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받는 학생들이 힘들어하는 주제 중의 하나가 대인관계이다. 상담받는 학생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주변에서 대인관계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대인관계 문제는 그 근원이 가족관계, 특히 부모와의 관계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아니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사람간의 관계를 경험한다. 그래서 관계를 떠나서 인간을 이야기할 수 없다. 그런데 인간이 만나는 가장 기초적인 관계가 부모, 그 중에서도 어머니와의 관계이다. 그래서 이 관계 속에서 비교적 건강하게 자란 사람은 후에 인간관계에서도 건강한 관계를 맺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대인관계에서 문제를 경험하거나 대인관계 자체를 어려워한다. 그것은 이미 어려서부터 건강한 인간관계를 맺는 법을 부모로부터 습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 학생이 인간관계가 힘들다고 찾아왔다. 무엇이 힘드냐고 물어보니 다른 사람에게 자기 주장이나 표현을 못해서 스트레스 받고 또 화날 때도 참다보니 힘들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근원을 탐색해보니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기가 많이 죽어있었다. 어머니가 특별히 신체적인 처벌을 가하거나 학대를 한 것은 아니지만 어머니의 무서운 표정과 말에 기가 눌려 그 앞에서 제대로 자기 표현이나 주장을 해본 적이 별로 없었다. 어머니의 표정만으로도 자기는 아무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주눅이 들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남들에게 자기 감정이나 욕구를 표현해본 적이 별로 없고 대부분 남들의 의견에 따라가고 혹시 이야기를 하다가 화가 나거나 불만이 있어도 그것을 잘 표현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자기 자신의 문제의 원인을 알게 되자 이 학생이 조금씩 변화를 보였다. 친구들 앞에서 자기 의사도 표현하고 갈등이나 불만이 있는 친구는 따로 불러내어 그런 얘기를 직접 하게 되었다. 잘 안 해보던 행동이라 처음에는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점점 좋아지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직접 표현하는 모습을 친구들이 보고 오히려 좋아 보인다는 칭찬도 받았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 학생의 사정으로 상담을 종결했다.

  이런 학생들의 경우 상담자에게도 자기 주장을 하고 화를 표현하면 더욱더 좋아지는 것을 보게 된다. 대인관계의 문제에서 벗어나려면 이러한 자신의 원가족 안에서 발생한 문제를 정확하고 명료하게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현재의 인간관계는 과거의 인간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과거의 부모관계, 또는 형제관계에서 파생된 패턴을 인식하고 거기서 벗어나는 것이다. 또는 새로운 건강한 인간관계를 경험하면서 새로운 대인관계 패턴을 익혀야 한다.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장발장이 자신의 도둑질을 변호해준 신부와 경험한 것이 바로 새로운 인간관계 경험, 보다 전문적으로는 교정적 정서 경험(corrective emotional experience)이다. 또한 이 경험은 상담에서 변화를 일으키는 중요한 경험이기도 하다.

/ 최명식(학생생활상담센터 전임상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