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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원] 변하는 것, 변하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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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04.01  06:5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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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삼국지』의 하이라이트인 ‘적벽대전’은 많은 작품의 소재가 되었다. 그 중 소동파(蘇東坡)의 「적벽부(赤壁賦)」가 유명하다. 전반부의 내용은 이렇다. 적벽강에서 뱃놀이 하다 흥취에 젖은 소동파와는 달리, 동행한 친구는 뭔가가 울적하다. 울적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이곳은 영웅 조조의 호방했던 포부가 서린 곳이 아닌가. 그런데 지금 그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의 삶은 하루살이 같고, 넓은 바다에 비하면 좁쌀 같구나.’ 삶의 무상함에 빠진 친구에게 소동파가 대답하였다.

친구여, 저 강물과 달을 보게나.
강은 언제나 흘러가 버리지만 강은 여전히 흐르고 있고,
달은 날마다 차고 이지러지지만 달이 뜨지 않았던 적은 없지.
변한다고 생각하면 세상 만물이 모두 찰나의 순간이고,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온갖 사물과 내가 항상 그대로라네.
 

어제의 강물은 오늘의 강물이 아니지만, 어제나 오늘이나 강은 강이다. 모든 것은 변하지만, 그 정체성은 변함이 없는 법. 이 문제는 철학에는 논란을, 예술에는 영감을 주었던 난제(難題)이다. ‘테세우스의 배’로 알려진 철학 논제도 그 중 하나. 커다란 배의 부속을 하나씩 바꾼다고 하자. 마침내 모든 부품을 갈아치운 배는 원래의 배인가, 아닌가? 최근에는 기술 발달 때문에 생명과 인간의 정체성이 모호해졌고 따라서 이 물음의 파급력도 더 세졌다. 여기서 그 난제를 파헤쳐보자는 것은 아니다. 내가「적벽부」의 대목을 떠올린 것은 최근에 접한 두 사건 때문이다.

하나는 단연 세계적 화제인 챗GPT. 이곳을 방문했다가 어제의 메타버스, 그 이전의 블록체인, 더 이전의 알파고 등등이 생각났다. 나날이 변해가는 기술이 우리의 오늘을 순식간에 과거로 돌려버린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바뀌어나갈 미래를 생각하면, 「적벽부」에서의 친구처럼 낭만적인 감회에 젖기보다는, 미래에 대한 칙칙한 불안감만 들뿐이다.

또 하나의 사건은 개인적인 사례이다. 얼마 전에 대학의 은사님 한분이 돌아가셨다. 한국사의 큰 학자로 평가받는 그의 이름에는 어리석다는 뜻의 ‘우(愚)’자가 들어있다. 실제로 그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을 좌우명으로 삼았고, 평생 역사라는 한 우물을 묵묵히 파셨다.

그런데 평생 한국사에 헌신했던 그가 과연 우직하기만 했을까. 그는 만년에도 매일매일 신문을 스크랩했고, 이를 바탕삼아 정기적으로 자신의 한국사 책을 개정했다. 그의 작업은 변함이 없었지만, 책은 몇 년에 한번씩 새롭게 거듭났다. 변화 속에 있지만 변화를 살피고 적응했던 훌륭한 보기이다.

이번 학기는 챗GPT로 인해 캠퍼스 어디서나 논란과 실험이 선보일 듯하다. 여러 반응이 있겠지만 한번 정도는 고구마처럼 답답해 보였던 우공이 마침내 산을 옮겼다는 고사를 생각해보자. 하루살이 같고 좁쌀 같아서 보잘 것 없거나 지루해보이는 우리의 일상이라도 매일매일 소소하게 변하면 마침내 양질(量質)의 전환을 이루어내지 않을까.

 

/이경구 한림과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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