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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변화에 따라 영화에 대한 외설논쟁의 정도가 점차 깊이를 더해가고 있다. 하지만 현재 등급외 영화관 설립 등의 문제를
두고 설왕설래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우리사회의 ‘외설’에 대한 인식은 아직도 일천한 수준에 머물러 있어 보인다. 문화부에서는 지난 시대의 영화에
대한 외설논쟁을 정리하고 이의 현재적 의미를 알아보고자 한다.
① 총론
② 성애의 표현을 국산화 한 『자유부인』
③ ‘매춘’을 소재로 한 흥행대작 『영자의 전성시대』
④ 불륜 통해
여성의 성해방을 표현하고자 한 『애마부인』
⑤ 영화 사상 첫 등급보류판정 받은 『노랑머리』
⑥ 남자주인공의 상식을 깬 사랑방식으로
논란이 된 『나쁜남자』
1999년 6월 26일, 개봉된 『노랑머리』(감독: 김유민, 출연: 이재은, 김기연, 김형철)는 관객들과 만나기까지 그간 어떤
영화도 겪어보지 못한 우여곡절을 거쳐야 했다. 3개월 전, 비교적 저예산인 5억원을 들여 완성하여 서울 5개관에서 조촐히 개봉할 예정이었던
『노랑머리』는 당연히 받을 줄 알았던 ‘18세 이상갗 등급 대신 한국영화 최초의 등급보류판정이라는 청천벽력에 직면하게 된다.
당시 등급심의기관이었던 한국공연예술진흥협의회(이하 공진협)는 “폭력, 음란의 과도한 묘사로 미풍양속이나 사회질서를 문란하게 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노랑머리』에 대해 등급보류판정을 내린다. 등급외전용관이 없는 상태에서 이는 곧 상영금지를 의미했다. 특히 문제가 된
부분은 “여자 두 명과 남자 한 명의 혼음을 그리는 등 음란성이 과도하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감독과 제작자는 “의지할 곳 없는 현실에서
섹스로 의사 소통하는 젊은이들을 통해 우리 시대의 도덕과 엄숙주의를 비판”하는 것이 영화의 의도이며 대부분의 섹스신도 거리를 두고 멀리 찍어
문제될 것이 없고, 또한 이 판정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대표적 사례일 뿐 아니라 형평성에도 어긋난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이전에 『처녀들의 저녁식사』와 『나쁜 영화』처럼 등급보류판정을 받기 직전 귀뜸을 받은 제작사측에서 자진 삭제하여 등급을 받은
예가 종종 있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영화감독협회는 등급보류조치는 명백한 사전검열로 창작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며 등급외전용관 허용과
완전등급제 실시만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의견을 발표했으며, 시사회에서 영화를 본 기자, 평론가들을 중심으로 성 표현의 수위가 문제될 것이 없다는
평이 나오면서, 『노랑머리』에 대한 논란은 선정성보다는 창작과 표현의 자유에 집중되었다.
『노랑머리』의 내용은 단순하지만은 않아서 강간, 혼음, 살인, 동성애 등 자극적인 소재들을 담고 있다. 아버지에게 상습적으로
성폭력을 당하다 가출한 유나와 유나에게 반해 머리도 같은 노랑색으로 물들인 친구 상희가 회사에서 퇴출당한 영규를 우연히 만나 자신들이 거주하는
비닐하우스로 끌어들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유나는 영규를 좋아하게 되고, 그 둘 뿐 아니라 때로는 셋이 함께 섹스를 하면서 하릴없이
지낸다. 하지만 영규는 예전에 좋아하던 은미를 못 잊어 몇 차례 찾아간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유나와 상희는 은미를 살해하고, 영규 역시 살해한
후 둘은 다정히 포옹한다.
『노랑머리』의 전반부엔 여러 차례의 섹스신이 등장한다. 비교적 노골적인 묘사가 이어지긴 하지만 일반적인 에로비디오보다 더한
수준은 아니며, 문제가 되었던 트리플 섹스 장면도(삭제를 거쳐서 그렇게 된 것이라 하더라도) 흐릿하게 처리된데다 길이도 짧아서 문제가 된다고
보기엔 어렵다. 그러나 영화계 안팎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개봉기간을 마냥 늦출 순 없었던 『노랑머리』는 등급을 받기 위한 자진 삭제를 결정하게
된다. 4분 가량을 삭제하고, 재편집 하여 3개월의 보류기간이 끝나는 날, 공진협의 뒤를 이어 출범한 영상물등급위원회에 재심의를 신청, 등급을
받는데 성공한다. 그간 『노랑머리』의 위상은 달라져 3개월 전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난 서울 개봉관 11개관, 지방 40개관을 확보, 음란성
여부를 확인하고 싶어하는 관객들을 끌어모아 11만 8천명(서울 기준, ‘99 한국영화 흥행 15위)을 동원하면서 흥행에 성공하게 된다.
하지만 『노랑머리』는 완성도 면에서 여러 허점을 드러낸다. 표현이 상당히 과격하며 이야기 전개가 매끄럽지 못하다. 인물들 간의
관계는 이해가 쉽지 않고, 느닷없이 이어지는 잔인한 폭력과 살인 장면도 당혹감을 안겨준다. 전복적인 성격을 지닌 두 여성을 내세운 설정도 남성에
대한 집착으로 연적을 죽인다는 진부한 결말로 인해 많은 여성관객들에게 거부감을 안겨주었다. 과연 『노랑머리』가 등급보류와 선정성 시비 없이도
그토록 많은 관심을 끌 수 있었을까. 등급보류판정은 『노랑머리』에 대해 조금은 과도한 호평을 이끌어내었고 그에 따른 선정성 시비는 많은 관객들을
불러모았으며, 영화를 보고 돌아가는 관객들로 하여금 본전 생각이 나도록 만들었을 뿐이다. 『노랑머리』는 작품성이나 선정성 면에서는 언급할 가치가
그다지 높지 않지만, 등급보류판정 시비를 통해 영화에 대한 가치판단은 관객의 몫임을 일깨워 주었다.
/ 박희성(영화진흥위원회 연구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