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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보수란 ‘있는 것을 그대로 두고 싶어하는 경향이나 이념’을 가리킨다. 기존 질서를 유지하려는 성향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체제는 반공적 자본주의 체제다. 따라서 한국의 보수는 반공적 자본주의를 지지하는 세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금 서양에서
보이는 보수주의를 보면, 전통적 가치관을 지키려는 이념과 시장 위주의 자본주의체제를 신봉하는 신자유주의 등 두 개의 서로 다른 이념들로
나타난다. 한국의 보수 세력 중에서 전통적 가치론자들은 정치적으로 미미하기 때문에, 시장경제주의자들이 주류를 이룬다. 여기에 한국적 특수성이
가미되어 북한에 대한 적대감과 반공주의가 결합된다.
우익이라는 말은 보수보다는 더 정치적, 이념적인 성격을 띤다. 좌익이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자를 일컫는다면 우익은 반공주의자나
민족주의자를 일컫는다. 그래서 우익은 공산주의와 싸우고 자기 나라와 민족의 이익을 추구하며 민족적 우수성을 내세운다. 때로는 다른 민족에 대한
배타적 공격의 성향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렇게 보면 한국의 보수와 우익은 서로 초점의 차이가 있기는 하나 크게 보아 같은 이념이나 세력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의 보수우익이 보이는 특이한 한 현상은 외세에 대항하는 민족주의의 성향이 결여되고 오히려 이에 추종하는
사대주의적 경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정치적 민족주의는 오히려 좌익에 가까운 사람들이 더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이렇게 된 데에는 한국의 특이한
역사가 자리잡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피식민 통치와 분단, 전쟁의 역사다.
한국 보수우익의 뿌리는 친일세력에서부터 시작된다. 일제에 협력했던 엘리트층이 해방 이후 미국 지배 하에 들어가자 미국을
추종하고 대리하는 친미파로 변신하여, 생존을 보장받았을 뿐 아니라 번영을 누리게 된다. 이러한 변신이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인은 남북
분단과 동서 냉전이다. 친일파 척결과 사회 개혁을 주장하던 세력들이 주로 좌익이었으니, 친일세력들은 좌익과의 투쟁에 필요한 선봉대로서 미국의
지원을 받고 한국 사회의 주류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후 경제성장 과정에서 성장한 자본가 계층과 관료집단, 각분야의 전문 직업인들, 그리고
오랫동안 정권을 장악했던 군부 세력은 미국의 원조와 미국 유학 등 각종 인적·물적 교류를 통해 미국식의 가치관과 이념을 받아들였고, 따라서 미국
지배층과 한국 지배층 사이에는 긴밀한 유대 관계가 확립됐다. 그 반면 일제에 항거하던 민족주의자들은 해방 후의 정치적 투쟁에서 패배하여 역사의
주류에서 사라졌다. 좌익 공산세력이 지배한 북한에서 숙청되었으며, 미국과 우익이 장악한 남한에서 버림받아 한국 정치의 비주류로 전락했고
6.25전쟁을 통해 더욱 약화되었다. 그 뒤 이승만 권위주의와 군부 독재 하에서 심지어 빨갱이로 처단되는 등 가시밭길을 걸었다.
80년대의 민주화 투쟁을 통해 이른바 ‘민족 민주’ 세력들이 성장하였으나, 정치적 민주화가 달성된 뒤 활력을 잃었으며, 최근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공세 앞에서 정치적으로 무력하게 되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탈냉전 후 유일한 패권국으로 부상한 미국의 패권 확대 정책과
밀접히 맞물려 있다. 그것이 주장하는 시장의 세계적 확대는 결국 미국 패권의 세계적 확대와 같이 가는 것이고, 이렇게 볼 때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추구하는 세계정치적 목표는 비교적 분명해 보인다.
한국의 보수우익은 이러한 미국의 패권 확대와 세계화 전략에 적극 호응하고 있다. 그들은 이것이 한국의 국가이익을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주장하지만, 국가이익이 그들이 규정하는 좁은 의미의 ‘국가경쟁력’(다시 말해 경제 생산력)보다 훨씬 더 큰 범주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다. 그들은 따라서 미국을 추종하는 것이 ‘냉엄한 국제사회의 현실’에서 우리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이라고 강변한다. 그래서 한국 같은
약소국이 국제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주권 확립이나 국가의 자주 같은 정치적 가치에 대해서는 무관심할 뿐이다. 그들은 북한의
위협을 내세우면서 미국의 일방적 군사 침략과 위협을 옹호하지만, 과연 어느 쪽이 정말로 한국의 안보와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차분히
생각해 보지 않는다. 그들이 정말로 관심을 가지는 것은 국가의 안위나 민족의 자존보다는 개인이나 자기 계층의 기득권 유지와 안락이라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이 지배하는 현실에서 그 현실을 재빨리 받아들이고 북한을 비난하면서 기득 이익을 즐기려는 탐욕이 그들을 친미사대주의자로
만들고 있는 것 같다.
/ 김영명(사과·정외·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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