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20명의 바보들이
공 하나 못 잡고,
공 하나 못 치고,
공 하나 못 던지는걸
오늘도 수백만의 바보들이 보고 있다.

내일은 안 봐야지
내일은 안 봐야지
오늘 선발은 누구냐
이 유망주 터질 때가 됐어
터지는 건 내 마음

그깟 공놀이

여러분이 이 시를 안다면 야구를 아주 좋아하는 야구팬일 확률이 높다. 짐작했겠지만, 필자도 역시 수백만의 바보 중의 한 명이고, 야구 없는 월요일을 ‘최강야구’라는 프로그램으로 위안 삼으며, 평일 6시 30분이 되면 오늘은 과연..을 수십 번 되뇌며 야구 중계를 본다. 강의 준비와 연구, 논문 작성 및 기타 학교 업무에 바빠 경기를 챙겨보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이지만,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집에 도착하면 곧장 케이블 스포츠 채널을 통해 그날의 하이라이트를 꼭 챙겨보고 환희와 실망의 순간을 몇 번씩 느끼며 내일을 기약한다.

필자는 프로야구 팬이다. 1994년 인천 도원 야구장, 서울 쌍둥이가 인천 돌고래를 꺾고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는 순간을 현장에서 지켜본 그 날, 평생 서울 쌍둥이를 응원하리라 다짐했다. 서울 쌍둥이는 막강한 전력으로 나에게 많은 우승의 순간을 보여줄 것으로 생각했지만, 정확히 28년이 지난 2022년까지 우승의 순간을 보여주지 못했다. 기나긴 암흑기의 순간도 있었고, 내가 좋아했던 많은 선수가 은퇴하고, 다른 팀으로 이적하고, 많은 감독이 교체되고, 매해 우수한 신인들이 등장했지만, 결과는 늘 마찬가지였다. 올해는 꼭, 올해는 반드시란 시즌 초의 믿음은 올해도 역시나, 믿은 내가 바보지란 자조 섞인 후회로 돌아왔다.

필자는 프로야구 팬이며, 의과대학 미생물학교실 교수다. 대학원생들과 함께 병원성 미생물을 대상으로 인체에 대한 감염 기전을 연구하며,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논문을 쓰고, 의대학생들에게 강의도 한다. 교수가 되기까지 석사, 박사, 박사 후 연구원 생활을 거치면서 연구는 내 인생에 일부분이 되었다.

야구와 연구는 매우 다른 분야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바로 ‘실패’를 바탕으로 성장한다는 것이다. 야구는 10번의 타석에서 7번 실패하고 3번만 안타를 쳐도 우수한 타자라는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그 3번의 안타를 치기 위해 많은 타자는 상대 투수를 관찰하고, 분석하고, 본인의 타격 메커니즘을 끊임없이 실험하고 수정하여 결과물을 얻어낸다. 연구도 마찬가지이다. 유의미한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 끊임없이 조건을 잡고, 수정하며, 몇 날 며칠을 전전긍긍 실험에 매달려야 비로소 가설에 부합하는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 필자가 야구를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알 수 없는 동질감이라고나 할까? 연패를 거듭하더라도 언젠가는 역전승, 우승의 짜릿함을 보여주는 것처럼 연구도 나에게 내 한계를 끊임없이 보여주며 좌절하게 하지만, 그 한계를 넘어 완성된 연구 결과물을 보면 지난 순간의 괴로움은 짜릿함으로 보상해준다.

이제 2학기 개강이다. 여러분도 많은 기대감과 부푼 꿈을 안고 학교에 다닐 것이다. 하지만, 늘 실패를 달고 사는 야구선수와 저처럼 위기의 순간이 올 것이다. 여러분도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뉴욕 양키스의 전설적인 선수인 요기 베라(Lawrence Peter “Yogi” Berra)가 했던 말을 가슴속에 새기며 짜릿한 9회말 2아웃 역전 만루홈런처럼 멋진 2학기를 보내길 바라본다.

“It ain't over till it's over.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이민호 의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