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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의 인문학] 수학 배틀에서 로마 숫자를 물리친 ‘아라비아 0’ 경제 규모가 커지던 유럽 상업계의 총아로 등장수학 후진국이었던 서구는 중국 음양 사상 이용해 … 이진법을 발명하며 오히려 컴퓨터 시대를 열기도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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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4.03.09  07:2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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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2,500년 전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탄생한 주판은 전자계산기가 발명되기 전까지 인류의 주요한 사칙연산 계산 도구였다. 사진은 미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에 위치한 컴퓨터 박물관 내의 주판 전시실 전경이다.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커먼스)

지난 시간에는 로마 교황청에서 아라비아 숫자 0을 수용하지 않은 두 가지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첫 번째는 0이 무한한 신의 사랑에 반하는 진공의 세계를 뜻한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곱셉을 통해서 무엇이든 0으로 만들어버리는 무시무시한 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로마 교황청에서 아라비아 숫자 0을 받아들이지 않은 마지막 이유로는 바로, 로마 숫자의 건재함에 있었다. 말하자면, 로마 제국의 수도였던 로마에 자리 잡은 교황청이다 보니 로마 숫자에 대한 애정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로마 제국이 이뤄놓은 문명에 기반했다는 자부심은 로마 교황청으로 하여금, 여타 문명의 수용에 대단히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도록 유도했다. 더군다나, 아라비아 숫자는 그들이 경멸해 마지않는 이슬람, 즉 이교도의 문물이었기에 로마 교황청의 거부감은 상상 이상으로 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 교황청은 훗날, 0의 개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이를 정확하게 반영할 수 있는 선진 회계가 절실히 필요했기에, 수의 표기에서뿐만 아니라 계산에 있어서도 대단히 유용한 0을 도저히 배제할 수 없었던 까닭에서다. 예를 들어, 중세까지만 하더라도 숫자의 계산은 전부 주판(珠板)을 이용한 주산(珠算)으로 이루어졌다. 참고로, 주판이란 덧셈과 뺄셈을 쉽게 행하기 위해 고안된 기구로, 구슬과 비슷한 알들이 일렬로 쇠꼬챙이에 꿰어져 배열된 데에서 이름이 유래했다. 당구장에 가면 벽에 빨갛고 하얀 바둑알 모양의 구슬들이 쇠꼬챙이에 나란히 배열돼 있는 것 같이 생긴 주판은 필자가 초등학교 시절만 해도, 정식으로 수업 시간에 사용법을 배우는 대상이었다.

그런, 주판은 이미 기원전 2,500년 경을 전후해 아라비아 반도의 메소포타미아에서 사용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그리스와 로마를 거쳐, 중국과 한국에 전래됐다. 이에 따라, 고대 로마에서는 이미 주판을 사용했으며, 중세 유럽에서도 크지 않은 수는 모두 주판을 통한 주산으로 계산했다. 하지만, 단위 자체가 점점 커지면서 주판을 사용하는 일이 어려워지자, 이제는 필기만으로 웬만한 계산이 다 가능한 아라비아 숫자의 유용성이 도저히 거부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더불어, 모든 계산의 출발점이며, 10, 100, 1,000, 10,000, 100,000 등의 숫자들을 너무나 간단하고 직관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0의 유용성은 사용자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아라비아 숫자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이를 지지하는 이들과 이를 반대하는 이들 사이에 열띤 논쟁이 벌어졌고, 결국, 두 가지 방식을 이용한 수학 배틀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물론, 역사는 당연히 아라비아 숫자의 손을 들어주게 된다. 로마 숫자 방식은 복잡한 뎃셈, 뺄셈, 곱셈, 나눗셈의 경우, 주판을 이용해 계산한 다음, 다시, 이를 로마 숫자로 바꿔서 표기해야 했지만 아라비아 숫자는 종이와 필기도구만 있으면 어떤 숫자이든 종이 위에서 바로 사칙연산의 계산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사실 0의 발견은 인도뿐만 아니라, 중앙 아메리카의 마야인들에 의해서도 이뤄진 바 있다. 우리에게는 「개미」「뇌」등으로 잘 알려진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에 따르면 마야인들 역시, 0을 발견했으며, 이를 20진법에 매우 효율적으로 사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거대 문명들과 동떨어져 존재했기에 다른 문명에 0의 유용성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채, 유럽인들의 침략 속에 0의 발명에 대한 주도권을 상실해갔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한편, 서구의 수학 문명에 눈부신 발전을 안겨준 0은 중국의 음양 사상을 만나 더욱 진일보한 혁명을 이룩하게 된다. 독일의 철학자 라이프니츠가 발명한 이진법이 그것으로써 오직 0과 1만 사용하는 이진법은 훗날, 디지털의 기본 원리를 형성하며 컴퓨터 시대를 여는 주인공이 된다. 이와 관련해 라이프니치는 중국에 선교사로 가 있던 친구로부터 중국의 음양 사상을 접하고는 0과 1만으로 이루어진 2진법을 발명해 냈다.
그러고 보면 우리에게 익숙한 태극기의 ‘건·곤·감·리’(☰·☷·☵·☲) 역시, 주역(周易)의 음양 원리로부터 탄생한 64괘의 일부분이다. 덧붙이자면, ‘괘’란 길고 짧은 두 종류의 부호들이 여러 번 조합돼 하나의 의미를 형성하는 것으로, 건(☰)이나 곤(☷), 감(☵)이나 리(☲) 등과 같은 특정 기호들을 뜻한다.

그럼, 다음 시간에는 0과 관련돼 각국에서 널리 통용되거나 사랑 받아온 상징들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어느덧 3월 중순이다. 2024년이 시작한 지도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3월 중순이라니 정말 세월이 쏜살같다는 말이 절로 실감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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