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세계 각국의 화폐’에서는 멕시코의 2백페소 화폐에 도안된 수녀이자 페미니스트, ‘후아나 이네스 델 라 꾸르스’에 관해 소개한다.

① 화폐의 도안
②-1 화폐와 여성
②-2 화폐와 여성

  멕시코의 화폐 단위는 페소(PESO)로 현재 6종류의 은행권(10, 20, 50, 1백, 2백, 5백 페소)과 7종류의 주화(5, 10, 20, 50 센트, 1, 2, 10 페소)가 발행되고 있고 멕시코 은행권의 도안에는 군인, 대통령, 혁명가, 아즈텍시대의 통치자 등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나라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 한가지 특징적인 것이 있다면 2백페소 은행권에 여성인 수녀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또 인물초상 옆에는 그녀가 공부했음직한 크고 두꺼운 책이 펼쳐있고, 뒤편 책장에는 책이 빽빽하게 놓여있다. 이 수녀의 이름은 후아나 이네스 델 라 꾸르스(Juana Ines De La Cruz, 1648 1695)이다. 사회의 각 부문에서 여성의 참여가 극히 제한되던 시절인 17세기 후반에 활동한 사람으로 그녀의 지식과 필명은 너무 훌륭해 당시의 모든 명사(名士)들을 압도하였다고 한다.

  그녀는 유명한 시인이자 희곡 작가였을 뿐만 아니라, 아메리카 대륙에서 여성의 위치와 여성이 교육받을 권리에 대해 주장한 최초의 인물이다. 1680년부터 1688년까지 후아나는 종교 및 학문을 공유할 수 있는 총독의 부인 등의 가족과 돈독한 관계를 맺게 되었는데, 이는 남성의 전유물이던 당시의 지식인 사회에서 대다수 남성들의 여성혐오주의적 멸시를 극복할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그러나 총독가족이 떠나고 그녀는 여성 지식인으로서 교회와 사회로부터 공개적인 공격을 당하며 많은 시련을 겪었다.

  최초의 페미니스트 선언으로 인정받고 있는 유명한 글인 「소르 필로떼아에 대한 답변(Respuesta a Sor Filotea de la Cruz)」에서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가졌던 학문에 대한 사랑과 ‘좀 더 알기’를 위한 지칠 줄 모르는 호기심, 학문의 길에 놓였던 장애물들 그리고 여성의 학문에 대한 권리 및 글을 쓸 수 있는 권리 등을 명쾌하게 서술하였다.

  후아나 수녀는 부당한 권위와 질서에 저항하는 자유로운 영혼을, 그리고 여성으로서 인성과 신성을 연구할 수 있는 권리를 옹호하였다. 수녀의 신분으로 가장 자유로운 영혼을 소유했으며, 글을 쓰며 끊임없이 진리를 추구했던 그녀는 페미니즘의 선구자적 역할을 수행했다. 어느 누구도 그 당시 그녀의 영혼만큼 자유를 위해 투쟁하지 못하였다. 그녀는 “인간의 지식만큼 자유로운 것은 없다”고 했다. 또한 그 인간이라는 말에는 여성도 당연히 포함된다. 그녀는 바로 이러한 자기의 이상을 위해 투쟁한 것이다.

  멕시코 중앙은행은 이러한 후아나 수녀의 자유를 위한 투쟁의 가치를 인정하고 사후 280여년이 지난 1978년 그녀를 1천 페소 은행권의 도안으로 채택하였다. 그러나 이후 멕시코는 1980년대 외환위기 및 초인플레이션으로 1992년에 페소화를 1천 : 1로 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하여 신 페소(Nuevo Peso)화를 발행하면서도 국민으로부터 특히 여성으로부터 추앙받는 후아나 수녀를 2백 페소에 계속 담고 있다.

  또한 후아나 수녀는 많은 시, 산문, 극을 남겼는데 특히 시에서 그녀의 독특한 개성과 재능이 십분 발휘되고 있다. 여러 종류의 시가 있으나 그녀의 모든 시는 철학적이고 교훈적인 색채를 띠고 있다.

/ 한범희(한국은행 발권정책팀 조사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