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잉글랜드와 웨일즈,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지역으로 구성돼 있다. 이 지역은 역사적, 문화적 전통을 달리 하고 있기에 서로 다른 나라로 여겨질 정도이다. 필자는 약 4년 동안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든버러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이수하였는데, 아래에서는 에든버러 대학에서 보고들은 것을 중심으로 서술하고자 한다.

  에든버러 대학의 신학기는 영국의 다른 대학들과 마찬가지로 10월에 시작된다. 이때쯤 되면, 스코틀랜드의 기후는 음산해지기 시작하면서 우기에 접어들게 된다. 이러한 기후환경에서 스코틀랜드 인들은 철학적 사고를 즐기고 추리담을 즐겼는지, 스코틀랜드는 흄(David Hume)과 같은 대철학자를 자랑하고, 에든버러 의대 출신인 추리소설작가 코난도일(Arthur Conan Doyle)에 대해서 자부심을 갖는다.

  대학지원자들은 공공기관인 대학입학관리기관(UCAS)을 통해서 희망하는 대학에 지원한다. 에든버러 대학의 경우 대학 전체적으로 적용되는 입학기준과 함께 각 대학에서 정한 입학기준에 따라 신입생을 선발한다. 매년 10월 초순은 이렇게 선발된 신입생들을 위한 여러 가지 오리엔테이션으로 학교 전체가 매우 어수선하다. 이때쯤이면 학생들이 각 술집에서 1파인트(pint) 분량의 맥주를 한 잔씩 마시면서 술집을 순례하는 “pub crawl”을 흔히 볼 수 있다. 에든버러는 유럽 도시 중 단위면적 당 선술집(pub)의 수가 가장 많다고 한다.

  신학기에 신입생이나 진급생들은 학위과정 중 수강신청을 도와주는 담임지도교수(Director of Studies)를 통해서 원하는 과목을 수강하게 되는데, 각 학과에서는 통상 1년 단위(30주)로 혹은 반년단위(15주)로 과목들을 개설하고 있다. 수강신청기간이 되면 무슨 박람회가 열린 것처럼 넓은 실내에서 각 학과의 관련 교수들이 개설되는 과목에 관해서 학생들과 의견을 교환하는 모습은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강의는 학기 당 10주 단위로 가을학기(10월에서 12월), 봄학기(1월에서 3월 중순), 여름학기(4월 중순에서 6월 중순) 동안 계속된다. 각 과목은 강의(lecture)와 연습(tutorial)으로 구성되어 있다. 수강생이 많은 과목의 경우 계단식 강의실(theatre)이 꽉 찰 정도이며, 수명의 전공교수들이 일정부분을 나누어서 강의한다. 이런 식의 강의는 우리의 Team-teaching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수강생들을 일정한 그룹으로 나누어서 강의 내용에 대해서 토론하고 배운 내용을 검토하는 “Tutorial”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강의방식으로서 전 학문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이를 통해서 과목담당교수들은 학생들이 학기중 읽어야 할 부분을 제대로 읽어서 이해하고 있는지를 검토하고, 학생들은 자신의 견해를 제대로 밝힐 수 있는 토론능력을 익힌다.

  가을학기가 끝나는 12월의 크리스마스 휴가와 봄학기가 끝나는 4월의 부활절 휴가기간중에 학생들은 숙제로 소논문(essay)을 작성해야 한다. 또 여름학기 중간부터는 그 동안 배웠던 내용을 총복습하는 기간을 가진 후 보통 5월 말에서 6월 중순사이에 해당 수강과목의 시험을 치룬다. 각 시험의 합격여부는 졸업과 직결되고, 나중에 관련 업종의 자격시험을 볼 때 일부 시험과목을 면제받을 수 있기에 그 방면에 진출하고자 하는 학생들은 매우 열심히 시험대비를 한다. 이러한 전문직업교육은 법학, 회계, 경영, 공학의 각 분야에서 보편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학과 측에서도 엄정한 시험관리를 위해서 학과 전공교수와 외부인이 공동으로 시험답안을 채점하도록 한다.

  다른 영국 대학들과 마찬가지로 에든버러 대학과정도 보통 3년 과정(Ordinary degrees)과 4년과정(Honours degrees)으로 나뉘는데, 4년 과정에 진급하기 위해서는 3년과정을 이수한 성적이 상위에 속해야 한다. 이 두 과정은 학위표시에서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법과대학의 경우 4년 과정은 “LLB(Hon)”로 표시된다. 에든버러 대학의 경우 의대와 법대가 매우 인기 있지만, 이들 대학에 다니다가 본인이 다른 전공을 원할 경우, 전과를 하거나 2개 전공 이상을 이수할 수 있다. 따라서 의대를 다니다가 분자생물학에 더 관심이 있다면, 생물학과의 교과과정을 이수해서 생물학 전공으로 학사학위를 받고 졸업할 수 있다. 물론 각 학과별로 복수전공을 허용하는 과목을 정해 두고 있다. 에든버러 법대의 경우 LLB(Hon) 과정에 한해서 사회과학 혹은 인문학을 전공하면서 법학을 전공하도록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생물학 혹은 물리학을 전공하면서 법학을 전공하지 못한다.

  에든버러 대학의 교육은 전문인 교육을 염두에 두고 있다. 에든버러 대학의 각 학과는 매우 세분화되어 있고, 교과과정은 1학년부터 해당 분야에서 가장 전문적인 내용을 교육한다. 우리처럼 전인교육(全人敎育)의 명분 하에 행해지는 여러 교양교육이 없다. 법학, 경영, 사학, 고전, 미술사, 고고학, 영문학(우리로 치면 국문학) 등 모든 영역에서 전문적인 교육을 전제로 해서 교과과정이 짜여져 있다. 대학에 입학해서 1학년부터 이러한 교육이 가능한 것은 아마도 대학에 들어오기 이전에 우리나라 대학의 교양과정에 해당하는 교육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가 1992년 10월 신학기가 시작하고 난 후, 에든버러 법학도서관에 들렀을 때, 많은 학생들이 가제식서류철(2공 혹은 3공 파일)을 들고 다니는 것을 보고 희한해 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필자는 가제식서류철을 활용해서 자료를 정리하는데는 익숙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실제로, 매학기마다, 대다수 학생들은 자신의 손으로 정리해서 만든 파일을 각 과목당 몇 개씩 갖게 되고, 나중에 졸업해서도 이러한 습관에 따라서 자신에게 필요한 자료에 대해서 학생 때처럼 자기 나름대로 파일을 만들고, 관련 내용을 정리·이해하는 것이다.

  에든버러 대학에는 수많은 학과가 있지만, 학과의 소속이 옮겨진다고 해서 학교에서 분규가 생기고 교육이 지장을 받는다거나 교수들간의 관계가 나빠지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에든버러 대학의 2001년도 통계를 보면, 학부와 대학원생을 합해서 총 2만3백33명 중 9백53명이 법과대학에, 6천7백24명이 사회과학대학에 그리고 3천8백79명이 인문대학에 재학하고 있었는데, 사회과학대학의 많은 학과 중에는 특이하게도 사회경제사학과, 건축학과, 고고학과, 아프리카학과, 캐나다학과 등이 속해 있었다. 이 중 고고학과는 우리나라의 윤보선 전 대통령이 1920년대에 최초의 에든버러 유학생으로서 인문학사학위(MA)를 받았던 학과인데, 1993년에 인문대학에서 사회과학대학으로 소속을 변경했다. 그 이유는, 사회과학대학의 사회경제사, 건축사 등 역사관련 학과와 연계해서 학과를 운영할 필요성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서 고고학과를 졸업하는 경우 학위표시가 사회과학사(BSc)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에 고고학과에서 다루었던 고대문명학, 스코틀랜드민속학 분야와 관련해서는 여전히 인문학사학위를 줄 수 있도록 하였다.

  에든버러 대학은 내국인 학생(Home Students)과 외국인 학생을 구별해서 등록금을 받는다. 1998∼99년 법과대학편람에 따르면, 내국인 학부학생의 경우 1천파운드, 외국인의 경우 6천7백80파운드를 1년 학비로 지불해야 한다. 학생들을 위해서 여러 가지 장학제도가 있지만 외국인의 경우는 혜택을 받기가 매우 어렵다.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던 영연방 국가의 학생들은 내국인 학생과 동일한 취급을 받는다. 영국의 경제사정이 안 좋았던 80년 중반 이후 영국정부가 대학교육지원금을 대폭 삭감하면서 이런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고 한다. 영국의 대학들은 기본적으로 국립이지만 내국인 학생의 부담을 줄이고, 부족한 교육재정을 기부금, 외국인 유학생의 등록금으로 보충하며, 각 대학별로 동창생을 통한 발전기금을 모으거나, 특허출원, 구조조정 등을 통해서 재원을 확보하도록 국가정책이 바뀐 것이다.

  살펴본바와 같이 에든버러 대학을 포함한 영국대학의 교육은 전문인을 육성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으며, 이를 위해서 각 학과가 신입생 선발, 교육과정 개설, 평가, 졸업요건에 대해서 상당한 재량권을 갖고 있다. 각 학과는 사회의 전문직업단체들과 유기적인 관계를 갖고서 졸업생을 전문직종에 배출하고 있고, 해당 학과에 입학한 학생들도 자신이 졸업 후 어떤 분야에서 무슨 일을 할 것인지 비교적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 왜 대학에 입학했고,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아는 학생들과 이들의 능력을 발굴해 내고 발전시키기 위해서 연구하고 교육하는 교수, 이렇게 교육받은 대학졸업자들을 흡수할 수 있는 직업제도가 오늘의 영국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호(276호)에서는 중국의 대학편이 이어집니다.

/ 강병근(법학·법학·부교수)