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벨기에 수학자인 쿠세네어가 창안한 '쿠세네어 숫자 막대기'는 각각 1cm씩 채색한 길이 10cm의 막대기로 어린이들이 덧셈과 뺄셈 등의 산수를 깨우치도록 돕는 유용한 도구이다. 그림은 쿠세네어 숫자 막대기를 이용할 경우, 7은 어떻게 해도 균일하게 나눌 수 없는 소수임을 보여주는 예시이다. (이미지 출처: 구글)

지난 시간에는 숫자와 관련된 인류의 문화와 문명에 대해 간단히 알아봤다. 이번 주에는 지난 주에 언급했던 소수 이야기이다.

소수는 자신과 1 이외에는 다른 어떤 수로도 나눠지지 않는 수이다. 한데 이러한 소수는 법칙 또한 없기에 우리는 소수의 이 같은 특성을 이용해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다. 소수 법칙이란 2, 3, 5, 7, 11, 13, 17과 같이 전개되는 소수에 적용할 수 있는 규칙으로서 아직 인류는 소수의 전개에 어떤 규칙이 있는지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소수는 얼마나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을까? 현대 사회에서 소수가 맹활약 하고 있는 분야로는 암호학을 꼽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2를 ‘ㄱ’, 3을 ‘ㅏ’, 5를 ‘ㄹ’로 대체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2353이라는 수는 ‘가라’로 풀이될 수 있다. 문제는 2353이라는 숫자도 소수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만일 내가 2353을 ‘ㄱ’이라고 가정하고 그 다음 소수인 2357을 ‘ㅏ’, 더불어 2359를 ‘ㄹ’로 가정할 경우에는 235323572359라는 수가 ‘가라’로 풀이될 수 있다. 따라서 소수만을 이용한 암호문은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의 소수를 끊어 이를 적절한 기호로 대체해야 할지에 대한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져 해독하기가 무척 어려워진다. 더군다나 A4 용지에 한가득 숫자들을 써 놓을 경우, 어디부터 어디까지의 소수를 활용해야 할지는 그야말로 불가능에 가까워진다. 만일 A4 용지 가득히 적혀 있는 숫자들이 사실은 4개만의 소수로 이뤄져 있고 그 메시지가 앞서 언급한 ‘가라’라는 단 한 마디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상대방이 해독하기 어렵도록 규칙이 까다로운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것이 유리한 암호학에서는 아직까지 법칙조차 발견되지 않은 소수가 훌륭한 응용 대상으로 각광받고 있다.

소수만 지닌 특징이 영화에서 기발한 소재로 활용되는 경우도 있다. 필자가 좋아하는 영화 ‘컨택트’가 그 대상으로 1997년도에 개봉된 이 작품에서는 지구인들과 소통하려는 외계인들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영화 감독으로도 유명한 미국 헐리우드의 배우 조디 포스터가 열연한 ‘컨택트’는 시카고대 천체물리학자인 칼 세이건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 칼 세이건은 다름 아닌 우주 과학서 「코스모스」의 저자이기도 하다.

줄거리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주인공 엘리 애로웨이(조디 포스터 분)는 외딴 시골에서 홀아버지와 함께 살아간다. 어려서 어머니를 여읜 그녀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누군가의 응답을 기대하며 매일밤 단파 방송에 귀를 기울인다. 하지만, 그녀가 9세 되던 해 아버지마저 돌아가시며 그녀는 천애고아가 되고 만다. 부모를 잃은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그녀는 어릴 적부터 수학과 과학에서 보였던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해 천체물리학자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 나간다. 마침내 천체물리학 박사가 된 엘리는 외계의 지적 생명체를 탐사하는 SETI 프로젝트에 평생을 바치기로 결심한다. 우주 공간에 떠돌아 다니는 각종 신호를 청취하고 이 가운데 외계인이 보낸 것으로 간주되는 신호를 찾아내는 SETI 프로젝트는 경제성이 전혀 없어 후원자를 찾는 일이 늘상 최대의 난관이다.

그리하여 끝없이 반복되는 좌절 속에서 어렵사리 후원금을 지원받게 된 엘리는 오랜 세월 그녀 곁에 있어 주었던 동료들조차도 프로젝트의 지지부진한 성과로 그녀 곁을 떠나가려 할 때, 극적으로 외계 신호를 포착하게 된다. 그녀가 청취한 외계 신호는 해독 결과, 직녀성으로 알려진 베가에서 발신된 메시지였던 것. 이후, 외계인의 메시지 해독에 나선 그녀는 마침내 베가로 날아갈 수 있는 워프 게이트의 설계도가 외계인의 신호 속에 들어 있음을 밝혀낸다.
그렇다면 외계인들이 보내온 신호는 과연 어떤 규칙을 지니고 있었기에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신호라고 주인공은 알아차렸을까? 정답은 외계인들이 처음으로 보내왔던 신호가 소수를 이용했다는 것이다. 모르스 부호처럼 웅웅거리는 기계음과 함께 전파되어 온 외계 신호는 소수의 순서에 따라 처음엔 두 번의 ‘웅-웅’ 소리가, 두 번째엔 세 번의 ‘웅-웅-웅’ 소리가, 세 번째에는 다섯 번의 ‘웅-웅-웅-웅-웅’ 소리가, 네 번째는 일곱 번의 ‘웅-웅-웅-웅-웅-웅-웅’ 소리가 2, 3, 5, 7로 전개되는 소수의 특성에 맞춰 보내졌던 것이다.

SF 영화 가운데에서도 우주에 관한 SF를 유달히 좋아했던 필자에게 그렇게 영화 ‘컨택트’는 엄청난 흡입력을 자랑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역대급 반전을 쉬지 않고 선보인 최고의 수작(秀作)이었다. 그런 필자의 인생 영화 ‘컨택트’에서 주인공 엘리는 “우주에 보편적인 언어가 있다면 그것은 수학이다”라는 말을 건넨다. 하지만 그런 엘리보다 2,500여년 전에 우주야말로 숫자로 가득 차 있으며 수학에 의해 운행됨을 예언한 이가 있으니 바로 피타고라스가 그 주인공이다.

그럼, 다음 시간에는 피타고라스에 대해 알아보도록 한 후, 본격적인 숫자 인문학을 향한 오디세이를 떠나도록 하겠다. 어느덧 9월이다. 1년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계절의 시작을 만끽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