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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의 인문학] 수학에서 0의 탄생은 인류 역사상 가장 극적인 순간 하지만 그전까진 모든 문명에서 필요 없는 수로 여겨0이 없던 로마에서는 알파벳으로 난해하게 숫자 표기해 … 인도의 브라만굽타는 재산과 빚이 같을 때가 0이라 인식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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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11.18  04:3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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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이 없던 로마에서는 알파벳으로 난해하게 숫자 표기해인도의 브라만굽타는 재산과 빚이 같을 때가 0이라 인식

지난 주엔 서양 수학의 탄생에서 가장 큰 공헌을 세운 피타고라스에 대한 마지막 이야기를 소개한 바 있다. 이번 주부터는 아라비아 숫자를 중심으로 다양한 인문학적 이야기를 펼쳐 보고자 한다. 더불어 그 첫 번째는 양수(+)도 아니오, 음수(-)도 아니며 모든 수의 출발점인 ‘0’이다.

먼저 우스갯소리 한 마디. 다들 잘 알고 있다시피 고등학교 수학에서 서술형 문제가 길고 어려울 경우, 답은 ‘0’ 아니면 ‘1’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1’일 경우도 간혹 있긴 하지만. 실제로 필자도 고등학교 재학 시절, 어려운 수학 문제를 한참 풀고 나면 답이 0이나 1로 나오곤 해서 허탈감을 느낀 적이 꽤 있다. 하지만, 그렇게 허무함을 일으키는 숫자 ‘0’은 안타깝게 일전에 소개했던 ‘숫자송’에서 거론조차 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직도 ‘0’은 숫자로 잘 인식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도 그럴진대 고대엔 0에 대한 인식이 어떠했을지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을 것이다.

실제로 숫자 0이 7세기 경, 인도에서 발명되기까지 일반인들은 물론, 수학자들조차 0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값이 존재하지 않는데 굳이 이를 왜 표기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연유로 고대 이집트를 비롯해, 그리스와 로마, 중국 등 대부분의 고대 문명 국가들은 일찌부터 수준 높은 수학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0이라는 수학 기호는 보유하지 않았다. 해서, 이들이 현실적으로 마주해야 했던 문제는 10, 20, 30 등의 십 자리 수와 100, 200, 300 등의 백 자리, 그리고 1,000, 2,000, 3,000 등의 천 자리 수를 각각 다른 기호로 표기해야 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로마의 경우 10은 X로, 20은 XX로, 30은 XXX로 표시됐으며, 40은 XL 50은 L로 표시했다. 마찬가지로 60은 LX, 70은 LXX, LXXX, 90은 XC, 100은 C로 기록되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400은 CD, 600은 DC, 1,000은 M으로 적었으며 4,000과 6,000은 각각 IV와 VM으로 정했는데 알파벳 문자의 위에 긋는 윗줄의 길이도 조금씩 달랐다. 결국,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 숫자 0의 부재는 이렇듯 숫자 표기에 있어 대단한 불편을 야기했다. 더불어서 숫자가 1,000단위 이상으로 커지면 일반인들은 좀처럼 쉽게 숫자를 적을 수도, 읽을 수도 없었다.

비록 로마를 위시해 서양에서는 13세기 중반까지 0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아랍과 중국 문에선 0의 유용성을 곧바로 알아보고 자릿수를 표시하기 위해 0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두 자리와 세 자리, 네 자리와 같은 자릿수의 개념으로 0을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아랍과 중국 문명 역시, 자릿수 표기 이외에는 0의 수학적인 유용성을 알아채지 못했다. 즉, 0은 점과 같은 하나의 특수한 기호로만 활용됐을 뿐, 그 자체로 값을 지닌 수로 인정받지 못했던 것이다.

그랬던 0은 기원 후, 628년이 되면서 인도의 천재 수학자 브라만굽타를 통해 마침내 값을 지닌 기호로 인정받으며 인류 수학에 도약적인 전기를 마련하게 된다. 인도 중부에 있는 도시, 우자인의 천문관장이었던 브라만굽타는 「브라마숫부타 싯단타」라는 천문학 책을 썼는데 여기에서는 그는 두 장(章)에 걸쳐 수학의 ‘사칙연산(四則演算)’을 설명했다. ‘사칙연산’이란 네 가지 규칙적인 계산 방법을 일컫는 말로, 쉽게 말하자면 ‘덧셈’ ‘뺄셈’ ‘나눗셈’ ‘곱셈’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의 책이 수학사에서 있어 빛을 발하는 부분은 ‘덧셈’과 관련된 곳인데, 바로 여기에서 브라만굽타는 수학적 값이 제로인 0의 사용 필요성을 강설하고 있다. 그는 재산의 증식을 계산함에 있어 흑자와 적자, 이윤과 빚이 균형을 이룰 때 이를 표기할 수 있는 기호가 필요하다며 0에 그 역할을 부여했다. 그리하여 백만원의 빚을 지고 장사를 해서 백 만원을 벌었다면 상인의 장부는 0으로 기록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이론이었다.

사칙연산에 있어 0을 동원한 그의 수학적 업적은 이후 등장한 방정식의 발명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2X - 1 = 9’라는 방정식에서 등호의 양쪽 항에 + 1을 첨가해, 왼쪽 항에는 2X 옆에 수학적 값이 없는 0을 만들도록 유도함으로써(2X - 1 + 1 = 9 + 1), 결국 2X = 10이므로 X = 5라는 수학적 유추를 가능케 했기 때문이었다. 바야흐로, 0의 사용이 수학에서 방정식의 출현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0의 발견」이라는 책을 쓴 일본의 수학자, 요시다 요이치에 따르면 0의 발견은 세계를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꾼 역사상 최고의 사건이었다. 일본에서 오랫동안 스테디셀러로 사랑받아온 「0의 발견」에 따르면 인도에서 발명된 0은 우여곡절 끝에 아라비아를 거쳐 유럽인들의 손에 들어가면서 수학을 고도로 발달시키게 된다. 이 때문에 인도는 0을 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아라비아에 아라비아 숫자라는 이름을 양보해야만 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요시다 요이치의 이름에는 0이 아닌 1이라는 숫자가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요이치’의 ‘이치’가 그것으로 일본어로 ‘이치’란 1을 뜻한다. 덧붙이자면, 요이치의 「0의 발견」은 100년 전인 1936년에 발간된 책으로 일본 수학의 저력을 충분히 느끼도록 해준다. 지금이야 어떨지 모르겠지만 필자가 고등학교 재학 시절에도 대입 수험생들의 수학 필독서였던 ‘정석 수학’은 일본의 수학 서적을 대거 참조했다는 소문이 공공연히 돌곤 했으니 말이다.

그럼, 다음 시간에는 인도를 떠나 마야와 아랍 세계로 0의 여행을 떠나보도록 하자. 어느덧 11월도 하순으로 접어들었지만 날씨는 이미 초겨울이라는 느낌이다. 감기가 크게 유행하고 있으니 모두들 건강에 각별히 유의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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