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사관학교와 국방부의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결정이 각계각층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달 25일 육군사관학교(육사)가 교내에 설치된 독립군ㆍ광복군 영웅 흉상을 철거하고 독립기념관으로 이전하겠다고 밝혔다. 해당 흉상은 일제강점기 당시 무장 독립운동을 펼친 홍범도ㆍ김좌진ㆍ박승환ㆍ지청천ㆍ이범석 장군과 신흥무관학교 설립자 이회영 선생의 흉상이다. 사흘 뒤 국방부도 마찬가지로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 공동청사 앞의 홍범도 흉상 철거 결정을 내렸다.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홍범도함 함명 변경도 검토해야 할 사안으로 필요하면 검토할 것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국방부는 홍범도 장군의 공산당 활동 이력을 문제 삼았다. 지난달 28일 국방부는 기자단에 보낸 입장문에서 ‘육사의 전통과 정체성, 사관생도 교육을 고려할 때 소련공산당 가입 및 활동 이력 등 논란이 있는 홍범도 장군의 흉상이 육사에, 더욱이 사관생도 교육의 상징적 건물인 충무관 중앙현관에 있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논란이 있어 왔다’고 밝혔다. 또 ‘아쉽게도 일각에서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문제를 이념전쟁과 친일행각으로 부추겨 정치 쟁점화시키고 있는 현 상황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하기도 했다.
다음날에 있었던 국방부 정례브리핑에서는 입장문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한 기자의 ‘홍범도 장군이 자유시 참변에 가담했다는 의혹에 근거가 있느냐’는 질문에 국방부는 ‘군 내외 자료와 확인된 사실을 가지고 한 말이다’라고 답했다. 또 다른 기자는 육사의 캠퍼스 종합발전계획에 따른 흉상 이전이 윤석열 대통령의 육사 이전 공약과 배치된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 질문에는 ‘종합발전계획이 육사 교장의 지시로 육사가 자체적으로 만든 거라면 국방부 검찰단은 육사 교장을 집단항명 수괴 혐의로 입건해야 한다’는 날선 비판이 덧붙여졌다.

국방부는 홍범도함 함명 변경을 해명하는데도 진땀을 빼야 했다. 서울신문 기자가 ‘홍범도함 이름 변경에 대한 필요 조건이 무엇이냐’고 묻자 ‘조건이 정해져있는 게 아니고 필요성이 있다면 검토하겠다 하는 원론적인 말을 한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함명을 변경한 전례로 나라가 망했을 때, 그러니까 소련같은 경우 그리고 히틀러가 알아서 마음대로 한 경우가 있던데 그 외에 선례가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잘 모르겠다’며 답변을 회피했다.

대통령실과 정부는 철거 결정에 옹호 의견을 내비쳤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홍범도 장군의 흉상 철거 문제를 두고 국무위원들을 향해 “뭐가 옳고 그른지 한번 생각해보라”며 “잘못된 것을 가만히 놔둬야 하나.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면 하겠다”고 발언했다. 한덕수 국무총리 역시 “육사에서 사관학교 정체성이나 생도 교육에 부합하도록 교내 기념물 재정비 계획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또 타당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반면 야당에서는 극렬한 반발이 일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페이스북에 ‘대한민국의 뿌리가 임시정부에 있듯이 국군의 뿌리도 광복군과 독립군에 있음을 부정하는 것’이라며 ‘이것이 그분들에 대한 예우이고 보훈인가, 여론을 듣고 재고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니 부디 숙고해달라’고 입장을 드러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박정희 전 대통령도 한때 남로당 당원이었는데, 전국에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흉상을 다 철거할 것이냐”며 비판했다.

이례적으로 보수 언론에서도 이번 결정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동아일보는 자사의 유튜브에서 “총선을 염두에 둔 보수 결집을 노렸다면 결과는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또 “(여당의)수도권 위기론이 그냥 나온 게 아니고 내부적으로 이러한 징조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홍범도 장군의 공산당 가입 이력을 문제삼는 것에 의구심을 표하며 육사의 철거 결정을 비판하기도 했다.

학계는 독립운동가에 대한 처우를 넘어 정부의 역사의식을 우려하고 있다. 반병률 한국외국어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는 지난달 27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윤석열 정부는 독립운동을 자유민주주의 국가 건설로 아주 좁게 해석하는데 이는 독립운동사 전체를 지우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반공 정서를 자극해 독립운동가를 부정하고 친일 행위자를 정당화하려는 행위’라고 규정했다.

이 같은 논란에도 육사는 철거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육사는 31일 홍범도 장군 흉상은 육사 밖으로 이전하고 이회영 선생, 김좌진·이범석·지청천 장군 흉상은 교내 다른 장소로 이전할 것이라고 최종 결정을 내렸다. 또 충무관 안에 있는 박승환 참령의 흉상도 교내 다른 장소로 이전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방부가 과연 각계각층의 뜨거운 반발을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 일러스트 김용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