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연이어 일어나는 ‘묻지마 범죄’가 국민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고 있다.

지난 17일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에서 30대 여성이 너클로 폭행당하고 사망에 이르는 사건이 일어났다. 신림역 칼부림 사건이 일어난 지 한달도 되지 않아 그 일대에서 또 다른 ‘묻지마 범죄’가 발생한 것이다.

17일 오전 11시 44분경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의 관악산 생태공원 등산로에서 가해자 최윤종이 30대 여성을 너클로 폭행했다. 피해자의 “살려달라”는 비명 소리를 들은 인근 등산객이 경찰에 신고했다. 이후 12시 10분, 출동한 경찰은 인근에서 최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최씨는 체포 당시 경찰에 저항하지는 않았으나 “나뭇가지가 떨어져 여성이 넘어졌다”고 말하는 등 범행을 부인했다.

경찰에 따르면 피의자 최윤종은 피해자를 성폭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어 경찰은 범행 현장 주변에서 범행 도구로 추정되는 금속 재질의 너클을 발견했으며 폭행할 때 이용했는지를 조사했다. 이후 최씨는 자신이 4개월 전 구매한 너클을 이용해 폭행했다고 자백했다. 또 범행 동기는 “강간이 하고 싶어서”라고 밝히기도 했다. 조사과정에서 피해자와 피의자 간에는 일면식도 없었다는 점이 드러나며 묻지마 범죄임이 확정됐다.

이번 사건은 일반적인 통념과는 반대된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사건이 일어난 시각은 오전 11시 34분경으로 사방이 환한 대낮이다. 검찰 통계에 따르면 성폭력 범죄는 오후 8시에서 오전 4시 사이의 범죄가 전체의 42% 정도를 차지한다. 또 오전 9시부터 정오까지의 범죄는 전체의 10% 미만이다. 반면 이번 사건은 야간에 많이 발생하는 성폭력 범죄의 특성에서 벗어나 있다. 탁 트인 등산로에서 일어난 것 역시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서 일어난다는 통념과 반대된다.

이는 지난달 21일 신림역에서 일어난 칼부림 사건과도 일치한다. 해당 사건도 밝은 대낮인 오후 2시 7분경에 발생했다. 범행 장소도 번화가라고 할 수 있는 지하철역 근처의 식당가였다. 피의자 조선은 신림역 4번 출구 골목 초입의 건물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첫번째 피해자를 갑작스럽게 공격했다. 피해자가 쓰러지자 조씨는 피해자의 목을 한번 더 공격하고 골목 안쪽으로 이동했다. 이후 약 3분 동안 마주친 30대 남성 3명의 얼굴과 목을 노리고 흉기를 휘둘렀다. 피해자 4명 중 세명은 중상에 그쳤으나, 첫번째 피해자는 안타깝게도 목숨을 잃고 말았다.

칼부림 사건의 범인은 검거됐으나 무수한 범죄 예고를 낳았다. 칼부림 사건의 3일 뒤인 24일 커뮤니티 사이트인 ‘디시인사이드’에 익명의 이용자들이 대량살인을 예고하는 내용의 글이 등록됐다. 작성자는 “수요일에 신림역에서 수십 명의 한국 여성을 살해할 것”이란 제목의 글을 게시했다. 해당 글에는 325㎜ 길이의 일본 사시미 칼을 주문한 내역도 함께 있었다. 게시자는 다음날 오전 1시 44분경 112에 신고해 자수 의사를 밝혔으며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 체포됐다. 이외에도 잠실역 등 군중이 밀집한 장소에 지속적인 살인 예고글이 올라오며 경찰의 촉각을 곤두세우기도 했다.

문제는 그 여파가 온라인을 넘어 현실에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3일에는 2001년생 남성 최원종이 AK플라자 분당점 인근 인도를 향해 차량을 몰고 돌진해 5명에게 부상을 입히기도 했다. 이후 최씨는 AK플라자 1~2층에서 무차별 흉기 난동을 벌여 9명에게 부상을 입혀 1명이 사망하고 13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17일 생태공원 묻지마 범죄 이후 지난 19일에는 서울시 마포구 홍대입구역에서 흉기 난동 사건이 일어났다. 합정역으로 가던 서울 지하철 2호선 열차 차내에서 50대 남성이 흉기를 휘두른 것이다.

이렇듯 짧은 시일 내에 비슷한 유형의 범죄가 이어지자 경찰은 물론 정치권도 주목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서현역 묻지마 흉기 난동 사건은 무고한 시민에 대한 테러”라며 “SNS 상으로도 협박 문자가 올라온 만큼 정부는 사전에 예방할 수 있도록 경비 인력 투입과 실효적이고 강력한 진압장비 휴대로 대응하라”고 강경 대응을 지시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개인적 원한에 의한 전통적 범죄와 달리 최근 일련의 사건들은 그 누구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전의 범죄와 궤를 달리한다”며 “사실상의 테러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어 “두 사건 모두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를 범행장소로 선택했다”며 “다중밀집 장소를 중심으로 경찰 활동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4일 대량 살인이 예고된 잠실역 등에는 윤 청장이 공언한 대로 권총과 기관단총, 소총을 휴대한 경찰이 배치되고 장갑차가 들어섰다. 또 정부는 묻지마 범죄에 대한 예방과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로 ‘의무경찰제도 부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검토하기로 했다. 이같은 노력으로 묻지마 범죄가 뿌리뽑힐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 일러스트 김용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