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사람들은 자기 자신은 자기가 가장 잘 아는 줄 안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남들은 다 아는데 자기만 자신에 대해 모르는 경우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화가 나서 얼굴이 붉어져서 남들은 그것을 보고 화난 줄 아는데 정작 자신은 자신이 화난 줄 모른다. 또 자신의 행동이 남에게 불편을 주어도 남들은 그것을 다 아는데 정작 자신은 남들이 왜 불편해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한 상담도 “우울하고 불안한데 왜 그런지 잘 모르겠다”고 하면서 찾아온다. 자신의 문제라도 자신이 잘 모르는 것이다. 이렇듯 자기가 자기를 제일 잘 알 것 같지만 남들이 자신을 더 잘 파악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또 자신의 눈에는 안 보이는 점을 남들은 오히려 쉽게 볼 수 있기도 하다. 성경에도 남의 눈에 있는 티끌은 보면서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는 못 보느냐고 꾸짖지 않았던가. 상담에서도 바로 이 자기 자신의 모습을 깨닫게 해주는데 그 목적이 있다. 바로 상담자가 거울이 되어 그대로 그 내담자의 모습을 비춰주는 것이다.

  몇 년 전 한 여학생이 상담을 받으러 왔다. 이 여학생은 편모 슬하에서 자라면서 어머니의 정이나 사랑도 많이 받지 못하고 자랐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고 사랑 받고 싶은 마음이 참 많았고, 어려서부터 자신에게 잘 해주는 사람에게 곧잘 의지하고 따르고 하였다. 성인이 된 후에도 누군가 의지가 될 만한 사람을 만나면 자기 마음을 많이 주는 편이었으나 이런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채워지지 않아 불만족스런 마음을 품고 살아왔다. 그리고 그런 마음 때문에 우울해하고 힘들어서 상담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상담이 15회 정도 진행된 어느 시간에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다. ‘나는 내 자신이 그렇게 의존적인지 몰랐다. 그런데 지난주 어느 날 학교를 내려가면서 문득 내 자신이 참 의존적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깊이 그 사실이 느껴지면서 내 모습이 수용이 되고 마음이 참 편안해졌다’ 이 여학생은 상담중 이런 저런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모습을 보다가 결국 자신이 의존적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고 그래서 자신이 현재까지 어떤 심적인 어려움을 겪어 왔는지 알게 된 것이다. 이 후로 이 여학생은 자신의 인생에서 그렇게 의존적일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자신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며 마음에 쌓여있던 많은 감정들을 씻어낼 수 있었다.

  우리는 자신의 모습을 똑바로 보기를 두려워한다. 그 안에 부끄럽고 숨기고 싶고 때로는 들여다보기 두렵고 겁나는 모습들이 있어서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런 자신의 모습을 자각하여 깊이 깨닫고 수용할 때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만나게 된다. 오히려 인정하고 수용하면 내가 감추고 싶었던 모습 뒤에 또 하나의 진실한 내 모습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게 되고 만나게 될 것이다.

/ 최명식(학생생활상담센터 전임상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