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교양
[숫자의 인문학] 아라비아에서 이탈리아로 수입된 숫자 ‘0’ 로마 교황청에 의해 ‘악마의 숫자’로 여겨져영원을 상징하는 하나님의 수는 무한수 … 아무 것도 없는 0은 악마이자 사탄의 수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24.03.01  08:01:43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 15만 명 정도의 인구가 사는 인도 동부의 소도시 ‘푸린’에서는 매년 7월, 수레 축제인 ‘라트 야트라’가 펼쳐진다. 우주는 유에서 무로 끊임없이 순환한다는 것을 상징하는 이 축제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인도인들은 몇 년 간 참회를 한 효과가 있다고 믿는다. 사진은 EBS 프라임 다큐멘터리 ‘숫자 0의 탄생’의 한 장면으로 ‘라트 야트라’ 축제에 참여해 수레바퀴를 미는 인도인들의 모습.

어느덧 2024년의 봄학기가 시작됐다. 캠퍼스 여기저기에서는 새내기들을 포함해 반가운 얼굴들이 청춘의 기운을 마음껏 발산하고 있다. 필자 역시, 방학 동안 몸과 마음을 어느 정도 충천하고 돌아왔다. 더불어 이번에도 ‘한림학보’의 도움을 받아 ‘숫자 인문학’을 연재하게 되었다.

석달 만에 재회인지라 독자들의 기억을 상기시키는 차원에서 지난해 말, ‘한림학보’에 마지막으로 실었던 칼럼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아라비아 숫자 0은 인도에서 탄생했지만, 이슬람 역사상 최고의 수학자이자 과학자인 알 콰리즈미에 의해 페르시아 계열의 아바스 왕조에서 본격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더불어 0을 이용해 X와 Y의 1차, 2차 방정식을 개발한 그의 대수학 저서 ‘알 자부루’는 십자군 전쟁 이후, 유럽에 소개되면서 바야흐로 유럽에서도 0에 대한 관심이 서서히 일기 시작한다. 여기까지가 지난 학기에 0과 관련해 두 번째로 소개했던 에피소드이다. 그럼, 이제부터 0과 관련된 세 번째 이야기를 시작해 보도록 하겠다.

비록 0이라는 숫자가 베네치아 출신의 이탈리아 상인, 피보나치에 의해 유럽에 소개됐지만 그의 모국에서는 0의 가치를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로마 교황청에서는 0을 ‘악마의 숫자’로 인식해 0의 사용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내기까지 했다. 그렇다면 로마 교황청에서는 어떤 이유로 0을 악마의 숫자로 인식했던 것일까?

약 1천 년 동안 기독교가 사람들의 정신과 문물을 모두 지배했던 유럽에서는 신의 은총을 받는다는 것은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에 따라 끝없음을 의미하는 무한(無限)은 곧 신의 세계를 의미했던 반면, 0은 신의 은총이 전혀 없는 진공 상태, 즉 지옥을 의미했다. 그런 이유로 중세 유럽에서 0이라는 ‘없음’의 개념을 주장하려면 최악의 경우, 신성 모독으로 화형까지 당할 각오를 해야 했다. 이 대목에서 인위적인 삶의 폐해를 배격하며 자연 상태의 무위(無爲)로 돌아갈 것을 주장했던 중국의 도교가 로마 교황청에 알려졌더라면 과연 어떤 반응이 나왔을까 자못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보자면, 로마 교황청의 이 같은 입장 때문에 0이 제대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것은 로마 교황청의 권위가 무너지기 시작한 16세기 이후로, 피보나치가 0의 개입을 알렸던 때로부터 무려 3세기가 흐른 뒤였다.

0이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악마의 수라고 오해를 받았던 또 하나의 이유로는 어떤 수라도 곱셈을 통해 0으로 만드는 수학적 사실 때문이었다. 무한수마저 0을 곱할 경우, 0이 되어버린다는 사실은 로마 교황청으로 하여금 0이 악마적인 힘을 지녔기에 결국, 사탄의 수라고 오해하도록 만들었다.

사실, 인도에서 0이 만들어지게 된 기원은 로마 교황청이 오해를 일으키기에 충분한 소지를 지니고 있었다. 고대부터 인도인들은 큰 수에 대한 갈망이 대단히 강렬했다. 태양은 뜨겁고 인구는 많으며 신들은 무려 3억 명이 넘게 존재한다고 알려진 나라, 인도. 그런 인도의 동부 뱅골만 가까이에 있는 인구 15만 명의 작은 도시 푸린에서는 지금도 매년 7월이면 도시가 시끄러워진다. 몇 날 며칠에 걸려 인도 각지에서 몰려드는 수많은 인도인들 때문이다. 이유는 이들이 ‘라트 야트라’라는 수레 축제에 참여해 수레바퀴를 만지면 그동안 쌓은 죄를 씻어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참고로, ‘라트 야트라’ 축제에서 수레를 타는 이는 오직 승려 계급인 브라만이며, 수레의 최종 목적지는 세 명의 신이 잠깐 살았다는 사원이다.

‘라트 야트라’ 수레 축제에서는 3m 크기의 바퀴 16개가 달린 수레를 운행하는데 원형의 수레바퀴들은 멈춰져 있을 때 0을 의미하다가 굴러가는 순간, 무한한 순환을 반복한다고 여겨진다. 물론, 수레바퀴 자체도 시작과 끝이 없는 원이다. 말하자면 무에서 유로, 유에서 무로 넘나들며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수레바퀴가 바로 0의 상징체인 것이다. 그리하여 이 수레바퀴를 굴리는 과정에서 인도인들은 무와 유가 영원히 교차적으로 반복되는 것이 우주의 원리이자 인생의 진리라는 사고방식을 온몸으로 체험한다.

로마 교황청이 인식했던 아라비아 숫자 0은 어찌 보면 인도인들의 사고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0에서 모든 것들이 출발한다는 인도인들의 사고방식과 달리, 로마 교황청은 0을 악마의 수로 여겼다. 3억 명의 신이 살고 있는 인도와 달리, 단 한 명의 신만 살고 있는 바티칸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터.
그럼, 다음 시간에는 로마 교황청이 숫자 0을 악마의 수로 여긴 마지막 이유와 함께, 중국에서 펼쳐진 0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한림학보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인기기사
1
[보도] 2024 대동제...한림人들은 ‘싱글벙글’
2
[보도] 변화 가져간 축제 진행 방식 ‘엄지척’
3
[보도] 전공박람회, 진로상담·체험 ‘일거양득’
4
[보도] 현직 종사자와 만남, ‘미니 비전 페어’ 열려
5
[보도] 전공 바꾸고 싶다면 27일부터 신청
6
[기획] 오결제ㆍ개인통장 혼용 등 곳곳에서 ‘삐걱’
7
[보도] 대학 넘어 지역 취업까지 돕는 ‘일자리플러스센터’
8
[보도] 지역정주센터, 지역상생의 첫 발걸음 내디뎌
9
[사회] 교육도시 춘천 ‘지역과 대학이 협력하는 선순환 체제 만들 것’
10
[보도] “110년 만에 제자리 찾은 오대산사고본”
신문사소개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24252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한림대학길 1 캠퍼스라이프센터 9-308호 한림학보사
제보 및 문의 : news@hallym.ac.kr / 033-248-287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손성민(간사)
Copyright © 2005 한림학보. All rights reserved. news@hallym.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