 칼을 갈고 있는 주인으로 변신한 여우 이야기와 내용이 흡사한 도식적인 이야기지만 밀폐된 창고 안의 분위기(6.25를 겪었음직한 총알이 빗겨난 듯한 흔적이 남아 있는 철모와 1948 USA 가 밑에 음각된 낡은 수통. 그리고 허옇게 너덜너덜 떨어져 바닥에 뒹구르고 있는 낡은 워커 등)와 맞아 떨어져 음습한 느낌을 주었다.

“지금 이 냄비 안의 고기가 어디서 난 거냐고 묻고 있잖아”

박대두는 잇단 나의 물음에 갑자기 하던 이야기를 멈추곤 내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순간 나는 당혹 감이 앞섰으나 조금도 내색 않고 박대두의 두 눈을 뚫어질 듯 바라봤다. 그때 만일 내가 그의 고참이라는 우위적인 입장이 아니고 그의 동기나 쫄다구였으면 아마 단숨에 그 눈빛에 주눅이 들고 말았을 것이다.

“부대 뒷집 가게에 부탁해 가져온 거예요. 먹던 가락이 있어서”

박대두는 가겟집 아줌마에게 돈을 주고 부탁해 개를 잡아 아이스크림이나 빙과류 등을 넣어두는 가게의 대형 냉장고에 집어넣고 취침시간이면 수시로 꺼내다 먹는다고 했다. 나는 그의 말을 듣곤 잠자코 소주병을 이로 따서 반합의 뚜껑을 차례로 열어 그 속 뚜껑에 술을 가득 부어 박대두에 주고 나머지 뚜껑에 남은 술을 마저 따라 부었다.

“자, 들어”

박대두는 술은 약하다고 했지만 나는 잠자코 술이 담긴 검정 색의 겉 뚜껑을 들어 그에게 건배를 제의했다. 그도 어쩔 수 없이 노란색의 속 뚜껑을 들어 내 건배에 화답했다. 단 숨에 뚜껑에 담긴 술의 절반이 목구멍을 통해 식도를 타고 내려가자 빈속이 불에 덴 듯 화끈 거렷다. 나는 얼른 냄비 속의 고기를 한 점 건져내 뜨거운 줄도 모르고 입에 집어넣었다. 도대체 부대 내에 개고기를 들여와 제 집에서 처럼 상시 복용하는 저놈의 속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더구나 전입해 온 지 얼마 되지도 않는 졸병 놈이 고참들이 줄줄이 있는데. 나는 질겅질겅 고기를 씹으며 천천히 그의 얼굴을 다시 한번 바라보기 시작했다.

“최 일병님!”

“응? 왜 그래?"

“이치성 일병님은 왜 나를 미워하는 걸까요. 남들은 자기 조수를 끔찍이 아끼고 좋아한다던데”

“그게 뭐 박 이병이 미워서 그렇겠어. 서로 근무하다 보면 오해하는 부분들이 있는 거겠지”

“이제 최 일병님이나 이치성 일병님도 상병을 달 때가 됐고 저도 이제 내일이면 곧 일병으로 진급할 텐데 그 정도면 서로의 입장을 충분히 알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이상하게 이 일병님이 내무반이나 참모부 사무실에 있으면 함께 있기가 고역스럽습니다”

“박 이병은 말이야, 이치성 일병하고 꼭 맞서려고 하는 것 같아. 이 일병은 박 이병의 직속 고참이란 말이야. 동기나 졸병이 아니란 말이야”

“글쎄. 그렇긴 한데 말입니다. 이상스레 이 일병님 하곤 꼭 군대의 고참 관계를 떠나 서로 비슷한 동류 의식이 느껴집니다. 그것도 왜 이런 것 있지 않습니까. 초등학교 때 같이 짓궂은 짓을 하다가 발각 될 것 같으면 선생님에게 몰래 먼저 고자질하는 아이. 이 일병님엔 이상하게도 그런 게 느껴집니다. 그건 저도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여긴 군대야. 아마 그런 감정을 갖고 있다는 것은 박 이병의 정신상태가 잘못 되었거나 아니면 군기가 덜 들었거나 둘 중의 하나 일거야. 이치성 일병은 지금 박 이병 때문에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워하는 줄 알아. 이치성 일병과 힘을 합해도 군수과 업무가 힘든 지경에 박 이병이 그렇게 나 몰라라 하는 식으로 협조를 안 하면 어쩌겠어”

“전 잘 모르겠습니다. 일전에 제대한 김 병장님이 저에게 얘기한 이 군수창고가 천국이나 지옥이 될 거라고 한 말이 무슨 의미에서 한 말인 줄은 잘 모르겠으나 지금의 제 처지를 생각하면 천당인 것만은 확실히 맞는 것 같습니다. 군수과 일 이나 이 일병님 관련해 머리가 아프다가도 이곳에만 와 있으면 마치 고향에라도 온 것 같이 편안합니다. 이 일병님이 아마 이 창고에 들어와 물품 정돈 상태를 보면 아마 저를 잡아먹지 못해 또 안달일 겁니다. 제가 핑계로 이곳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자 제가 보기 싫어서 인지 이곳에 다녀 간지도 벌써 꽤나 오래 됩니다."

나는 박 이병의 얘기를 들으면서 이치성 일병과 박 이병과의 괴리감은 박 이병이 얘기한 창고의 안과 밖의 차이보다 훨씬 더 크면 컸지 결코 작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빨갛게 켜진 전기곤로와 하루종일 태양열을 받은 밀폐된 창고에서 뿜어 나오는 더운 열기는 한 밤중이 되어도 식을 줄을 몰랐다. 더구나 고기를 다 먹고 바닥에 남아 있는 뜨거운 국물을 먹느라 박대두와 나의 얼굴은 온통 땀으로 번들거렸다. 나는 손수건을 꺼내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다가 문득 가끔씩 창고정리하러 간다고 군수창고에 갔던 박대두가 취침시간이 지나 내무반에 들어올 때 하루 일과를 끝낸 노무자처럼 보여 고참들의 동정을 받았던 땀의 실체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이것 좀 한번 보시죠”

잠시 대화가 끊어져 서먹한 가운데 박대두는 그제야 생각난 듯 풀어 제친 군복 윗도리 속에 손을 집어넣어 목에 걸고 있던 목걸이를 꺼내 나에게 내밀었다.

“이건 목걸이 아닌가?"

“이거 혹시 본 적이 없으십니까?”

나는 박대두가 손에 들고 있는 목걸이를 건네 받아 유심히 들여다봤다. 은색 줄에 조그만 십자가가 하나 매달려 있었다. 은제품 같은데 오래 되어서 인지 색상이 전체적으로 어두운 빛을 띄었다.

“글쎄?”

“찬찬히 한번 잘 살펴보십쇼”

나는 목걸이를 손에 올려놓은 채 이리저리 살피다가 십자가를 손아귀 안에 쥐었을 때 손밖으로 흘러나온 목걸이의 줄이 문득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그리 낯설지 않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 느낌은 점차 목걸이를 우리 중대원 누군가하고 있던 걸 봤던 기억으로까지 이끌어 냈다.

“그거, 박 이병 거 아니지?”

“네. 맞아요. 하지만, 지금은 제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선물 받은 거니까요”

“선물? … 누구한테?”

“애인 한테요”

“뭐, 애인이라고?”

“네. 애인입니다”

“그 애인이 누군데?”

“수정다방 미스 김이요”

“뭐라고. 수정다방 미스 김…? 그 김미정이라는 그 아가씰 말하는 거야”

“네. 김미정이요”

순간 나는 마치 뒷머리에 둔 중한 무엇이 날아와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느꼈다.

“박 이병, 도대체 그 미스 김이 누군지나 알아?”

“네. 알고 있습니다. 군수과 김 병장님 애인이지 않았습니까. 그 목걸이의 원래 주인은 김상복 병장인데 김 병장님이 제대하면서 미스 김에게 그 간의 정표로서 기념으로 준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군수과 김 병장이 가끔 세면장에서 씻을 때나 아니면 의자에 앉아 워커를 닦고 있을 때 러닝 셔츠 사이로 언뜻 그 목걸이를 하고 있던 모습이 눈에 확연히 다가서는 듯 했다.

“아니, 수정다방 미스 김이 김 병장의 애인이란 것은 중대원들이 다 인정하는 사실인데 그럼 박 이병이 그걸 알면서 미스 김을 건드리기라도 했단 말이야?”

내 물음이 순진하게 들렸는지 박대두는 씨익 미소를 짓고 말았다. 박대두와 미스 김과의 관계는 갓 자대 배치를 받은 졸병인 박대두가 유일하게 외부와 접촉할 수 있는 교회를 나가면서 시작되었을 것이니 그간 이미 오래 전부터 미스 김은 박대두와 김상복 병장 사이를 오가며 연애를 즐긴 셈이었다.

박대두 말로는 김상복 병장이 제대하고 나간 그 주 일요일에 교회에 갔다 미스 김을 잠시 인근 여관으로 불러내 만났는데 김 병장이 가면서 눈물을 글썽이며 목걸이를 벗어 주었다는 것이다. 미스 김은 그러면서 오늘은 정식으로 박 이병의 애인이 되는 기념비적인 날이니 그 목걸이는 박 이병이 가져야 마땅하다며 건네 줘 모른 척 하고 받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간 박대두는 교회 간다고 가서 예배 시간에 빠져 나와 미스 김을 만나고 있었다는 이치성 일병의 이야기는 거짓이 아닌 사실로 드러나고 만 셈이었다. 나는 참모부 교대 근무자가 나올 시간이 되자 서둘러 반합 뚜껑에 남은 술을 마저 입에 털어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박대두는 내가 되돌려준 목걸이를 슬그머니 내 손에 다시 쥐어 주었다.

“가지세요”

나는 선 채 잠시 망설이다 슬그머니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고 밖으로 나왔다. 그때 나는 왜 박대두가 그것을 나에게 주었으며 왜 나는 또한 그것을 사양하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고 받아 주머니에 넣었는지 내가 제대 후 몇 년 동안 다락 속의 짐을 정리하던 아버지가 낡은 가방 속에 든 그 목걸이를 가방과 함께 통째로 내다 버렸을 때까지 의문에 쌓여 있었다. 그 후에 나는 병장을 달고 고참이 되어서도 가끔씩 점호가 끝난 취침시간이면 은밀히 박대두의 창고로 찾아 들 곤했다.

- 중 략 -

그와 마주했던 내 쪽은 언제나 생채기 투성이었다. 왜 나는 그와 접촉만 하면 끝에 가선 왜 이렇게 후회할 일들이 생기곤 하는가. 행여 잠시나마 그의 사업이 잘 풀려 혹시나 하는 기대를 걸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이제 다시는 박대두, 그를 만나지도 만날 일도 없을 것이라 독하게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 굳은 결심의 증표로 이튿날부터 취직할 생각을 버리고 아내와 함께 장사 할 가게 터를 물색하러 다니기 시작했다.

“그런데, 장사는 잘 되십니까? 나는 선배님이 이런 가게를 하고 있으리라곤 꿈에도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 닥치면 다 하는 거지. 뭐, 못할게 뭐가 있어”

“그래도 말입니다”

“그럼 앞으로 계속 그 호텔 쪽 분야에서 일할 생각인가?”

“글세 아직 결정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 년 만에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 박대두는 그 동안 제주도에 내려가 작은아버지가 대표이사로 있는 한 호텔의 영업부에서 일을 했다며 자랑스럽게 명함을 한 장 건넸다. 그 호텔은 국내 재벌 소유로 북한의 김정일이 남한을 방문하게 되면 그곳에서 정상 회담을 하게 되리란 소문이 나돈 적이 있는 특급호텔이었다. 나도 그런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시시콜콜한 집안 얘기까지 나에게 전부 얘기해 그의 집안 내용을 거의 다 알다시피 하던 나에게 호텔 사장으로 있는 작은아버지가 있었다는 사실은 금시 초문이었다. 사실 박대두의 성격으로 봤을 때 작은아버지가 그 위치에 몸 담고 있었다면 진작에 먼저 그의 입에서 나왔어야 할 이야기였다. 나는 박대두가 건넨 명함을 들여다보면서 새로 인쇄된 듯 깨끗한 지질 위에 박힌 비즈니스치프에 눈이 멎었다.

“아니, 영업부장으로 있었잖아”

“하하, 그간 좋은 경험 많이 했습니다”

“그런 좋은 자리에 있었으면 계속 그 곳에 있지 요즈음 같이 모두 어렵다고 하는데 뭐 하러 그 자릴 그만 두고 서울로 돌아오나 돌아오길”

“한 이 년 쳐박혀 있었더니 몸이 근질근질 해서요. 무엇보다도 제 적성에도 맞질 않았어요”

“그럼 앞으로 무얼 할건가?”

“먼저 세상 돌아가는 분위기를 한 번 봐야죠. 오랫동안 서울을 떠나 있었더니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원, 알 수가 있어야죠”

“글쎄, 그렇기도 하겠지”

나는 박대두가 하는 말에 아직 약간의 의구심이 남아있긴 해도 그와 대화를 나누는 도중 전에 내가 갖고 있던 떨떠름한 생각들이 많이 희석되어 서서히 엷어져 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그가 건네준 명함을 이야기 중에도 수시로 들여다보며 그 좋은 자릴 박차고 나온 애석함의 표시로 계속 혀를 차곤 했다.

“참, 요즘 광고회사들 어떻습니까?”

“광고회사들이라니?”

“대행사들 말입니다. 작은아버지가 필요하면 그곳 호텔일 을 좀 나눠주겠다고 한번 해보라고 하던데 말입니다”

“확실하게 밀어주기만 한다면 대행사같이 큰 규모가 아니라도 괜찮겠지, 뭐. 호텔 같이 그런 곳은 워낙 일이 많을 것 아냐”

“한다면 그 일은 선배님이 나서 도와주어야지, 제가 뭐 그쪽 분야는 잘 아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말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전에 제가 하던 『기업세계』 그것도 잘 하면 괜찮다는 생각이 듭디다. 그땐 제가 생각이 짧아 잘 몰랐는데 지방에 내려가 있다 보니까 지방에서는 그런 류 의 잡지들이 상당히 영향력들이 있더라구요. 제법 언론인 대접도 받고요”

“그것 지겹지도 않아? 그거 만들 때 그렇게 난리 굿을 치더니…”

“이젠 한다면 제대로 해야죠. 정식으로 기자 경력자들도 뽑고”

“안에서 관리를 잘 해야지. 기자들이 얼마나 말이 많고 꼬장꼬장 한데…”

“한다면 적합한 사람을 잘 가려 써야죠. 관리 경력이 있는 사람을 말입니다”

“아무래도 그래야겠지”

그때 내 시선은 출입문 바깥쪽으로 향해 있었다. 조금 전부터 밖에 서서 들어올 듯 진열장을 기웃거리며 안을 들여다보던 할머니 한 분이 있는 것이 보였다. 가게 앞 길가 좌판 위에 액세서리를 펴놓고 팔고 있던 아주머니에 다가가 무슨 얘기를 하고 아마 버스 노선이나 길을 묻고 있는 것 같았다.

“자, 이제 그만 가 봐야겠습니다”

박대두는 아마 할머니가 들어오려는 손님으로 착각했는지 그만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아니, 왜 벌써 가게?”

“만나 볼 사람들이 좀 있어서요”

“내가 연락하려면 어디로 해야 하나? 이 핸드폰 번호는 맞는 건가?”

나는 박대두가 준 명함을 그때까지 손에 꼭 쥔 채 박대두가 나가는 출입문 쪽으로 따라 나갔다.

“그건 안됩니다. 서울 오면서 전부 반납시키고 왔습니다”

“그럼 연락은 어떻게 하면 되는 건가?”

“당장 핸드폰하고 빈 사무실부터 하나 구하는 대로 제가 연락을 한번 드리죠. 일단 무슨 일을 하든 연락 할 곳부터 하나 만들어 놓고 해야지. 이거, 원 어디 불편해서”

“그래야 할거야. 잠깐만…”

나는 문 밖을 나서다 박대두를 잠깐 밖에 세워 둔 채로 급히 가게 안으로 다시 뛰어 들어가 조금 전 박대두가 매만지던 포켓 몬스터 잠바와 내일 아침에 시장에 물건 하러 가기 위해 모아둔 돈 가운데 오십 만원을 금고에서 꺼내 박대두에 건네주었다.

“아니, 뭘 이렇게 까지”

“그럼 가게. 연락 꼭 잊지 말고”

박대두를 보내고 가게로 들어 온 나는 갑자기 갈증을 느끼기 시작해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그것은 물통 속의 물을 다 마셔도 해갈되지 않는 지독한 갈증이었다. 나는 빈 물통을 손에 든 채 앉아 갈증의 원인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때 박대두가 머물다 간 세 시간 동안 그때까지 내 가게에 들어왔던 손님은 이것저것 물건을 만져보다 그냥 나간 여자손님 단 하나였을 정도로 그때 내 생계수단인 장사는 계속 바닥을 치고 있었다.

- 끝 -

/ 이강욱(생명·유공·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